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의 진짜 문제는 이혼이었을까?
최근 <이혼숙려캠프>를 열심히 봤다. 방송 윤리에 대한 고민이 없진 않았지만, 쭉 보고 나니 혼인한 부부든 아니든 현대 한국인들이 어렵고 고통스러운 상황에 놓이는 레퍼토리는 정해져 있다는 생각이 든다.
현대를 사는 인간에게는 경제적 환경과 정서적 환경이 참 중요하다. 둘 다 충족되지 않는 사례가 있고, 하나씩 결핍된 사례가 있다. 반대로 이 두 개가 다 충족된 사람들은 별다른 문제 없이 잘 산다. 건강 문제나 다른 위기가 생겨도, 경제적으로 정서적으로 버텨지면 그나마 견딜만하다.
경제적 환경이 좋음에도 정서적 환경이 심각한 케이스는 그나마 낫다. 차량 7대 등 수십 억 자산을 가진 남편이 아침부터 홀로 빵을 굽고 호화 생활을 할 때 혼자서 네 아이를 돌보던 연하의 여성, 많이 힘들어 보였지만 적어도 극도로 위태롭게 보이진 않았다.
남편이 월 생활비 500만 원을 주고 멀쩡한 아파트가 있음에도 매월 소주 60병을 마시던 여성의 경우에도 치료만 잘 받으면 괜찮아질 것 같다는 희망이 보였다. 그 사람은 알코올 치료만 잘 되면 어떻게든 살 수 있다. 그게 쉽진 않겠지만 아직까지 지방간을 제외한 건강 문제는 없었고 생겨도 치료할 수 있다.
정서적 환경이 괜찮은 상태에서 경제 문제만 있을 경우에는 그 단단한 마음을 가지고 열심히 살면 된다. 경제적 안정을 이루는 게 쉽진 않지만 정서적 안정을 굳힌 후 타인과의 비교의 늪에 빠지지만 않는다면 삶을 영위할 수는 있다. 이런 사람들의 삶은 점점 나아질 것이다.
진짜 문제는 경제적 환경과 정서적 환경이 모두 위태로운 경우에 더 심각하게 발생했다.
월 300만 원 지원금을 받으며 일하지 않고 누워만 있는 초고도비만 남편을 두고 사실상 홀로 여섯 아이를 양육하던 30대 초반 여성은 정말 고통스러워 보였다. 나중에 보니 화장품 방문 판매 일에 빠졌다고 한다. 이 와중에 첫째 아이의 말이 늦게 트이자 두려움을 느껴 400만 원 상당의 아동용책 전집을 샀고, 이후 그 빚이 2천만 원까지 불어난 사실이 드러났다.
여섯 아이가 걱정됐다. 그 여성은 고등학교 3학년 때 첫 임신을 한 후 내리 여섯 아이를 출산했다. 방송 출연 당시 일곱째를 임신한 상태였다. 그 여성은 경남의 한 지역에서 아동수당을 받으며 살았는데 남편이 일하지 않아 경제적으로 위태로운 상황이었고, 정서적으로도 마찬가지였다.
양극성 장애(조울증)를 가진 네 아이의 엄마도 마찬가지였다. 배달 일을 하는 남편의 월 실수령액이 350만 원인데, 보증금 2천에 월세 60짜리 집에서 살았다. 그런데 차량은 1억 원 상당의 EV9이었다. 이 차량을 유지하기 위해 매달 120만 원을 냈다. 즉, 350만 원을 받은 후 그 절반 이상을 월세와 차량 유지비로 지출했다. 수천만 원가량의 빚까지 있었다. 네 아이를 양육할 수 있는 상황으로 보이지 않았다.
이 여성은 다단계 회사에 빠져 있었다. 자신을 소개하길 대기업에 다니다가 육아휴직 중인 워킹맘이라 했다. 그 대기업은 암웨이였다. 그가 인스타그램에 암웨이의 상품 사진을 업로드 하며 애사심을 언급한 글 때문에 이 같은 사실이 드러났다.
경제적으로 정서적으로 결핍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고독 속에 파고드는 이들이 있다. 이들은, 때론 개인을 넘어 세력화된 착취 세력의 형태로 존재한다.
경제 결핍에 파고드는 이들로는 금융 사기 세력이 있다. 방송에 등장하는 또다른 여성은 로또 번호 분석 사기에 1천만 원을 잃었다. 주식 리딩방을 통해서도 같은 금액을 잃었다. 일명 팔랑귀 부부의 사연이다. 경제적으로 튼실하지 않은 상황에서 혹은 어려운 상황에서 일확천금의 감언이설로 돈을 빼앗는 세력이 바로 금융 사기 세력이다.
탈북자 출신 의사 아내와 사는 남편의 경우에도 코인 사기를 당하는 와중이었으나 아내의 직업과 능력 덕에 버티고 있었다. 그와 같은 경제적 배경이 없는 경우엔 안 그래도 어려운 상황에서 매우 큰 돈을 이상한 곳에 잃었다. 여섯 아이를 키우면서 경제적 위기에 놓여 있는데 수백만 원을 아동용책에 지출하는 건 납득하기 어려운 경제 행위다. 그러나 나는 광주의 경제 시민단체 광주청년지갑트레이닝센터와 함께 ‘청년금융소외시대’라는 이름의 연재를 하며 이 같은 합리적 관점에선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경제 행위를 하는 사람들의 사례를 엄청나게 봤다.
코인 사기, 주식 리딩방 사기, 대부업, 사채, 다단계. 사회를 좀먹는 어둠의 경제 세력이 주도하고 있다. 그러나 처음부터 경제적으로 위태롭지 않았음에도 큰 돈을 잃을 수도 있다. 뇌의 도파민 구조를 악용한 도박이 그렇다. 도박사이트에 빠진 것으로 보이는 출연자를 보며 방송 이후가 예감됐다. 못 끊을 것이고 반복될 것이다. 분명 더 많은 경제적 타격이 그 집에 들이닥칠 것이며 자녀는 훗날 엄마를 원망하고 경멸하게 될 것이다. 이것들만 잘 회피해도, 인생 난이도가 낮아진다.
방송이 거듭되고 나니, 다들 안다. 아, 저 사람도 경제적으로 그 문제를 안고 있구나, 하고. 왜냐면 레퍼토리가 동일하기 때문이다. 금융에 대한 교육이 참 중요한데 방송 출연자들의 과거 환경이나 원가정에서의 일을 보면 불가피했을 것 같다. 방금 언급한 금융 사기 세력에 대해서는 엄정한 조처가 불가피하다. 사람들의 삶을 파괴하는 반사회적 범죄 집단에게 그에 합당한 벌을 주어야 한다.
정서 결핍에 파고드는 이들로는 반사회적 세력이 있다. 신천지, JMS 등 기독교계 사이비 세력과 진보당 등 정치 사이비 세력이 이에 해당한다. 이들은 정서적 안정감을 미끼로 노동력을 착취하는 경우가 많다. 잘못된 신념과 팩트부터 틀린 세계관을 토대에 놓고 사람들을 현혹한 후 결국엔 종속시킨다. 이렇게 시작해서 마지막엔 돈까지 요구한다. 여기 빠지면 어느새 완전히 잘못된 신념을 갖고 사는 사람이 돼 버린다.
정말 신기하게도, 어린 시절 잠시 몸 담았던 청소년 단체의 결핍 많았던 친구들은 다 비슷한 레퍼토리로 흘러 갔다. 진보당 계열 단체에 소속되었다가 사이비 종교 신천지에 갔다. 그 배경에는 가난과 정서적 위기가 자리잡고 있었다. 다단계에도 많이들 빠졌고, 오랜만에 누굴 만났단 이야기를 들어 보면 죄다 그런 레퍼토리였다. 그러다가 도박에 빠지고 앞서 언급한 경제 문제들을 시차를 두고 마주했다. 이후 마음이 아파 알코올에 의존했다. 이들은 놀랍도록 취약했다.
경제적으로 정서적으로 사람들의 삶을 위협하는 반사회적 세력을 감시하고, 위기 상황에 놓인 시민들도 안정적으로 살 수 있게끔 안전한 환경을 조성하는 것, 정말 중요하지만 무척 어려운 일이다. 지역사회의 중독센터부터 시작해서 도처에서 너무나 많은 안전망이 필요하다. 근데 이런 사안만 보다 보니 이제는 어떤 레퍼토리인지 알겠다. 피해자들이 어떤 류의 사람에게 어떤 이야기를 들었는지 알겠다. 위기에 처한 이들을 구출하고, 반사회적 세력의 활동을 무력화해야 한다. 그런데 위기가 감지돼도 출연자들의 능지에 대한 언급만 상당하니 참 안타깝다.
<진격의 거인> 속 대사가 떠오른다. 다들 무언가의 누군가의 노예였다는 대사 말이다. 경제적으로 정서적으로 결핍이 크면 클수록 나를 종속하는 대상에 대한 의존성은 더 짙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