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릿속이라도 꽃밭이었으면 좋겠어

세상이 두려운 어느 학교 밖 청소년의 망상

by 고그

나는 망상을 자주 한다. 어릴 때부터 상상력이 풍부하다는 소리를 듣기도 했고, 그렇기에 곧잘 자신만에 상상 속 세계에 들어가는 일이 잦았던 나였다. 하지만 한때 풍부했던 상상력은 이제 날 짓누르고 억압하는 존재가 되었다. 그리고 이게, 내가 "공상"이란 표현 대신 "망상"이란 표현을 쓴 이유이다.


망상은 말 그대로 나쁜 거다. 많은 사람들이 하루 동안 많은 망상을 한다. 하지만 내가 장담컨대, 나는 다른 사람들이 하는 망상보다 훨씬 더 많은 망상을 하루에 한다. 그것도 훨씬 왜곡된 시각으로.


나는 밖에 나가기 직전에, 나에게 원한을 가진 사람이 어딘가에 매복해 있다가 날 급습해 죽일 거라는 망상을 한다. 밖에 나가고선 다른 사람들이 다 날 경멸하고 피할 거라는 망상을 한다. 버스라도 타면 다 날 쳐다보는 것만 같고, 검정고시 학원에 가면 불량 청소년들이 나한테 시비를 거는 망상을 한다.


이뿐만이 아니다. 무언가를 사러 대형 마트 같은 곳에라도 가면 칼부림이 일어나는 망상을 하고, 내 옛날 초등학교, 중학교랑 가까운 곳을 지나갈 때면 날 알아보는 동창들이 시비를 걸 거라는 망상을 한다. 심지어 집에만 있어도 집에 강도가 침입해 날 죽일 거라는 망상을 한다.


이처럼 내가 하는 망상은 현실에서 일어날 확률이 거의 없는 경우가 많고, 놀랍게도 나는 이걸 알고 있다.

하지만 나는 이런 망상들을 멈추지 못하고 있다. 그놈의 "혹시나"하는 마음 때문이다.


물론 내가 방금 말한 상황들은 현실에서 일어날 확률이 거의 없다. 하지만 말 그대로 "거의 없다"는 거지, 그게 일어날 확률이 아예 없다는 건 아니다. 설령 그게 로또 맞을 확률이라도 맞는 사람이 있고, 그게 내가 될 수도 있다는 그 "혹시나"하는 마음. 이처럼 "혹시나"는 망상이 내 실제 생활에 기여하는 데 아주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


실제로 내가 하는 망상은 내가 사람들이랑 관계를 맺는데도 어려움을 주고 있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나는 주로 사람들이 나를 볼 때 날 좋아할 거라는 생각보단 싫어하고 증오할 거란 생각을 병적으로 많이 한다. 그래서 항상 사람들과 처음 만날 때도 그 사람이 날 싫어할 거라고 이미 단정 지어 버린 상태로 시작하기 때문에, 사람들이랑 친해지기도 굉장히 어렵다. 또한, 이미 친해진 사람이랑도 내가 싫은데 좋아해 주는 척한다던가, 언젠가는 나를 싫어할 거란 망상 때문에 그 사람이랑 관계를 유지하는 데 굉장한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리고 놀랍게도, 나는 이 모든 걸 다 알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다 알고 있는데 생각을 왜 안 바꾸고 정신병자 코스프레를 하냐면서 날 "정신병 호소인"으로 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건 매우 경솔한 생각이다. 나도 정말이지 이런 내 망상을 고치려고 많은 노력을 해 봤고, 때때로는 날 원망도 해봤다. 하지만 바뀌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아무리 생각을 바꾸고 싶어도 못 바꾸는 것보다 고통스러운 게 없다. 그리고 이건 나 말고도 나랑 비슷한 증세를 겪는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것이다. 그러므로 그런 생각은 하지 말아 줬으면 좋겠다. 그런 말을 하는 건 마치 삶이 고통스러워 자살하려는 사람에게 "너보다 힘든 사람은 더 많아"라며 노력 탓을 하는 것과 같다고 생각한다.


사실 오늘 이 글을 쓰게 된 이유도, 지금 글을 쓰는 오늘 아침에 밖에 나가서 운동을 했는데 운동하는 동안 두 가지 망상이 끊임없이 날 괴롭혀서였다. 첫 번째 망상은 어떤 할아버지가 뒤에서 날 부르는 망상이었고, 두 번째 망상은 산책하던 개가 날 물어서 견주랑 싸우는 망상이었다.


좀 더 자세하게 말하자면, 첫 번째 망상은 내가 공원 트랙을 돌며 조깅을 하고 있는데 뒤에서 어떤 할아버지가 부르는 거다.


"야, 너 일루와바."


그래서 나는 의아해하면서 할아버지한테 갔는데, 그 할아버지가 굉장히 무례한 말투로 다짜고짜 반말을 하면서 내 이름과 다니는 학교를 물어보는 거다. 그럼 당연히 나는 학교 밖 청소년이므로 학교 안 다닌다고 말해야겠지. 그러자 할아버지는 굉장히 비웃으면서 이렇게 말할 것이다.


"불량 청소년 꼴에 밖에는 왜 처돌아 다니냐?"


그리고 여기까지가 내 망상이다.

두 번째 망상은 밖에 산책하다가 매섭게 짖는 강아지를 보고 떠오른 망상이다. 내가 강아지 옆에서 조깅을 하고 있었는데 강아지가 나를 공격하려 했고, 견주가 목줄을 놓치는 바람에 내가 물린 상황이다.


그러면 나는 강아지를 필사적으로 발로 차겠지.

근데 견주가 자기 새끼를 왜 차냐며 나를 경찰에 신고하는 거다.

그러면 말싸움이 일어나겠지.

곧 경찰이 올 거고.

경찰이 와서 내 신원을 조회하겠네?

아! 학교 밖 청소년이라고 딱 나오겠네?

그런데 출동한 경찰이 하필이면 되게 강압적인 데다가 학교 밖 청소년을 차별하는 경찰인거지.

그래서 나는 결국 동물보호법 위반으로 체포되어서 관할서로 끌려가겠지.

그러면 거기서 형사한테 수사받는데 사실 그 형사도 학교 밖 청소년 차별하는 형사였네?

그래서 나는 전과자 되어서 진짜 불량 청소년 된다.


그리고 여기까지가 내 망상이다.


내 생각에도 내가 오늘 한 이 두 망상은 정말이지 왜곡되었고, 그렇게에 말도 안 되고, 현실에서 일어나지도 않고, 일어나서도 안 되는 상황이다. 하지만 내가 오늘 이 망상을 되돌아보며 배운 게 하나 있다. 그건 바로 내가 학교 밖 청소년인 내 신분을 굉장히 비관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 내가 한 망상을 되돌아보면 전부 다 내 두려움에서 기인하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나는 남들이 날 해코지할 까봐 평소에도 정말 두려워하는데, 그 두려움이 내 망상에서 전반적으로 나타난다. 이와 같이, 학교 밖 청소년인 나 자신을 혐오하는 내 그 생각이 내가 망상할 때도 영향을 끼친 것이다.


근데 솔직히 말해서, 학교 밖 청소년이란 신분은 정말이지 형편없는 건 맞다.

나와 같은 학교 밖 청소년 분들에게 상처를 주거나 차별하려는 의도는 아니다.

용감하게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길을 걷기에, 더 빛나는 건 맞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특히 어르신들에게 불량 청소년 소리나 듣고,

사회에서 배척당하고.

내가 학교 밖 청소년이어서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지만, 솔직히 말해 거의 백해무익하다고 난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솔직히 학교 밖 청소년인 자신이 자랑스럽다고 하는 사람들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

물론 이건 그저 자퇴하고 나서 좋은 일 하나 없었던 정신병자인 내 신세 한탄일 뿐이니까, 너무 진지하게 듣진 말아 주었음 한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어쩌면 나는 그들이 부러운 것일 수도 있다.

학교 밖 청소년임에도 자신을 사랑하는 그들이 말이다.

난 그러지 못하거든.


요즘 나는 꿈을 자주 꾼다. 전보다 악몽은 줄어들었지만, 최근에 꾼 꿈이 특히 기억나서 한번 써보겠다.

꿈속에서 나는 죽은 뒤였다.

어떻게 죽었는지는 잘 모른다. 그냥 밑도 끝도 없이 죽었단다.

그렇게 죽은 나는 운 좋게도 다시 인간으로 환생할 기회를 얻게 된다.

거기서 나는 다음 생에서 어떤 삶을 살 것인지 5가지의 보기 중 하나를 고를 수 있었다.

나는 5가지의 보기 중 행복한 삶을 골랐다.

이유는 내가 살았던 삶이 행복하지 못해서였다.


그다음 나는 그동안 날 키워주신 엄마 아빠에게 마지막으로 인사드릴 기회를 얻었다.

나는 엄마 아빠가 주무실 때 꿈속에 나타나서 그동안 잘 키워주셔서 고맙다고 말씀드리려 했다.

그렇게 엄마 아빠가 주무시길 기다리던 중, 나는 꿈에서 껬다.

꿈에서 깬 내 눈가엔 눈물이 고여있었고,

그렇게 나는 잠시 펑펑 울었다.


이 꿈이 특별히 기억나는 이유는, 내가 꿈에서조차 현실에서 행복하지 못하다는 걸 인지했단 게 신기해서였다. 다른 악몽에선 그저 날 싫어했던 사람들(특히 학교 반 애들)이 나타나 날 놀리거나 조롱하는 식의 꿈이었다면, 이번 꿈은 내 지금 상황에 더 와닿기도 해서 정말이지 슬펐다.


아무래도 내 방에 있는 드림캐처(Dreamcatcher)는 작동을 하지 않나 보다.

언젠가 정말 행복해져서 망상조차 하지 않게 되면, 이런 꿈은 안 꿔도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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