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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희 Mar 27. 2017

야간열차를 타고

서울여자 도쿄여자 #26

도쿄 여자, 김민정 작가님!     


야간열차를 타다...생각만 해도 가슴 설레는 말이에요. 제가 좋아하는 소설 중 하나가 파스칼 메르시어 작가의‘리스본행 야간열차’입니다. 그 소설은 그냥 제목만으로도 너무 좋아요.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영화를 볼 때나 책을 고를 때, 저는 제목이나 이름이 중요합니다. 아주 어렸을 때 집에서 오빠 언니와 부루 마블 게임을 하면서 접했던 수많은 도시 중 에서도 이상하게 저는 리스본이 좋았어요. 포르투갈의 수도이자 항구도시라는 것도 나중에 알았지만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언젠가 꼭 한번 가보고야 말리라고 다짐한 도시 중 하나가 바로 리스본이에요. 그렇게 리스본만으로도 충분한데 야간열차라니! 그런 소설은 안 읽고 버틸 수 없죠. 두툼한 책의 뒷면을 돌려보면 이런 문구도 나옵니다. <리스본행 야간열차>는 잃어버린 나와 만나는 마지막 순간이다.     


그래요, 작가님. 어디로 가든, 살면서 한번 씩은 야간열차를 타야하는 때가 있는 것 같아요. 낯선 정거장의 플랫폼에 발을 딛고 먼 곳에 도착하는 그런 순간들. 작가님은 야간열차를 타고 그렇게 낯선 곳으로 가보신 적이 있는지 궁금해요. 사실 저는 열아홉 살에 그런 경험을 했었어요. 제가 <서울여자 도쿄여자>를 작가님과 나눠 쓰면서 앞에서 그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는 것 같아요. 작가님은 무척 모범적인 학생이었던 것 같다. 그에 반해 저는 그런 학생은 아니었다. 라고 말이죠. 공부에 그다지 관심이 없는데다 학교생활에 불만이 많았던 저는‘삐뚤어질 테다!’라고 누가 봐도 얼굴에 쓰여 있는 그런 학생이었으니까요. 열아홉 살에 무슨 비장한 각오를 했던 건지, 어느 날 밤 야간열차를 타고 서울을 뜨기로 합니다. 뭐 나름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어요. 보수적인 집안 분위기가 답답했고, 대학도 가고 싶지 않았답니다. 하지만 수중에 돈이 없었어요. 그래서 대학교 원서비(당시에는 여러 군데에 입학원서를 넣을 수 있었거든요. 지금 생각하니 장사가 아니었나 싶네요)로 받은 돈으로 무작정 부산행 편도 기차표를 샀어요. 왜 부산이었을까요?     




가만 기억을 더듬어 보니 나이어린 저로서는 그곳이 서울에서 가장 먼 곳이라고 가늠했던 것 같아요. 그것이 제 인생에서 처음으로 타게 된 첫 야간열차입니다. 잃어버린 나와 만나는 순간이니, 그런 이지적인 사색의 문제가 아니었어요. 그냥 가능하면 서울에서 가장 먼 곳으로 가자는 것뿐이었습니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삶이 있지 않을까, 호기심도 있었던 것 같고, 반항심도 있었던 것 같아요. 밤사이 달려온 기차가 부산역에 도착한 시각이 새벽 5시 정도로 기억되는데, 지금도 그 풍경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약간 비탈진 부산역 광장 앞으로 새벽 비둘기들이 한 무리 모여 있었는데, 제가 툴툴거리며 다가가자 우르르 날아가 버린 장면들 말이죠. 결론부터 말하면, 저는 야간열차를 타고 다른 삶이 가능할지에 대한 답은 얻지 못했어요. 돈이 떨어지고 몸도 아프고 해서 집으로 돌아간 기억이 전부니까요. 하지만 확실한 건 야간열차를 타기 전의 열아홉 살의 저는 아니었다는 사실이에요. 뭐가 명확히 변했다고 말할 순 없지만, 적어도 이전의 저는 아니었던 것 같아요. 단 한 번의 기적 같은 여행도  아니었지만, 단 한 번의 실수였다고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어떤 경험이든 지나고 보면 다 보석 같은 순간이 아닐 수 없어요. 그때가 아니고서는 제가 언제 또 밤기차를 타고 집을 뛰쳐나가 보겠습니까? 작가님, 가끔 그런 생각을 해요. 열아홉 살의 저를 만나러 갈 수 있다면 다가가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싶다고나 할까요? 난 너의 과감함, 패기가 정말 부러워! 라고 말이죠.  


작가님에게 물어볼게요. 살면서 어디로 가든, 야간열차를 타야할 때가 온다면 어디로 가실건가요? 제가 아는  누군가는 쿠바의 종착역에 가겠다고 하더군요. 또 다른 지인은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겠다고 말했어요. 낯선 정거장의 플랫폼, 어디론가 바삐 오가는 사람들이 있는 낯선 도시.  저도 시간이 되면 부산행 야간열차를 한번쯤 다시 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때 걸었던 부산역 앞 광장과 서면시장, 그 시장 2층의 낡은 통닭집과  레코드 가게들이 그대로 있는지 궁금하네요. 그런데 작가님, 도쿄에도 야간열차가 있나요?          


서울 여자 김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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