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 예능 조연출로 살아남기
대학교 3학년, 네덜란드 교환학생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오니 취업이 더이상 먼 미래의 일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귀국하자마자 기자, PD 인턴 공고에 지원서를 난사했다. 영자신문사의 뉴미디어팀 인턴과 S사의 웹예능 채널 인턴 서류에 합격했다. 영자신문사 면접을 먼저 보고난 직후 붙었구나 직감했다. 면접 분위기는 너무나도 편안했고, 자신감이 넘쳐 하고 싶은 말을 후회없이 쏟아냈다. 면접관들은 나의 모든 말에 긍정적인 태도를 보였다.
영자신문사 면접을 보고 며칠 뒤 S사 면접을 봤다. 채널의 메인 PD와 진행자가 면접관으로 들어왔다. 연예인을 보는 기분이었다. 성덕된 기분도 잠시, 날카롭고 무서운 면접 분위기에 얼어 붙었다. 그들은 면접 전 내가 제출한 기획안 과제를 신랄하게 비판했다. 디펜스하느라 등에서 식은땀이 났다. 면접을 마치고 자괴감이 몰려왔다. 하고싶은 말을 다하지 못한게 너무 아쉬웠다. 아쉬움이 가득남는 면접을 마치고 집 가는 지하철에서 영자신문사 인턴 최종 합격 소식을 들었다. 그리고 영자신문사 출근 이틀차에, S사 면접 최종합격 메일을 받았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라 기분이 얼떨떨했다.
나의 첫 사회생활은 그토록 꿈꿔왔던 웹 예능 채널에서 스타트를 끊었다. 약 200만 구독자를 보유한 유튜브 채널이었는데, 당시 2030 여성들 중에 모르는 사람을 찾기가 더 힘들었을 정도로 인기가 많은 채널이었다. 그래서 이 채널의 일원이 된다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영광이었다. 게다가 방송국 3사에서 일한다는 자부심(?)도 있었다.
그러나 세상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입사 첫 날부터 마라톤 회의가 시작됐고 밤 11시까지 야근을 했다. 눈치를 많이 보는 극F의 나는, 차가운 회의 분위기에 매번 상처를 받았다. 재밌는 아이디어를 내지 못하면 공무원 학원이나 가라는 선배의 말에 화장실에 가서 홀로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했던가. 쏟아지는 야근 폭탄과 스트레스에 매일 구내염을 달고 살던 암흑기를 지나니 '편집 천재'라는 별명을 얻고 나의 능력을 인정받는 안정기가 찾아왔다.
매주 새로운 연예인들을 만나고 촬영장을 경험하고, 내가 편집한 영상이 인급동을 찍고, 실트에 오르고, 사람들이 재밌다고 댓글을 달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희열을 느꼈다. 직업이 주는 효능감이라는 게 무엇인지를 체감했다. 야근의 고단함도 도파민으로 이겨냈다.
6개월 인턴을 마치고 계약 연장을 제의 받아 인턴이 아닌 '조연출'로 입봉을 했다. 날이 갈수록 편집 실력은 늘었고, 내 이름 뒤에 PD가 붙는 일이 더이상 어색하지 않게 느껴졌다. 그러나 트렌드가 빠르게 변화하는 디지털 콘텐츠 업계에서 살아남기란 쉽지 않았다. 조회수에 일희일비하면 안된다고는 하지만, 신경쓰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편집한 콘텐츠의 조회수가 저조하면 괜히 내 탓 같았다. 편집이 바뀐 것 같다는 댓글 하나, 감 잃었다는 댓글 하나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 매일매일 나의 초라한 성적표가 동네방네 걸리는 기분이었다.
조연출 계약이 끝날 쯤, 메인 피디님은 내게 이례적으로 조연출 급여를 높여 재계약을 하자고 제안해 주셨다. 당연히 너무나도 좋은 제안이었기에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계약 연장을 결심한 뒤로 이상하게 잠이 안왔다. 출근하고 싶지 않았다. 출근길에 교통사고가 나서 병가를 받고 싶다는 생각에까지 이르렀을때, 이 일은 그만두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다.
적은 팀원으로 운영하다보니 사람이 계속 갈려나갔고, 모든 팀원이 안 아픈 곳이 없었다. 나 또한 원인 불명의 피부염과 위염으로 병원약을 달고 살았다. (퇴사를 하니 모든 병이 말끔하게 나았다) 재계약을 안하기로 결심한데에는 여러 복합적인 이유가 있었지만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새로운 일도 도전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방송일을 하다보면 그 안에 갇히게 된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특히 편집을 주로하는 조연출은 다른 사람과 커뮤니케이션할 일이 많지 않고, 편집 스킬만 늘게 되니 매너리즘에 빠지기 쉬웠다. 이게 나의 커리어적인 성장에 어떤 도움을 줄지도 의문이 들었다. 내가 진짜 PD가 하고 싶은지 혼란스러웠다. 워라밸을 찾아, 더 넓은 시야를 갖고 싶다는 마음으로 재계약 번복을 결정했다. 메인 피디님에게 그만두겠다고 이야길하는데 왜인지 죄송해서 눈물이 났다.
그리고 나는 퇴사 2주만에 IT 대기업 N사의 서비스 기획팀에 입사했다.
-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