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파과』 리뷰|구병모 지음|위즈덤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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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고 싶었으나 원작을 먼저 읽는 성향이어서 미루고 미루다 이제야 읽게 되었다. 소설 『파과』는 대개 여성 살인청부업자의 삶, 늙음과 폭력의 서사로 읽힌다.
하지만 나는 한 인간의 사유가 언제 어떻게 시작되는가를 다루는 이야기로 읽었다. 폭력이나 살인에도 촉발 지점이 있듯 사유와 사색에도 시작점이 있다. 소설은 그 지점을 ‘파과(破瓜)’와 ‘파과(破果)’라는 상징으로 설득한다.
파과(破瓜)는 주인공 조각이 16세를 전후해 인생의 전환점을 맞게 된다는 의미를 암시하는 것으로, 무언가가 시작된다는 복선이다. 파과(破果)는 흠집이 나고 상처 입은 과일을 뜻한다. 조각이 65세라는 나이에 살인청부업을 계속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 그리고 그녀의 신체와 내면에 일기 시작한 스스로의 균열을 드러낸다.
조각은 16세 무렵 살인청부업자가 되는 계기를 맞지만, 65세가 되면서 퇴물․정리 대상으로 밀려난다. 이미 파과(破果)된 삶이었지만, 그 생(生)을 온전히 마주하고 인식하게 되는 과정을 소설은 보여준다.
과거와 현재의 교차는 조각의 신체와 쓸모에 대한 사유를 끌고 가는 구조다. 조각은 살인청부업자로 사는 가해자로 보이지만 동시에 가난과 방치, 어른들의 구조적 폭력 속에서 길러진 피해자라는 점도 소설은 말한다.
조각은 나이가 들면서 서서히 균열된 자기 자신을 마주한다. 누군가의 부품처럼 살아온 생(生)을 돌아보며, 뒤늦은 연대에 대한 애틋함을 깨닫는다. 무너지고 나서야 사유하게 된 조각은, 누군가를 지키기 위해 누군가를 죽였던 몸을 바치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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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이 평생 붙잡고 살았던 문장은 “지킬 것을 만들지 말자.”였다. 류의 말이라면 무엇이든 따랐던 조각은 살인청부업자가 되었고, 평생을 사유 없이 살았다. 류가 죽은 이후에도 류가 만들어 놓은 규칙 안에서 살았다. 이 말이 조각을 보호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조각의 사유를 억압하는 금기나 마찬가지였다.
누군가를 죽이는 일을 업으로 삼게 된 조각에게 ‘지키지 않음’은 곧 생각하지 않음, 관여하지 않음, 자기를 둘러싼 세계에 질문하지 않음을 의미했다. 그렇게 살던 조각이 60세가 넘으면서 자기 생에 대한 질문들을 쏟아내기 시작한다.
강 박사의 가족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강 박사를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면서, 폐지 줍는 할아버지를 도와주면서 조각은 당연하게 여겼던 자신의 외로움과 금기가 맞는 삶이었는지 의심하기 시작한다.
조각이 스스로 생각하고 의심하고 고민하는 삶에 발을 들여놓은 순간―그리고 류의 규칙에서 벗어난 삶에 눈을 돌린 순간―그동안 자기의 삶이 사유의 정지에서 비롯된 종속관계였음을 깨닫게 된다. 그때 조각의 무감각했던 삶에 균열이 일기 시작한다.
사유는 발화 조건인 셈이다. 무너짐에서 시작된 사유는 조각의 삶을 새로운 방향으로, 주체적으로 바꾸는 결정적 계기가 된다. 조각이 금기의 윤리를 깨는 순간 성찰이 시작되었고, 사유와 감각이 제대로 작동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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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은 단 한 번도 사랑받거나 위로받거나 보호받아 본 적이 없는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런 조각을 보호?한 류를 그녀는 신처럼 받들었다. 무사유와 무감각으로만 살던 조각은 류의 눈에 들어 이른 나이에 살인청부업에 뛰어든다. 조각에게 애착은 오직 류를 통해서만 가능했던 감정이다.
류가 죽은 후에도 조각은 류의 가르침을 따라 살아간다. 그러다 노쇠해지는 몸, 일할 때 반복되는 실수가 조각의 존재 밑바닥에 금을 긋기 시작한다. 연고도 없는 사람들과 말을 섞고, 늙고 버려진 개 무용을 데려와 기른다.
조각에게 욕망은 늘 류와 연결된 것이었다. 그러나 늙은 개 무용, 강 박사의 딸 해니, 강 박사와 그의 가족이 등장하면서 조각은 비로소 생각하기 시작한다. 여기서 생각은 ‘의심하기’의 시작이다.
말도 안 되는 조각의 욕망과 지켜야만 하는 존재의 등장은 무너진 조각의 몸 사이로 애착이라는 위험한 즙이 흐르기 시작한 순간이기도 하다. 조각은 머리가 아니라 몸의 균열로 사유를 촉발한다. 드디어 류의 금기를 넘어선 것이다.
투우의 젊음과 힘, 민첩함과 자만할 정도의 자신감이 조각을 위협하지만, 조각은 자기 목숨보다 강 박사의 딸 해니를 지키지 못할까 봐 두려워한다. 이 지점에서 조각의 내면은 급진적 전환을 맞이한다. 생존을 위한 류의 규칙이 아니라, ‘내가 왜 살아야 하는가’라는 사유에서 자기 윤리가 출현했기 때문이다.
이제 조각은 류의 도구적 인간이 아니라, 주체적 존재가 되었다. 투우는 자신의 아버지를 잔인하게 살해한 조각의 이런 변화가 탐탁지 않았고, 고양이가 쥐를 가지고 놀 듯 조각을 대했지만, 누군가를 지키고자 하는 조각의 힘에 결국 굴복하고 만다.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싸움에서 조각은 투우를 이기고 강 박사의 딸, 해니를 지켜낸다. 조각이 스스로 깨달아 발생시킨 새로운 윤리는 한 손을 잃게 했지만, 훨씬 자유롭고 당당한 조각의 모습을 만나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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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의 결말은 화려하지 않다. 그러나 죽음이든 생존이든, 가장 중요한 것은 그녀가 스스로 선택한 한 세계의 윤리적 완성이다. 균열에서 시작된 사유는 마지막 순간에 하나의 실천으로 결실을 맺는다. 붕괴를 지나야 겨우 도달할 수 있는 자리―그것이 조각의 마지막 위치이자 『파과』가 말하는 존재의 인식이다.
『파과』는 노년과 폭력의 서사가 아니라 무너짐에서 시작되는 사유와 자기 윤리의 탄생에 대한 소설이다. 무사유와 무감각이 불러오는 폭력이 어떤 결과로 이어질 수 있는지 인식해야 한다. 『파과』는 반대 지점에서 우리를 성찰과 맞닿게 한다.
자기 존재를 제대로 인식하려면 무너진 자기 자신과 마주해야 한다. 죽음을 경험하면 인생을 다른 각도로 보기 시작하고 성찰의 길에 이르게 된다.―물론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지만.
삶의 경험이 성찰로 이어지지 못한다면, 사유 없는 폭력과 무감각 속에서 존재조차 증명하지 못한 채 사라지는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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