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연극에서 끊임없는 논쟁은 바로 어린이를 주체적인 존재로 다루고 있는가이다. 어린이를 위한 연극이든, 어린이가 직접 무대 위에 서는 연극이든. 어린이를 얼마나 주체적인 존재로 바라보고 이를 연극적인 언어로 잘 담아내는가는 생각만큼 쉬운 문제가 아니다.
나의 일이 이렇기에 자연스레 이러한 생각들은 나의 삶까지 영향을 미친다. 함께 살아가는 꼬마를 어떻게 주체적인 존재로 인정하고 존중할 것인지를 고민하게 된다.
지난 설 나는 꼬마와 제주 포도뮤지엄을 찾았다. 꼬마가 5살이던 여름. 그때는 ‘어쩌면 아름다운 날들’이라는 전시가 있었다. 노년의 삶을 통해 인간의 전 생애를 다루고 있는 전시 작품들이 꽤 오래 나의 마음에 남았다. 너무나 생동하는 꼬마와 노년의 삶이 연결되어 묘한 감정을 만들어내었다.
그때의 기억을 들고 나는 다시 포도뮤지엄을 찾게 되었다.
이번 전시의 주제는 ‘우리 이토록 작은 존재들’
분명 나는 전시를 보았다. 하지만 이번 전시의 경험은 지난 경험과 달랐다. 이유인즉슨
첫 작품을 보기 위해 우리가 들어섰다.
꼬마는 공중에 부양해 있는 커다란 시멘트 조각들을 보러 나보다 조금 더 빠른 걸음으로 앞섰다. 꼬마는 시멘트 조각들을 쪼그리고 앉아 바라보았다. 그러자
“ 만지지 마세요!!! ”
강하고 날 선 한마디가 날아왔다.
작품에 이끌리듯 가던 내 눈이 그 말을 뱉는 이에게 향했다. 직원은 불쾌한 표정으로 나에게 말했다.
“ 아이가 만지지 않게 하세요! 아이랑 손을 잡으세요! ”
오랜만에 느껴보는 날 선 말투에 기분이 언짢았다. 꼬마는 그저 눈으로 보고 있었을 뿐인데.
그 직원의 눈초리가 따갑게 느껴져서 마음이 정말 불편했다. 난 꼬마의 손을 잡고 다음 작품을 구경하자며 끌었다.
그때 한 중년의 커플이 전시실로 들어왔다. 중년 여성은 아무렇지 않게 작품을 손으로 만져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직원의 눈은 오직 꼬마를 향해 있었다.
나는 꼬마의 손을 붙들고 꼬마와 작품 가까이 다가섰다.
나는 꼬마에게 다시 한번 이곳에서의 작품은 이렇게 눈으로 감상하는 것이라고 이야기해 주었다. 그리고 정말 궁금하다면 이렇게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꼬마와 나는 한 발짝 뒤로 물러나며 작품을 또다시 들여다보았다. 가까워지고 멀어지고를 반복하며 우리는 함께 작품을 요리조리 뜯어보았다.
직원이 없던 공간 _ 우리는 더 많이 더 편하게 작품을 감상할 수 있었다.
다음 작품을 보러 새로운 문을 열자
이번에 커다란 신문지와 같은 작품이 온 공간을 메우고 있었다. 한참을 보고 있다 뒤로 물러서는데, 그곳에 작은 책상과 연필들이 놓여 있었다. 책상 주변에 어떤 경계도 없었기에 나와 꼬마는 책상을 무엇인지 궁금했다.
“안 돼요! 만지지 마세요!”
또다시 날카로운 한마디가 들려왔다.
“이게... 작품인가요?”
“ 네! 만지시면 안 돼요!”
우린 결국 다시 한번 눈치를 보며 다음 공간으로 향했다. 새로운 공간에 꼬마와 내가 들어서자마자,
“ 어린이는 저쪽으로 가세요 ”
직원의 말투가 조금 이상했다. 왜 지정해 주는 걸까?
“ 무슨 말씀이세요? ”
“ 어린이는 저쪽으로 가셔서 보세요.”
직원의 말투는 이상한 경계에 있었기에 나는 묻지 않을 수 없었다.
“ 이곳을 마음대로 볼 수 없다는 뜻인가요? 어린이가 보아야 하는 구역이 정해져 있나요?
아니면 자유롭게 보되 저쪽에서 더 잘 감상할 수 있다는 뜻인가요? ”
직원은 다시 한번 어린이와 손을 잡아줄 것을 신신당부하며 마음껏 둘러봐도 좋다고 말했다. 전시를 모두 보고 나오며, 나에게 오늘의 그 직원들의 눈초리와 말투만이 남아있음을 느꼈다. 애초에 이럴 것이라면 어린이를 관람자로 두지 않는 것이 낫지 않았을까? 그 따갑던 눈빛과 말투에 실망을 금치 못했다.
어린이가 작품을 망칠지도 모른다는 생각만으로 꼬마를 바라본다는 것은 내가 부모로서 화가 나는 것은 물론, 우리가 이 세계를 같이 살아가는 존재로서 바라보자면 너무나 협소한 시선에 대한 안타까움이 먼저다.
꼬마는 어른과는 또 다른 시선으로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존재다. 그들이 무조건 작품을 망치고 마음대로 할 것이라는 우려는 어른의 전형적인 생각이다.
예술가에게 있어 잃어버리지 말아야 할 것은 어린이와 같은 탐구심이며 상상력이다.
또 이 전시 작품의 예술가들은 더 많은 관람객과 더 많은 다양한 소통이 있길 바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방식의 제한은 전혀 아름답지 않다.
어떠한 예술도 소통 없이는 완성될 수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