곤충 박사와 발견 박사

by 치치타타

우리나라의 아동·청소년 연극의 현시점을 짚어보고자 관련 선생님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나 또한 아동·청소년 연극의 전공자이자, 영유아극의 논문을 썼기에 선생님들의 틈바구니에 껴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깨움, 마주함, 연결, 시선 등 다양한 키워드들이 떠올랐고, 이야기는 너무나 뜨거웠다. 나는 그냥 집에 갈 수 없어 지하철을 타지 않고 두 발로 걸으며 열기를 진정시켰다.


아동·청소년 연극은 사실 어린이, 청소년을 위한 연극에 한정되지 않는다. 생물학적인 존재성을 뛰어넘어 어른과 어린이 청소년이 서로가 어디에서 어떻게 만날 수 있을까를 고민하고 그것을 연극적 언어로 표현하며 소통하는 연극이다. 하지만 쉽게 우리는 아동·청소년 연극이 마치 어린이 청소년을 위한 연극이라는 생각에 갇히게 된다.


누군가를 위한다는 감각은 사실 꽤 부담스럽다. 마치 어머니가 자식을 위해 헌신하며 한 평생자식을 바라보며 살아오는 관계처럼 말이다. 희생해야만 하는 어머니나, 나 때문이라는 희생의 이유가 되는 자식이나. 나는 그러한 어머니가 되고 싶지 않았다. 누군가를 위한다는 그 감각은 나를 늘 달아나게 만든다.


나는 어릴 적 한 살 많은 오빠 덕에 곤충을 매우 싫어한다. 그냥 싫어하는 게 아니라, 너무 무섭고 두렵다. 특히나 날개가 달린 곤충은 나에게 너무 심한 위협감을 준다. 그 곤충이 꼭 내게 날아올 것만 같으니까 말이다.

어릴 적 오빠는 방충망에 잡아 온 곤충들을 나열해 놓았었다. 사마귀, 잠자리, 메뚜기, 나비.. 다양한 곤충들이 파닥이는 모습은 내게 공포 그 자체였다.


그런데 정말 놀라운 건 나는 곤충을 사랑하는 꼬마의 엄마가 되었다는 사실이다.

세상이 얼마나 웃기고 기가 막힌 건가.

꼬마는 곤충을 무서워하지도 않고, 더 잡고 더 많이 관찰하고 싶어 했다.


KakaoTalk_20260212_100147464.jpg
KakaoTalk_20260212_101253977.jpg


엄마란 도대체 무엇인지 몰라도.

나는 내가 곤충을 무서워하고 싫어하는 감정을 그런 꼬마에게 드러내서는 안 되겠다는 책임감 같은 마음이 드는 것이 신기했다. 꼬마가 곤충을 좋아하는 마음을 나로 인해 영향받지 않길 바랐다. 등골이 오싹해도 저 멀리 떨어져 있어도 꾹꾹 눌러 담았다.


우리집 앞에는 이런 문패가 있다.

‘곤충 박사 집’

KakaoTalk_20260212_110520171.jpg


“ 엄마, 나는 아기를 재우고 희귀 곤충을 찾으러 나가야 해”

꼬마는 내게 먼 훗날 자신이 어떻게 살아갈지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꼬마의 곤충 사랑은 더 짙어지고 더 깊어졌다.


나는 여름이면 땡볕을 견디고, 겨울이면 죽은 나무를 파며 꼬마와 함께 곤충을 찾고 관찰했다. 그런데 그렇게 한 해, 두 해를 보내며 내가 하는 것이 더 이상 희생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왜냐하면 꼬마와 나는 환상의 조합을 이루었기 때문이다.



KakaoTalk_20260212_100303561.jpg
KakaoTalk_20260212_100614892.jpg


꼬마는 곤충을 잡는 곤충 박사이고, 나는 곤충을 발견해 주는 발견 박사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함께 곤충을 찾고 잡았다.

꼬마는 나의 발견 능력을 높이 샀고 신뢰했다. 나 또한 어느새 곤충마다 잡는 방법과 힘을 조절하는 꼬마를 멋진 곤충 박사라 부르며 함께 했다.


어느 순간 우리는 서로가 이 시간을 함께 보내는 방법을 스스로 찾아갔다.

나는 너를 위해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이 시간 안에서 나의 즐거움과 의미를 찾은 것이다. 그렇게 등골이 오싹할 만큼 싫었던 곤충을 다시 마주할 수 있는 기회를 꼬마로 인해 얻은 것이다.


나는 이러한 우리의 조화로움이 비단 나의 삶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연극 안에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자연스레 가지게 되었다. 내가 그토록 하기 싫은 희생을 벗어나기 위해 난 내가 싫어하는 곤충을 진정으로 마주했다. 너는 도대체 누구니? 나는 왜 네가 두려울까? 찬찬히 들여다보았다.


여전히 곤충을 내가 직접 잡을 수는 없지만, 곤충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얼마나 독특하고 특별함을 가졌는지 꼬마를 통해 알게 되었다. 나는 곤충을 다시 알아가기 시작한 것이다.


내가 어른이기 때문에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한 연극을 만드는 것이라는 생각과 의무감이 빠지기 쉽다. 그러나 어찌 인간과 인간의 만남에 있어 한쪽으로 기울이기만 할 수 있는가. 시소를 타듯 서로가 즐거울 수 있고, 서로를 마주 볼 수 있는 시간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그리고 그 시간이 바로 내가 공부하고 꿈꿔가는 아동·청소년 연극의 모습이 아닐까 싶다.

KakaoTalk_20260212_100839632.jpg 꼬마가 그려준 '엄마 사슴벌레'. 사슴벌레를 좋아하는 꼬마가 선물해 준 그림.

나와 너 사이를 보는 것, 그 사이 안에서의 변화를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나를 잃지 않으며 존재하는 것.

변화 안에서 나를 잃지 않고 함께 가는 것. 그래야 우리는 온전한 채로 서로를 마주할 수 있을 것이다. 꼬마는 내게 또 새로운 세계를 알려주었다.


작가의 이전글돈으로 살 수 없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