왕정, 공화정 그리고 민주정 4

생명의 진화와 기술 혁신의 유사성

by 너우니

소설가 이외수 선생이 생전에 글쓰기의 고충을 이렇게 말 적이 있다. "책상 앞까지 가는 거리가 천리길이다. 하지만 일단 앉기만 하면 책 수십 권은 거뜬히 써낼 것 같다." 정확한 워딩은 기억나지 않지만 대충 이렇다. 나같이 필력도 안 좋은 사람이 책상 앞까지 가는 거리조차 천리길이라면 글쓰기는 날 샜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미리 생각해 놓은 것이 있을 때도 있지만 항상 뭘 어떻게 써야 할지가 책상으로 가는 길이 천리길이 되는 이유다. 하지만 "글을 하나 올릴 때가 됐는데" 하는 생각이 들면 이른 아침에 억지로 책상 앞에 앉게 된다. 이외수 선생은 또 이렇게 말하지 않았던가. "글은 엉덩이로 쓰는 것"이라며 책상 앞에서의 끈기를 강조했다. 이 말은 글쓰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화려한 기교보다 '일단 책상 앞에 앉는 의지'임을 역설한다. 앉아 있다 보면 생각이 끌려 나온다는 말을 믿고 끄적여 본다. 그리고 무엇보다 글쓰기는 내 삶의 기록이라고 생각하니 조금 정신이 든다.


필자는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기술 혁신"과 "생명의 진화"가 유사한 면이 있다고 느낀 적이 있다. 생명이 진화할 때의 메커니즘이 자본주의 시장에서 새로운 기업이 태어나는 모습과 너무 흡사하다고 여겨졌다. 생명은 자손을 남길 때 약간의 변이를 담아서 전방위로 뿌려 그중 환경에 가장 적합한 개체가 살아남는 것이 진화 메커니즘이다. 즉 자손을 부모와 똑같이 복제하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다르게 태어나고 그때 환경변화에 의해 선택압력이 작용하면 그중 하나가 선택된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혁신적인 기술과 아이디어를 가지고 수없이 많은 스타트업이 창업되지만 그중 가장 경쟁력 있는 기업이 시장의 선택을 받는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거대언어모델(LLM)에게 이 둘이 유사하지 않냐고 물었더니 이미 80년대에 '진화경제학'이라는 학문이 태동했다는 것이다. 진화경제학은 이미 40년 넘게 자리 잡은 학문으로 필자가 "기업 혁신 = 생물 진화와 같다"라고 자연스럽게 느꼈던 그 직관이 이미 학계에서 정식 이론으로 발전했다고 한다. 진화경제학이 말하는 유사점을 진화의 3대 원리 그대로 적용해 보면,


첫째, 변이(Variation)

생물 : DNA 돌연변이, 유전자 섞임

기업 : 새로운 아이디어, R&D, 해커톤, 직원들의 미친 실험

-> 둘 다 대부분 실패하거나 쓸모없지만, 가끔 "혁명적인 변이"가 터짐(예:CRISPR 같은 유전자 편집 VS. 아이폰 터치스크린)


둘째, 선택(Selection)

생물 : 환경이 강한 개체를 골라줌(자연선택)

기업 : 시장(고객, 투자자, 경쟁자)이 살아남을 기업을 골라줌

-> "고객이 지갑으로 투표한다"는 말이 정확하다. 노키아, 블랙베리, 코닥은 "환경(스마트폰)이 바뀌었는데 적응 못 해서 멸종"


셋째, 유전, 전파(Heredity & Replication)

생물 : 성공한 유전자가 다음 세대로 복제

기업 : 성공한 비즈니스 모델이 복제됨(스타벅스, 우버 모델 복제)


넷째, 대량 멸종 & 폭발적 다양화

생물 : 5대 대멸종 후 새로운 종 폭발

기업 : 2000년대 닷컴 버블 붕괴하면서 FAANG이 탄생한 것처럼 지금도 90% 이상의 스타트업이 5년 안에 사라짐


차이점은 단 하나, "의도성"

생물 진화는 완전 무작위 + 맹목적(누가 계획한 게 아님)

기업 혁신은 인간의 의도 + 학습이 들어감

-> 그래서 진화 속도가 수백만 년에서 몇 년으로 압축


짧게 두 분야에 대한 유사성을 조금 정리해 보았다. 실제로 에릭 베인호커(Eric Beinhocker)는 <<부의 기원>>에서 "경제는 생물학적 진화의 연장선상이다. 다만 인간이 만든 '문화적 DNA(비즈니스 모델)'가 진화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런데 필자의 문제의식은 "문화적 DNA"가 진화하는 곳이 항상 미국과 유럽국가만 해당한다는 데 있다. 19C 말 대부분의 국가들은 이들 나라의 지배를 받았다. 일본만이 조금 늦긴 했어도 발 빠르게 대응해서 근대화를 이루었을 뿐이다.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난 걸까. 진화경제학의 관점에서 보면 그 이유가 명확하다. 동아시아(중국), 남아시아(인도), 서남아시아 문명권(이슬람)을 진화 메커니즘에 적용해 보면 이들 지역은 유럽과 달리 진화에 필요한 두 번째 단계의 '환경'을 갖추지 못한 것이 가장 큰 원인이다. 즉 선택압력이 없는 안정적인 문화권이었다는 것이다. 이들 문명권이 정치, 경제적으로 안정적이었던 데는 저마다 이유가 있겠지만, 동아시아만 놓고 보면, 지형이 안고 있는 환경적 원인이 뚜렷하다. 동아시아의 지형은 동남쪽은 바다를 끼고 있지만 해안선이 단조로워 바다 너머는 미지의 세계나 다름없다. 서쪽은 해발 4,500m 이상의 티베트고원과 히말라야산맥이 막고 있고 북쪽은 타클라마칸 사막과 고비사막으로 막혀 있다. 전체적으로 바다, 고산준령, 사막으로 둘러싸인 둥글둥글한 지형을 가진 '닫혀 있는 구조 탓에 원심력보다 구심력이 크게 작용하는 지형이다. 이로 인해 진(秦) 이후 중국이라는 거대한 통일제국이 탄생하게 되었고 이 일국체제가 2천 년 넘게 지속되어 온 것이 진화적 환경을 갖추지 못하게 하는 가장 큰 원인이다. 이 구심력은 동아시아를 사실상 일국체제로 수렴하도록 작동한다. 일단 통일을 완성하면 그 어떤 역대 왕조도 예외 없이 체제 안정을 위해 '자유로운 시장경제'를 만드는 것에 상당한 거부감을 가질 수밖에 없게 한다. 동아시아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이다. 주변 국가들은 중국의 정치와 경제에 종속될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중국의 천자론과 농본주의를 받아들여야 했다. 일본만이 유일하게 바다 너머에 있어 물리적 거리를 둘 수 있었던 덕에 천자론과 농본주의를 받아들이지 않고도 안전할 수 있다. 하지만 항상 외롭게 중국과 대립해야만 했다.


동아시아에 혁신이 일어날 수 없었던 것은 '지형적 닫힌 구조'로 인해 진화 메커니즘의 첫 번째와 두 번째가 작동할 수 없는 구조였기 때문이다. 혁신을 위해서는 첫 번째 단계의 '변이'가 있어야 하지만, 동아시아의 일국체제는 '변이'를 용납하지 않는 시스템이다. '변이'의 다른 말은 '유연함'이다. 유연함은 경직되지 않은 자유로운 감수성에서 나온다. 동아시아는 오랫동안 중앙집권적 체제 속에서 살았다. 중앙집권적 체제의 운영원리는 유학(儒學)에 근거를 두고 있다. 동아시아 사람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유학적 이념을 배우면서 자란다. 유학은 어떤 도달해야 하는 이념적 기준을 상정하고 있다. 그리고 사람들은 이 기준에 이르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기준에 맞지 않는 것은 모두 배척한다. 유학에서는 사람은 누구나 인(仁)을 가지고 태어나지만 그것은 말 그대로 '씨앗'일 뿐이고 사람이 도달해야 할 궁극의 목표는 따로 있다는 것이다. 그것을 공자는 '예(禮)'라고 했다. 학(學)이란 씨앗(仁)만 가진 미숙한 존재가 부단한 노력 끝에 도덕적 군자(禮)에 이르기 위해 갈고닦아야 하는 수행(修行) 같은 것이다. 유학은 이것을 '극기복례(克己復禮)'라고 부른다. 論語에는 "예(禮)가 아닌 것은 보지도 말고 듣지도 말라"는 말이 있다. 기준에 맞지 않기 때문이다. 기준은 배제하고 억압한다. 배타성은 사람들을 이념에 가두어서 무한한 물리적 세계를 경험하지 못하게 한다. 원래 사람이라는 존재는 더 많이 보고 더 긴 시간을 두고 나타나는 패턴을 볼 수 있으면 유연해진다. 유연함은 혁신을 일으키는 원동력이다. 유연한 사람이 많다는 것은 창의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이 많다는 뜻이다. 중앙집권화 된 사회는 기준을 가진 이념을 추구한다. 유교를 숭상했던 조선사회가 혁신이 없었던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인간은 태어나면서 다 갖추고 있다. 그러나 학(學)을 하면서 본성을 잃어 간다. 자유로운 사회만이 사람들이 가진 본성을 해치지 않는다. 그래서 혁신의 첫 번째 전제조건은 '자유'이다. '자유'는 '무위'의 다른 이름이다. '무위'가 과거 제왕의 언어라면 '자유'는 시민의 언어이다. 지금 한국 사람들은 조상들이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이름조차 생소한 '자유'앞에 서 있다. 자유는 각자 자신의 삶의 의미를 찾게 한다. 우리 삶의 의미가 저 먼 곳에 있지 않다는 것을 알게 해 준다. 본성이 땔감이라면 자유는 산소 같은 것이다. 불이 활활 타오르기 위해서는 연료만 가지고는 안되고 반드시 산소가 필요하다. 사람은 자유를 숨 쉬어야 창의적일 수 있다. 하지만 혁신을 이루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더 큰 산이 기다리고 있다.


혁신의 두 번째 메커니즘은 '경쟁을 통한 자연선택'이다. 동아시아에 혁신이 일어나지 않은 이유가 이 두 번째 메커니즘이 없었던 것이 가장 크다. 이 메커니즘을 제도적으로 구현한 것이 자본주의 '시장'이다. 진화가 누군가의 의도로 일어나는 것이 아닌 것처럼 혁신도 누군가의 의도가 있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혁신의 정확한 정의는 '누군가의 어떠한 의도도 없는 공정한 경쟁을 통한 자연선택'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동아시아의 중앙집권적 체제에서 왜 혁신이 일어나지 않았는지는 이 정의에 담겨 있다. 유럽은 지형적인 이유로 의도치 않게 시장이 만들어진 케이스다. 복잡한 지중해를 끼고 있었던 덕에 여러 나라로 나뉘어 경쟁할 수 있었다. 각 국은 살아남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했다. 반면 동아시아는 경쟁이 없는 안정된 사회였다. 외부와 단절된 닫혀 있는 세계가 경쟁이 없을 때는 권력자들이 본능적으로 변화보다는 안정을 추구한다. 동아시아는 진(秦)의 통일 이후부터 근대까지 외부와 단절되어 있는 닫힌 세계이자 내부적으로 경쟁이 없는 일국체제였다. 여기서 '닫힌 세계'라 함은 동아시아가 외부세계를 전혀 알지 못했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문명 발전과 체제 안보에 영향을 미칠 만큼의 큰 규모의 빈번한 교류가 없었다는 뜻이다. 거기다가 내부적으로는 한반도와 일본열도는 중국과 경쟁하기에는 중국이 사이즈가 너무 커져 버려 당(唐) 이후에는 더 이상 주도권을 잡지 못한다. 이후 중국은 거의 200년마다 새로운 통일 왕조가 들어서지만, 통일 왕조의 새로운 권력은 기득권이 되기도 하고 기득권과 결탁해서 담합하기도 한다. 기득권은 일단 만들어지면 이들은 경쟁을 기피한다. 시장 점유율을 혁신으로 지키는 것이 아니라 카르텔을 형성하고 자신들에게 유리한 판을 만들어서 방어한다. 자신들의 기득권을 위협하는 상품이 시장에 나오는 것을 원천차단하기 위해 반시장적 법령을 만들어서 독과점적 지위를 유지하기도 하고 카르텔을 만들어서 가로막기도 한다. 상품은 시장에서 자유롭게 선택되어야 하지만, 기득권자들이 쳐놓은 담합 네트워크에 걸려 대부분 탈락한다. 판을 제한하기도 하고 판을 기울게도 한다. 기울어진 시장에서 성장한 모델이 더 큰 판으로 옮겨가면 경쟁력을 잃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고대 중국의 4대 발명품은 종이(제지술), 인쇄술, 나침반, 화약이다. 이 기술들은 고대 중국의 뛰어난 기술 성과로, 주로 송나라 시대에 완성되거나 발달하여 세계로 전파되었다. 그러나 동아시아에서는 더 발전하지 못하고 정체되어 있었던 반면 유럽에 전파되어 르네상스와 대항해시대를 열게 하는 초석이 된다. 그리고 이는 다시 영국 산업혁명으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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