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본 적 없어? 정말 알 수 없는 순간을 만날 때.

by 치치타타

최근 ‘이상한 어린이 연극-오감도’를 보고 돌아왔다. 이상의 오감도라는 시를 어린이의 시선으로 이야기했다는 이 작품을 보며 나는 천천히 머리가 아파졌다. 이상이 오감도라는 시를 연재하던 그 당시. 독자들로부터 너무 난해하니 더 이상 작품을 내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강한 비난을 받았다는 이상의 작품이었다. 공연이 끝난 뒤 함께 간 연극 평론을 하시는 분들과의 대화가 끝날 때까지 내 머리는 여전히 고통과 함께했다. 어린이와 공포, 무서움이 나에게 많은 생각들을 하게 했나 보다... 그 정도로 생각했다.

소년과 두더지와 여우와 말_ "감당할 수 없는 큰 문제가 닥쳐오면 너가 사랑하는 것에 집중해"


며칠 뒤 문득,

새벽에 보았던 짧은 찰나의 순간이 떠올랐다.

나는 잠을 자다 작은 뒤척임에 눈을 떴다. 꼬마가 눈을 뜨고 있었다. 꼬마가 갑자기 내 코로 손가락을 가져왔다. 나도 모르게 눈을 감았다. 손가락을 아주 미세하게 움직여보고 다시 돌아가고 두어 번을 반복한 뒤 꼬마는 잠에 들었다. 꼬마는 내가 숨을 쉬는지 콧바람을 느끼는 듯했다. 내가 숨을 쉬는지를 확인하고 꼬마는 다시 잠에 든 것이다.


고요한 새벽, 곁에 잠든 엄마의 숨이 잘 붙어있는지를 왜 꼬마는 확인했을까?

나는 이것이 새벽에 갑자기 찾아온 꼬마의 존재적인 무서움이자 공포라는 생각이 들었다.

치를 떨고 눈동자를 헤매는 공포가 아니라,

침묵처럼 찾아온 불안의 공포에 꼬마는 조용히 손가락을 내민 것이다.

아! 그렇구나.

어린이의 공포와 무서움을 가지고 이야기했던 그 연극에서 빠져있는 것이 느껴졌다.

누구보다 명쾌하게 나는 이러한 것들이 무서워요. 우리 사회는 이런 점이 있죠. 이야기하는 어린이들에게서 이 미묘하고 알 수 없는 숨죽인 공포의 감각을 느낄 수 없었다. 우리는 모든 감정을 정확하게 깨닫기 어렵다. 왜 그런 감정이 드는지, 이 감정이 무엇인지.


한참이 지난 뒤 문득 떠오르기도 하며, 모르는 미궁 속에 머무는 감정도 있다.

내가 꼬마를 낳던 날이 생각난다.

나는 아기의 첫 울음소리를 듣던 그 순간. 내 안에 용 한 마리처럼 덮쳐 나오는 알 수 없는 감정을 느꼈다. 흐르는 눈물은 기쁨이기도 했고, 생명에 대한 경외심과 놀라움이기도 했다. 그리고 난 그러한 감정들만이 있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기를 낳고 1년 뒤에야 내가 그 순간 터뜨렸던 눈물 안에는

말로 꺼내지 못했던 너무나 두렵고 무서웠던 공포가 있었음을 알았다. 한 생명을 만나기 위해 참아야 했던 낯선 고통 속에서 사실 나는 엄마이기 전에 너무나 두려운 한 인간이었다. 행여나 아기가 내 감정을 전달받을까 애써서 달래고 눌러두었던 내 안의 두려움과 공포. 그 감정이 있었음을 난 1년이 지난 뒤에야 깨닫게 되었다.

알 수 없고 미묘하고 모호한 것들이 나를 휘감을 때가 있다. 그리고 그건 어른인 나에게만 그런 것이 아니다. 자다가 잠이 깬 꼬마는 내가 숨을 쉬는지를 확인해야 하는 알 수 없는 본능적인 불안을 느꼈을 것이다. 엄마의 숨을 확인하고 나서야 다시 잠에 드는 꼬마를 통해 나는 명확하게 자신을 다 파악하고 자신의 감정이 어디서 왔는지를 정확하게 말하는 무대 위의 어린이들에게서 묘한 불편함을 느꼈던 것이다.


정말 알 수 없는 불안과 공포를 만날 때. 우리는 어쩌면 어딘지도 모르게 정신없이 헤엄치고 있을지도 모른다. 나를 휘감는 것이 무엇인지 모른 채. 그렇게 애매하고 모호한 순간들을 우리는 빨리 정의 내리려 한다. 하지만 정작 그러한 순간은 내 몸 어딘가에 깊숙하게 남아있다. 그리고 분명 어린이의 삶에도 그러한 몸의 조각들이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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