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없는 남자들

도서 『여자 없는 남자들』 리뷰 |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by 데미안에너지

도서 『여자 없는 남자들』 리뷰 내용, 6컷으로 미리보기!

“AI생성 이미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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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드라이브 마이 카》 이후, 원작을 읽었을 때


영화 《드라이브 마이 카》를 먼저 봤고, 궁금해서 원작을 찾아 읽게 되었다. 영화는 소설 원작에 수록된 일곱 편의 단편 중 「드라이브 마이 카」를 중심으로 삼되, 「셰에라자드」와 「기노」의 요소를 섞어서 완성한 작품에 가깝다. 그래서 영화와 원작을 1:1로 밀착해 설명하기는 어렵다. 원작을 해설한 영화라기보다, 원작을 재료로 재창작한 영화이기 때문이다.

아무튼 이번 단편집을 읽으면서 무라카미 하루키의 초기 작품을 다시 보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인물이 갖게 되는 모든 상실과 상처가 불륜과 섹스, 관계의 끝에서 느끼는 미련, 자책, 공허, 체념 같은 감정적 기류로 설명되는 방식이 내겐 아쉽게 다가왔다. 나는 자주 멈칫거렸고, 그것은 ‘이 작품을 무엇으로 읽을 것인가’를 찾는 과정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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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해의 키워드를 찾다


정체성으로 전환되는 틈, 균열


일곱 편을 모두 읽고 나서야 핵심이 선명해졌다. 내가 찾은 독해의 키워드는 ‘정체성’이다. 다만 정체성의 완성이 아니라 정체성이 생겨날 수도 있는 방향 전환의 틈―균열이다.

단편집에 등장하는 남자들은 여자 때문에 무너지는 게 아니다. 자기 정체성의 세포가 거의 없는 상태로 살아가는 사람들에 가깝다. 자기 자신과의 관계를 살피지 않고, 타인의 생활과 시선, 욕망에 맞춰 삶을 임시로 유지한다. 나는 존재하지만, ‘나와의 관계’는 희미하다.

그래서 “여자 없음”은 상실의 주제가 아니라 유지 장치가 꺼지는 순간이다. 중요한 타자가 사라지면 눌러둔 감정이 역류한다. 그렇다고 곧바로 정체성으로 이어지지도 않는다. 타자에게 고정돼 있던 시선이 자기에게 옮겨갈 계기가 생긴다. 작품 속 남자들은 정체성을 찾는 것이 아니라 균열이 생겨 방향이 흔들리는 상태에 놓인다.

단편집에 등장하는 남자들은 대체로 이런 공통점이 있다.

자기-자기 관계가 빈약하다.(정체성 세포 결핍)
그 빈자리를 타자의 리듬(관계, 평판, 욕망, 이야기)으로 채운다.
중요한 타자가 사라지면 흔들린다.
눌러둔 감정이 역류한다.
그 역류가 미세한 균열을 만들고, 관점이 타자에서 자기로 옮겨갈 틈이 생긴다.
그러나 그 틈은 알아차리거나 모른 척한 채 유지하거나 다른 태도로 덮어두는 방식으로 살아간다.(자기합리화, 유예, 침묵, 징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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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형: 「셰에라자드」의 남자, 혹은 이 책의 기본 심리상태


나는 「셰에라자드」에 등장하는 남자의 상태를 한 명의 인물로 보지 않고, 단편집에 나오는 남자들의 공통 심리상태로 보았다. 직업, 환경, 성격, 외부 상황은 모두 다르지만 내부는 비슷하다. 자기 안에서 자기를 살릴 힘이 약하고, 외부에서 누군가가 와서 내면에 무언가를 공급해 주지 않으면 꺼질 것 같은 상태.

이 소설에서 여자는 남자를 살려두지만, 동시에 남자가 자신을 마주할 기회를 늦춘다. 이 원형을 세워두면 다른 단편에 등장하는 남자들의 심리도 이해할 수 있다. 모두 ‘다른 삶을 사는 척하지만 같은 방에 있는 사람들’처럼 읽힌다. 방의 이름은 ‘자기 없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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균열의 변주 1,

분노를 격리하는 남자들: 「드라이브 마이 카」, 「기노」


「드라이브 마이 카」와 「기노」에서 남자들은 아내에 대한 분노를 외면한다. 이 외면은 착해서가 아니다. 분노를 인정하는 순간, 자기가 어떤 인간인지 규정되기 때문이다. 정체성이 단단하지 않은 사람에게 그 규정은 두렵다. 그래서 감정은 격리된다.

「드라이브 마이 카」에서 가후쿠는 자신의 노란 차를 운전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이고 전용 운전사 미사키를 고용한다. 아내의 갑작스런 죽음과 아내의 불륜, 갓난아기의 죽음 같은 상실을 속에만 쌓아둔다. 말로 확인하고 분노를 터뜨릴 대상은 이미 사라졌고, 남아 있는 가후쿠가 자신의 분노를 인정하면 ‘나는 어떤 남자다’라는 정의를 내리게 된다. 그래서 그는 모른 척하며 유예 기간을 두고 자아를 지키려 한다.

소설에서 차는 이동 수단이 아니라 고립된 상담실처럼 그려진다. 자신도 모르게 미사키에게 고해성사를 하게 되는 순간, 가후쿠에게 미세한 균열이 생긴다. 온전히 자기만의 공간에서 자기만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뱉은 시간이 바로 ‘드라이브 마이 카’였던 것이다. 가후쿠는 균열의 순간에도 미사키라는 타인에 의지한 것이지만.

「기노」는 「드라이브 마이 카」에서 차의 공간이 바로 바뀌었을 뿐이다. 아내의 불륜을 목격하고 이혼을 결심한 기노는 이모가 살던 집에서 바를 운영한다. 물론 기노는 아내에게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는 의식하지 못하지만, 단골 손님 가미타는 기노의 내밀한 감정을 알아차린다. 일을 하면서 기노가 느끼는 감정들이나 초현실 같은 상황과 뱀의 등장은 불안하고 위험한 그의 감정을 상징한다. 소설은 정체성 없는 기노의 삶이 초래한 것은 현실이 아니라 징후로 번역해 보여준다. 설명되지 않은 감정이 현실 대신 징후로 올라오고, 그 징후가 균열을 만든다. 균열은 생기지만, 그 균열이 곧바로 자기에게로 들어가는 길이 되진 않는다.

「드라이브 마이 카」의 차, 「기노」의 바 같은 공간은 이동이나 휴식이 아니라 외면한 감정을 보관하는 곳이다. 가후쿠와 기노가 자신의 분노를 외면하는 것은,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힘이 약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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균열의 변주 2,

회피형 정체성: 「예스터데이」, 「여자 없는 남자들」


「예스터데이」에서 서술자 ‘나’는 기타루를 관찰자적 입장에서 서술한다. 기타루의 기이한 행동이 왜 시작됐는지 독자는 확실하게 알 수 없다. ‘나’와 기타루는 한 마디로 착한 남자다. 단호한 선택과 결단을 하는 남자들은 아니다. 이 단편에서 선택은 정체성에 해당한다.

기타루는 선택을 하지 않고 책임도 지지 않는다. 현실에서 마주해야 할 것들에서 도망치기에 바쁘다. 특히 에리카와 관계를 회피한 기타루는 인생 자체가 비껴간 상태일 확률이 높다. ‘나’도 기타루도 나쁜 남자는 아니지만 그들의 착함은 욕먹지 않기 위한 기술에 가깝다. 선택을 회피하고, 욕망을 숨기고, 책임을 흐리는 방식으로 자기를 지운다. 그러니 정체성은 생기기 어렵다. 기타루의 균열은 비껴감과 시간의 감각으로 드러나지만, ‘나’의 균열은 기억의 형태로 남는다. ‘나’ 역시 정체성을 찾은 사람이라기보다, 미세한 후회와 지연된 감정의 균열을 지닌 채로 남는다.

표제작 「여자 없는 남자들」에는 남자가 ‘나’와 엠의 남편만 등장한다. 엠의 남편은 새벽 한 시에 ‘나’에게 전화를 걸어 엠의 자살 소식을 전한다. 그때부터 ‘나’의 머릿속이 복잡하게 흘러간다. ‘나’는 ‘여자 없는 남자들이 되는 것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지, 얼마나 가슴 아픈 일인지, 그건 여자 없는 남자들이 아니고는 이해하지 못한다.’고 말하지만, 실은 엠의 남편을 걱정하는 게 아니다. 엠과 함께 했던 ‘나’의 기억과 느낌이 상처받지 않도록 자기 보호를 하는 쪽에 가깝다. 젊은 시절 사귀었던 여자의 죽음을 알게 되면서 자기의 상처를 보편화해 책임을 희석하는 방식이다. 정체성을 찾는 것이 아니라 정체성의 대체품—논리와 분류—를 만드는 중이다. 균열이 생겨도, 그 균열은 정체성보다는 면책 쪽으로 흘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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균열의 변주 3,

시스템이 꺼지는 사람: 「독립기관」


「독립기관」에서 ‘나’는 글쓰기가 직업인 사람이고, 도카이는 성형외과 의사로 둘은 스포츠센터(스쿼시)에서 만난 사이다. 도카이는 여자 없는 남자의 가장 극단적인 버전이라고 할 수 있다. 여자들에게 인기도 많고 불륜 상대로 살아오던 도카이가 사랑에 빠지게 되었는데, 그 여자가 다른 남자를 선택하면서 도카이는 자살을 선택한다.

도카이가 다른 여자들과 불륜관계를 맺었던 이유는 사실 제대로 된 관계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 때문이었을 것이다. 관계가 끊기면 정체성 자체가 붕괴될까 봐, 애초에 진짜 관계를 피하는 사람. 타자의 욕망을 적절하게 이용하면서 자기 삶을 유지하던 도카이가 급사에 가까운 흔들림을 맞게 된 것이다. 자기 내면의 균열을 견디지 못하고 시스템을 꺼 버리는 남자가 도카이라면, ‘나’는 그 균열이 자기에게 전이될 수 없도록 거리두기로 막는 남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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균열의 변주 4,

형태로 드러나는 자기 없음: 「사랑하는 잠자」


「사랑하는 잠자」가 균열의 끝판왕처럼 느껴진 건, 정체성 결핍이 심리에서 끝나지 않고 몸(형태)의 낯섦으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카프카의 『변신』을 비튼 설정(벌레였던 존재가 인간이 된 상태)는 정체성을 감정의 문제가 아니라 존재 형식의 문제로 옮긴다. 즉 ‘나를 이해한다’가 아니라 ‘내가 어떤 형태로 존재하는가’를 전면에 둔다.

깨어난 잠자는 “내 몸이 낯설다”에서 시작한다. 정체성의 세포가 없다는 말이 정신이 아니라 육체로 표면화된다. 그래서 이 단편은 다른 작품들이 숨기거나 유예하던 결핍을 가장 선명하게 드러낸다. 이 소설에서 균열은 해결이 아니라 방향이 흔들리는 순간에 가깝다. ‘자기 없음’을 가장 극단적으로 드러내는 증거물이 바로 몸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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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원작 소설이었기에 좋았다


솔직히 이 책은 재미있거나 좋다고 느껴지진 않았다. 단편들이 반복하는 균열의 결이 ‘발견’으로 밀고 나가지 않고 ‘상태 진술’로 남는 느낌이 컸다. 게다가 여성들이 정체성을 가진 주체로 충분히 세워지지 않아서 남자들의 관점 이동도 타자 부재에 종속된 채로 머문다. 균열은 생기는데, 그 균열이 다음 단계로 나아가지 않는다. 그래서 책을 읽는 동안 나는 인물들의 내부에 생긴 균열을 통해 정체성의 빛을 찾아내느라 시간과 품이 더 들었다.

영화 《드라이브 마이 카》 리뷰에서 원작 소설 이야기를 더 하겠지만, 솔직하게 말하면 소설보다 영화가 더 좋았다.ㅎㅎ

원작 소설이 내게 남긴 것은 ‘균열’의 개념이다. 그런데 영화는 원작이 남긴 파편들을 다른 재료와 섞어, 하나의 완성된 감정으로 재구성해 냈다. 나는 그 창작의 힘에 더 설득되었다. 그리고 어쩌면, 원작을 읽고 나서야 그 사실을 더 정확히 말할 수 있게 된 것 같다.

이 소설이 여자와 남자로 나뉘지 않고 정체성 쪽으로 더 밀고 갔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을, 나는 영화로 달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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