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진짜 하고 싶었던 건 뭘까?
새학기가 시작되면 장래희망을 적어서 내야 했다. 당시 친구들 중에는 장래희망이 없어서 고민인 친구들이 많았는데, 나는 그 친구들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나는 장래희망을 '하나만' 적어내는 게 힘들었던 아이였기 때문이다. 늘 하고 싶은 게 많았다. 그래서인지 하나의 꿈에 진득하게 집중하지 못하고 이런저런 경험을 유영했다.
나의 최초의 장래희망은 초등학교 1학년 때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때의 나는 선생님이 되고 싶었다. 그 나잇대의 아이들이 가지는 가장 보편적인 꿈이었다. 나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어른, 그 어른의 직업을 동경했고 나도 그들처럼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문이과의 개념도, 훗날의 내가 숫자에는 영 재능이 없다는 걸 모르던 시기에는 아주 잠깐 의사를 꿈꿨던 적도 있었다. 의사가 좋은 직업이라는 어른들의 말에 현혹되어, 의사가 얼마나 되기 어려운지도 모른채 꿨던 한여름밤의 꿈이었다.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어서는 국어 선생님으로 꿈을 구체화했다. 어렸을 때의 나는 도서관에 가서 책을 쌓아놓고 읽는 책 벌레였고, 국어 과목을 좋아하고 잘했다. 초등학교 6년 내내 국어는 단 한번도 100점을 놓친적 없었기에 스스로에게 있는 문과의 재능을 알아본 것이다. (동시에 이과와는 담을 쌓게 된 시점이기도 하다.) 선생님이 되고싶었던 나는, 무한도전의 팬이 되면서 돌연 PD의 꿈을 키우기 시작했다.
무도 키즈로 자란 아이들이라면 한번쯤은 PD의 꿈을 꾸었으리라 생각된다. 매주 획기적인 아이디어로 쇼를 만들어내고 많은 이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던 무한도전은 12살이던 나의 꿈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PD가 되려면 신문방송학과를 가야한다는 말에, 당시에 쓰던 스터디 플래너에 중앙대 신문방송학과를 목표로 한다고 적기도 했었다. (tmi. 나는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플래너를 썼다)
중학생이 된 나는, 진로 시간에 우연히 'PD가 말하는 PD'라는 책을 읽었다. 그 책에는 PD라는 직업의 현실이 가감없이 드러나있었다. 매일 밤을 새는 건 기본이고, 방송이라는 일 특성 상 험한 꼴을 많이 볼 뿐더러 과로사하는 경우도 꽤 있다는 어마무시한 내용이 담겨 있었다. 어쩌면 PD가 되는 것을 말리는(?) 책 같았다. PD 말고도 하고 싶었던 게 많았던 지레 겁을 먹었고 굳이 어려운 길을 택하고 싶지 않아졌다. PD에 대한 열정이 사그라지던 찰나에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을 읽고 큰 감명을 받았다. 그렇게 나는 심리학자라는 꿈을 가지게 되었다.
심리학자를 꿈꾼 뒤로, 심리학과를 진학해야 겠다는 목표가 생겼다. 그때가 아마 중학교 2학년 쯤이었다. 그즈음엔 심리학 책에 빠져 이미 마음만은 저명한 심리학자가 된 상태였다. 그리고 나는 또 나의 장래희망을 바꾸게 되는 드라마를 만난다. 사회부 기자의 이야기를 담은 '피노키오'였다. 사회 문제를 파헤치고 고발하는 일이 멋있어 보였다. 나도 이종석 박신혜 같은 사회부 기자가 되어서 이 불합리한 세상을 뒤집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고등학생이 됐다. 방송부에 들어가고 싶었으나 장기자랑이라는 벽에 부딪혀 방송부원의 꿈이 좌절된 나는 뜬금없이 자치법정부에 들어갔다. 자치법정부 회장까지 하며 교내 자치법정에서 변호사로 활약했다. 변론을 준비하고 배심원들을 설득하는 일이 너무 재밌었다. 게다가 1학년 때 법과 정치라는 과목을 배우면서 법 과목에 큰 흥미를 느꼈고, 좋은 성적을 받으면서 스스로에게 법적 재능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나는 변호사라는 꿈을 키웠다. 그러던 중... 나의 가치관을 바꿔놓는 일생일대의 사건이 발생한다. 헌정 사상 처음으로 현직 대통령이 탄핵을 당한 것이다.
탄핵 시위, 사회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됐다. 비판적인 시각을 기르기 위해 교내 신문 읽기 동아리를 창설해 매주 비평문을 쓰는 활동을 했다. 한겨레의 주간지인 한겨레21을 구독해서 세네명의 친구와 나눠 읽고 글을 쓰는 활동이었다. 자연스럽게 우리 사회와 정치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되었고 다시 중학생 때 희망했던 사회부 기자의 꿈으로 회귀했다. 사회부 기자가 되기 위해서는 사회를 바라보는 시각을 길러야겠다고 생각해 사회학과에 진학했다. 대학교 1학년 때 우연히 교내 법학 동아리에 가입해 2년 간 활동하게 되면서 다시 법조인의 꿈을 스멀스멀 키웠다. (ㄹㅈㄷ 갈팡질팡)
법조인의 꿈은 그리 오래 가진 않았다. 진득히 앉아 공부하는 데에는 영 재능이 없는 내게 하루 14시간 공부를 3년 간 해내야 하는 로스쿨이라는 벽은 너무 높았다. 법학 과목을 족족 에이쁠 맞으며 스스로에게 법적 재능이 있다고 생각했지만, 로스쿨은 또 다른 이야기였다. 그 긴긴 시간을 견뎌낼 자신이 없었다. 법조인의 꿈을 접은 나는 법학 동아리에서 홍보 부장으로 활동하며 카드뉴스를 만들었던 경험을 살려 다시 콘텐츠 분야에 눈을 돌리게 되었다.
콘텐츠 크리에이터 동아리, 지역 방송국 등 여러 단체에서 콘텐츠를 기획하고 제작하는 일을 경험하며 내가 잘하고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지 구체화할 수 있었다. 나는 이야길 만들고 사람들과 나누는 일을 좋아하고 나쁘지 않은 재능이 있다는 걸 배웠다. 그리고 나는 꿈에만 그리던 회사에서 운 좋게 첫 직장 생활을 시작했다.
-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