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헤매는 나에게, 괜찮다고 말을 건다

도서 『공중의 복화술』 리뷰 | 김혜순 지음

by 데미안에너지

도서 『공중의 복화술』 리뷰 내용, 4컷으로 미리보기!

“AI생성 이미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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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사유란


“시인은 산문도 시처럼 써야 한다”는 김수영 시인의 문장을 실체로 만났다. 『공중의 복화술』은 김혜순 시인의 시 세계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그리고 시인의 사유가 어디까지 확장되고 축소되어 세상을 거시와 미시의 시선으로 보고, 세상을 어떻게 해체할 수 있는지 사유의 모든 것을 시산문처럼 알려준다. 수사적인 부분이 아니라 시인이라는 세계와 시라는 세상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해체하고 제자리로 돌아왔다가 흩어져야 하는지 알려주는 텍스트다.

내가 시를 피해 도망쳤던 시간에 김수영 시인(『시여, 침을 뱉어라』)과 이성복 시인(『무한화서(2002~2015)』, 『불화하는 말들(2006~2007)』, 『극지의 시(2014~2015)』)을 만났던 때가 생각난다. 이번에 김혜순 시인의 『공중의 복화술』은 농도 짙은 내적 사유를 가져다 주었다. 그래서 반갑고 다행이고 감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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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아홉 개의 키워드 그리고 내게 말을 건 다섯 개


『공중의 복화술』은 김혜순 시인의 시세계를 이루는 열아홉 가지 키워드를 중심으로 진행된다. 2020년~2024년에 발표한 글들을 모은 책(‘수록작품 발표 지면’ 참고)이다. 책 전체가 산문시라고 느낄 정도로 시적 문장이 가득했고, 언어를 벼르는 시인의 수준에 주눅이 듦과 동시에 나만의 시를 쓰고 싶은 충동을 함께 느꼈다.

김혜순 시인의 작품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것은 강조할 필요도 없다. 이 책은 나에게 시를 넘어 문학을 넘어 세상을 해체하고 나아가는 시인의 삶이 어떻게 직조되는지 알려주었다.

물론 나는 나만의 시를 만들어가야 한다. 죽기 전에는 이루고 가겠지. 아니면 흩어진 채 남을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실패나 포기와는 다른 질감으로 시를 쓴다. 김수영 시인의 시론과 이성복 시인의 시론이 내 시 세계를 성장시켰듯, 이 책 역시 나의 시 세계에 말을 세게 걸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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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탈출과 해방의 선언


열아홉 가지 키워드는 ‘복화술, 목소리, 슬픔, 침묵, 불안, 죽음, 다시쓰기, 딸꾹질, 반복, 미장아빔, 방언, 동물, 고백, 고통, 덩어리, 사이, 시간, 사막, 받아쓰기’다. 이 중에서 내 시세계와 중복되는 단어들을 읽으면서 나는 아직도 갈 길이 멀다는 것을 깨달았다.

‘복화술, 다시쓰기, 미장아빔, 방언, 받아쓰기’는 내가 시 쓰기를 포기하지 않게 독려하고 자극하는 키워드였다. 시인의 사유가 이렇게도 흐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고, 내가 단어를 어디까지 벼려야 하는지도 실체로 보여주었다.

서문(본문 5~9쪽)을 보면 알 수 있듯 시인의 사유와 관점은 그의 삶을 통해 탈출과 해방, 자유를 향해 달려 모든 것을 해체한다. 이성복 시인의 말처럼 ‘없음-있음-없음’의 시를 향해 온몸으로 부딪치며 가는 것처럼 보인다. 이 책이 ‘나는 시를 떠나서 살 수 없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다시 확인시켜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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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화술) 공중의 복화술」: 목소리의 진의(眞意) 의심하기


그렇기에 문학은 거짓말이다. 소설은 현실이라고 지정된 것에 대한 거짓말이고, 시는 언어라고 지정된 것에 대한 거짓말이다. 이 거짓말의 나선을 타고 문학의 복화술이 움직여 가는 거다.
―「(복화술) 공중의 복화술」 중에서

습작시나 글을 쓰면서 ‘나는 모국어에 갇힌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자주했다. 모국어가 있어서 내 목소리를 낼 수 있지만 모국어에 묶여 내 소리가 잠기기도 했기 때문이다. 모국어도 제대로 구사하기 어려운데 외국어에 어떻게 접근할까? 다른 언어는 외계어일지도 모른다. 지구 안에 사는 생명은 외계어를 사용하여 소통 중일지도 모른다.

모국어에서 진액만 뽑을 수 있다면 내 글에선(습작시 포함) 어떤 냄새가 날까. 풀어져서 퍼진 모국어를 주워 담으며 분리수거하는 과정을 의심하게 된다. 모국어가 나를 속이는 것일까, 내가 모국어를 속이고 있는 것일까?

내가 단어를 어떻게 선별하고 벼려야 하는지 오래 고뇌했고 지금도 몸부림치는 중에 있다. 내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들이 몇 개의 목소리로 발현되는 것일까. 처음부터 질문만 잔뜩 안겨주었지만 내 사유와 글과 세계관에 선을 그어 객관적 시선을 갖게 한 문장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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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쓰기) 무한한 포옹」: 전복과 해체와 그 너머


나는 텍스트를, 억압하는 텍스트를 다시 쓰려고 그 텍스트를 희롱하고, 패러디하고, 조롱하고, 훼손하고, 전복하려다 다시 알레고리적 전도의 상자에 갇힐까 두렵다. 다시 또 하나의 서사, 우화에 갇힐까 두렵다. 다시쓰기는 죽음으로부터 시작해서 저 아득한 탄생을 향하여 나아간다.
―「(다시쓰기) 무한한 포옹」 중에서

인류사에서 여성의 위치는 생략과 삭제, 배경음 정도였다. 남성과 여성이라는 존재 자체의 목소리에서 항상 뒤로 밀려나 있던 여성의 삶에 대한 얘기다. 시인 김혜순으로 어떻게 시를 쓰고 살아남게 되었는지, 어디에서 시가 시작되었는지 말하는 부분이다. ‘바리데기’와 ‘무당’ 그리고 죽음에 대하여.

시인이 여자의 삶을 살고 있기 때문에 한 여자를 상상하며 이 글을 썼겠지만 내용을 읽어보면 텍스트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내 습작에도 죽음에 대한 경험과 사유가 많이 등장한다.

어쩌면 모든 예술은 고통과 죽음에서 시작하는 게 아닐까. 나도 여자지만 인간이고, 인간은 죽음과 탄생에 대한 궁금증이 끝날 리 없고 죽음과 탄생 이전과 이후에 대해서는 아무도 모른다. 저 너머와 이전의 세계까지 끌어안을 수 있는 거기까지 나를 밀고 갈 수 있을까. 텍스트를 쓰는 사람은 얼마나 해체되고 죽어야만 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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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장아빔) 무한의 미장아빔」: 언어와 거울, 무한으로 열리는 글쓰기


언어는 사건과 사물에 대한 거짓말이고, 시인, 작가는 이 교묘한 거짓말에 갇혀서, 이 거짓말을 깨뜨려보기 위해 책상에 엎드려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여지없이 거짓말이라는 숲으로 사라져가는 시간이라는 운명 앞에서 진짜로 살아갈, 발가벗은 언어로 뭉쳐진 한 생명을 꺼내 보여주고 싶어 안달하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미장아빔) 무한의 미장아빔」 중에서

‘미장아빔’이라는 단어를 지금까지 살면서 처음 알게 된 것도 부끄럽다. 물론 아직도 모르는 단어들이 많을 것이다. 아마 죽을 때까지 다 알지 못할 게 분명하다.

‘미장아빔(mise en abyme)’은 프랑스어다. ‘거울을 마주 보게 했을 때처럼 작은 프레임이 더 큰 프레임 안에 무한히 반복되는 구조’라고 한다.

시인은 언어와 거울의 관계로 시어에 대해 말한다. 모든 사물을 비추어 가두는 거울과 언어의 관계가 내가 쓰는 글에도 해당된다. 무엇이 거짓이고 진실일까, 무엇이 허상이고 실체일까. 무한으로 이어지는 미장아빔처럼 나의 글쓰기는 어디로 열리고 어디에서 닫히며 어떻게 뻗어나가고 멈추게 될까.

무수한 질문이 나에게 들어오고 내 안에서 솟아나야 나의 글쓰기도 앞으로 나갈 수 있을 것이다. 내 글을 비춰볼 수 있는 도구로써 작동하는 거울이 또 있는지 찾아보라고 멈추게 한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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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언) 옹알이는 메아리」: 시는 언어 밖을 원한다


온 세상에 시는 편재하지만, 시 쓰기는 언어라는 제도 없이는 불가능하다. 그렇지만 시는 언어 밖을 원한다. 언어가 상실된 곳을 원한다.
―「(방언) 옹알이는 메아리」 중에서

나도 끊임없이 고민하는 지점을 시인도 똑같이 생각하고 있었다니. 긴 시간 시어로 고통받았을 시인의 마음이 그대로 전해왔지만 내가 느끼는 강도와는 다를 것이다.

『공중의 복화술』에 담긴 모든 글은 반어와 역설을 동시에 갖고 있다. 죽음이든 언어든 문학이든 있고 없음을 넘어 자유와 해체의 공간을 말한다.

시인의 엄마의 죽음이 시인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으며, 시적 세계관이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부모의 부재는 인류사를 지배하는 강력한 서사이며 목소리다. 나도 엄마의 죽음 이후에 몸과 정신의 세계관이 달라졌으니까.

시인은 언어와 시의 관계도 말하지만 엄마의 죽음을 지켜보면서 엄마의 입장에서 메아리치는 소리를 들으려고 노력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내 습작시도 탯줄과 떨어지기까지 오랜 시간과 사유가 필요했다. 그런 점에서 여성에게 엄마라는 존재와 남성에게 엄마라는 존재는 다른 지점에서 시작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시인은 누구의 메아리를 시로 쓰는 것일까. 시가 시인의 목소리가 진정 맞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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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받아쓰기) 받아쓰다」: 모국어로 된 외국어를 졸업할 수 있을까


「(받아쓰기) 받아쓰다」에는 이별과 죽음, 상실, 부재와 실체에 대한 얘기들이 나온다. 시인의 생(生)이 맞닥뜨린, 시인의 내면에 심지를 당긴 단어들일 것이다. 시인의 시는 어떤 유령의 말일 수도 있다는 이별의 외침을 말하고 있다.

나는 ‘시를 잘 쓰고 싶다, 좋은 시를 쓰고 싶다’ 같은 생각만 하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은 내가 쓴다고 하는 시가 내가 쓴 것이 맞는지 의심할 때가 많다. 언어는 분명 나를 통해 나오지만, 그 말이 과연 내 입에서만 시작된 것인지 확신할 수가 없다.

시인은 ‘너희가 쓰라는 받아쓰기는 이제 졸업이야. 그건 모국어로 된 외국어’라고 말한다. 우주에서 지구에서 거대 담론이나 체제에서 해체된 언어로 시를 쓰겠다는 시인의 다짐처럼 들렸다.

음악과 그림, 조각품은 직접적이다. 하지만 시는 언어라는 번역을 통과해야 한다. 시인의 말처럼 받아쓰기에서 벗어나야 할 텐데. 적어도 내가 지금 어떤 문장에 갇혀 있는지는 알게 되었다. 여전히 헤매는 중이긴 하지만, 그래서 더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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