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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규 Feb 29. 2020

나는 신천지에서 20대 5년을 보냈다

[신천지 특집] ① 고백

'나는 신천지에서 20대 5년을 보냈다'


 지난 2019년 9월부터, 친구 형민과 함께 출판을 준비하고 있던 책의 이름이다. 우리에게는 지난 시간에 대한 설명이 필요했다. 그 시절에 대해 떠올려보니, 온몸이 떨려오고, 숨이 가빠졌다. 브런치로 글을 옮기고 있는 지금도 나는 떨고 있다. 무엇이 그렇게 가슴을 아프게 하는지, 쓰면서도 도망치고 싶었던 글이다. 과거를 제대로 마주하는 건 언제나 두려운 일이다. 그렇지만 최근 페이스북에 작성한 ‘신천지’ 관련 글에 대한 ‘정보’를 어디서 얻었는지 밝힐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여, 진솔하게 이야기하려고 한다. 이 이야기를 하지 않으면, 어딘가에서 들은 걸 짜 맞추었다거나, 소설 같은 이야기라고 생각하는 것도 합리적이기 때문이다.


#. 김동규/2016년


 나는 5년 전, 신천지 센터 과정에 있었다. 가장 친한 친구였던 형민이 나를 전도했기 때문이다. 형민을 처음 만난 건 고등학교 2학년이던 18살 때였다. 그해, 나는 사회운동 진영 중에서도 NL계열에 해당하는 청소년 단체 21세기 청소년공동체 희망에 가입한 것을 계기로 통합진보당에서 청소년 당원으로 활동하고 있었다. 나에게 형민은 처음으로 서로를 이해한 친구이자 현재까지도 가장 가까운 친구다. 지난 8년간, 형민의 군생활 시기를 제외하고, 우리는 이번 주까지 매주 평균 3번씩 만났을 정도로 가까운 사이였다. 내가 그 시절 청소년 단체 '희망'에 간 건, 아마 어린 시절에 겪었던 학교폭력을 비롯한 아픔이 주요하게 작용했던 것 같다. 나는 당대의 현실이 너무나 부당하다고 느끼고 있었고, 세상을 바꾸기 위해 스스로가 가진 것이라면 무엇이든, 바치고 싶었다. 누군가 이끌어주는 이를 따라 헌신적인 한 사람의 병사로서 담대한 변화의 길에서 죽고 싶었다. 그러나 2014년 12월, 통합진보당이 해산된 이후, 나는 방향성을 상실한 채 대학에 진학했다. (현재는 통합진보당에 매우 비판적인 관점을 가지고 있다)


 2016년 초, 형민에게서 만나자는 연락이 왔다. 그는 나에게 성경을 배워보자며, B를 소개해 주었다. B는 자신을 전남대학교에 다니는 20대 후반 남성이자 '강사'라고 소개했다. (이후에 알고 보니, 다른 대학 소속임을 물론이고 모든 게 거짓이었다) 이후 나는 자주 형민, B와 만남을 가졌다. 처음에는 몇 번에 걸친 만남 과정에서 심리상담도 진행하고, 어느 정도 분석적인 말도 들었다. 얼마 후 B는 “성경을 공부하면 정신적 성장에 큰 도움이 된다”며 본격적인 성경 공부를 시작하자고 했다.


 2016년 초, 나는 노동 사건으로 수사를 받고 있었다. 특성화고에 다니던 지인이 현장실습생으로 취업한 사업장에서 심각한 인권침해에 직면했다. 그는 주 6일을 매일 11시간씩 일했고, 3개월 간의 노동 끝에 임금 205만 원을 체불당했다. 점장은 그의 정강이를 걷어차고, 심한 욕을 하기도 했다. 그의 이야기를 들은 나는 깊이 분노했다. 그래서 회사 대표에게 전화를 걸어 항의했다. 대표는 “특성화고에서 온 현장실습생에게는 최저임금을 안 줘도 된다”고 당당하게 응대했다. 그러나 그건 사실이 아니었다. 앞선 2011년, 기아차 광주공장에서 일하던 영광실고 현장실습생 김민재가 주 60시간에 이르는 장시간 노동을 견디지 못하고 뇌출혈로 쓰러졌다. 비난이 쇄도하자, 당국은 “현장실습생이라고 해도 현장 노동자와 똑같이 일하면 노동자로 인정하고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는 내용의 대책을 발표했다. 그러나 이 사실을 전달했음에도 사업주는 임금 지급을 거부했다.


 이에 나는 이 사건을 페이스북을 통해 폭로했다. 그 이후 한동안 그 회사 직원들에게 견디기 어려운 비난을 받았다. 다행히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통해 사건은 상당히 널리 알려졌다. 논란이 커지자, 대표는 합의를 종용했다. 학교 교사들이 나서서 회사 대표와 이야기를 나눈 후 체불임금의 일부를 받기로 합의했다. 교사들은 내 지인에게 “김동규는 이상한 새끼니까 앞으로 만나지 말라”고 했다. 얼마 후 학교 측 중재로 합의서에 도장이 찍혔다. “갑 (사업주)은 을 (노동자)에게 체불임금 64만 원을 지급한다. 을은 갑에게 더 이상의 민형사상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을은 당장 생계가 어려웠기 때문에, 합의는 그대로 이루어졌다.


 1주일쯤 지났을까. 광주 남부경찰서에서 전화가 왔다. 회사 대표가 명예훼손 혐의로 우리 두 사람을 고소했으니, 출석해서 경찰 조사를 받으라는 내용이었다. 담담하게 알겠다고 이야기했지만, 사실은 무서웠다. 깊은 무력감이 엄습했다. 곧 남부경찰서에 출석해서 경찰 조사를 받았다. 한 달 후 검찰에서도 연락이 왔다. 출석해서 검찰 조사를 받으라는 내용이었다. 외로웠다. 누군가, 함께 해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다행히 그해 6월 경, 검찰로부터 김동규에 대한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상 명예훼손 사건이 ‘무혐의’로 종결되었다는 서면을 받았고, 사건은 별 탈 없이 종결되었다.


 사업주와 법적 다툼을 이어가던 2016년 봄, 나는 심적으로 굉장히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었다. 밤이 되면 견디기 힘든 괴로움이 가슴을 짓눌렀다.


 그런 나에게 B의 제안은 아주 달콤하게 느껴졌다. 한 번쯤 기독교 세계관을 배워보고 싶기도 해서, 무슨 내용인지 들어보자는 생각으로 그의 제안을 수락했다. 우리 세 사람은 광주 시내에 위치한 신천지 '복음방'에서 만났다. 그때는 단순한 스터디 카페인 줄 알았다. 몇 차례 만남을 가진 후 B가 함께 성경을 공부하고 싶다는 사람이 또 있다며 C를 모임에 참여시키자고 했다. 이때부터 우리 네 사람은 1주일에 두 번씩 만났다. 이때 공부한 내용은 기독교 교단들이 보편적으로 공유하는 세계관 정도에 불과했다. 예수에 대한 영화를 보고 성경에 나오는 상식적인 이야기들을 들었다. 그들은 아직 이야기할 단계가 아니지만 숨겨진 이야기가 있다는 뉘앙스를 풍겼다.


 한 달 정도 시간이 흘렀다. 곧 B로부터 자신이 가르칠 수 있는 건 여기까지 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는 ‘센터’에서 교육을 받자고 했다. 6개월 동안 월, 화, 목, 금 2시간씩 수업을 들으면, 성경을 어느 정도 터득할 수 있다고 했다. 나는 그의 제안을 수락했고, B를 제외한 A, C와 함께 센터에서 수업을 듣기 시작했다. 센터는 전남대학교 사거리에 위치해 있었고, 그럴싸한 교회 간판을 달고 있었다. 나는 이때부터 주 4회 수업을 들었다. 당시 나는 나름의 관점에서 그들이 이야기하는 내용을 검증하려고 노력했다. 그때는 ‘신천지’가 무엇인지 몰랐다.


 센터에 입교한 후 몇 달 정도 교리를 공부했다. 주 4회 센터에 출석했고, 저녁반이라 강연은 7시부터 9시까지 진행됐다. 물론 이외에도 A, C와 많은 시간을 함께 보냈음은 물론이다. 강사의 실력은 매우 탁월했다. 타고난 재능이라고 느껴질 정도였다. 가장 인상 깊었던 강연은 ‘한경직과 영락교회, 5.18’에 대한 강연이었다. 강사는 일제 시절, 마지막까지 신사 참배를 거부하던 중 순교한 주기철 목사에 대해 이야기한 후 한경직 목사를 설명했다. 5.18 당시 수많은 기독교인들이 광주의 거리에서 피를 흘리며 쓰러졌는데, 한경직을 비롯한 기독교 지도자들은 전두환을 향해 “여호수아 장군처럼 위대해지시라”고 기도한 일을 이야기했다. 이어 “저희 교단에도 5.18을 겪으신 분들이 있다”며 당사자 몇 사람이 겪은 일을 이야기해 주었다. 흠잡을 때 없는 명강연이었고, 이때 내 감정은 상당히 고양되었다.


 나는 날이 갈수록 앞으로 어떤 내용이 나올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페이스북에서 ‘신천지’에 대한 글을 봤다. 전남대학교 대나무숲에 올라온 전도 방식에 대한 설명이었다. 그때부터 의심의 마음을 가지기 시작한 나는, 얼마 후 지인을 통해 "내가 다니고 있는 센터가 신천지"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속았다는 깨달음에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배신감이 엄습해왔다. 그들이 끊임없이 이야기하는 ‘교리’를 판단하는데 집중하다 보니, 정작 내가 어디에 와있는지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았다.


 다음날 전도사를 찾아가 “여기가 신천지가 맞느냐”고 물었다. 그는 답하지 않았다. 성경을 만지작 거리며 “이게 맞는지 틀린 지가 중요한 것 아니냐”고 했다. 나는 “일단 여기가 신천지가 맞는지 말해달라”고 했다. 이후 약 1시간 동안 “그게 아니고, 일단 여기가 신천지인지 아닌지 알려달라고”하는 식의 날 선 공방이 오갔다. 결국 내가 “나도 교리를 들어보고 분별하고자 한다. 우선 여기가 신천지인 지 아닌 지는 알아야겠다”라고 설득하자, 그는 자신들이 신천지라는 사실을 털어놓았다. 나는 이루 말할 수 없는 분노를 느낀 채 그 자리를 떠났다. 그날 이후 마음을 다독이기까지 또 긴 시간이 필요했다. 물론 이건 내가 겪었던 일을 대단히 압축적으로 서술한 것이다. 그곳에서 많은 일들을 겪었고, 이는 벌써 5년 전 일이 되어버렸다.


 그날 이후 나는 한동안 형민을 만나지 않았다. 그러나 우리는 얼마 안가 그 이야기를 묻어둔 채 다시 친구로 지냈다. 나는 그곳을 빠져나온 후 그들의 교리상 허점을 파악했지만 굳이 형민에게 이야기하지는 않았다. 이후 나는 정당, 노동조합, 시민단체에서 활동했다. 특성화고 ‘현장실습생’들의 권리를 위해 싸우던 시민단체 광주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에서 사무국장으로 일하며 광주의 중학교, 고등학교, 대안학교에 노동인권 강연을 하고 다니기도 했다.


 몇 년 안가, 서서히 신천지에 대한 마음을 잃게 된 형민은 2017년부터 그가 신천지에서 보고 듣고 배운 모든 것들을 나에게 이야기해주기 시작했다. ‘전남대 총학생회’ 선거가 신천지 ‘개입 사건’으로 인해 무산된 직후였다. 형민은 2019년 ‘사고자 처리’ 직전까지 신천지에서 5년을 보냈다. 그는 그 사이 신천지 베드로지파에서 전도 팀장과 구역장 대행을 맡기도 했다. 그가 완전히 조직을 이탈한 2019년 말부터 우리는 조금씩, 각자가 알고 있는 신천지에 대한 모든 것들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우리에게는 지난 시간에 대한 설명이 필요했다.


#.


 작년부터 우리는 우리들의 경험을 글로 정리하기 시작했다. 외부에서, 내부에서 5년간 신천지를 겪은 두 사람의 이야기이다. 이는 SNS에 올리기에는 상당히 방대한 분량이라, 텀블벅에서 펀딩을 받아 독립출판을 하여 우리들의 경험을 나누는 것을 기획하고 있었다. 그러나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시점에 신천지가 ‘코로나 19’ 감염사태의 중심이 되었고, 전국적인 주목을 받게 되었다. 그래서 이 시점에 이 책을 출판해도 될 것인지, 한동안 고민했지만 그대로 진행하기로 했다.


 신천지에 대한 정보를 아무리 찾아봐도, 내부에서 최근 5년을 보낸 청년이 경험한 정도로 조직의 문화, 습성, 성질을 이해한 상태에서 신천지를 분석해낸 글은 찾아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일부 반신천지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전혀 사실과 맞지 않는 이야기들을 하기도 한다. 신현욱 전 교육장은 조직의 핵심이었으나 2006년에 이탈하여, 지난 14년간 내부에서 있었던 일들을 잘 이해하기 어려운 위치에 있다. 최근 씨리얼에 출현하기도 한 CBS 변상욱 기자는 상당히 긴 시간 동안 취재한 것을 바탕으로 내부 사정을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지만, 직접 신천지 내부를 경험하지 않았을뿐더러, CBS의 '신천지에 빠진 사람들(신빠사)'이 신천지에 대해 제대로 된 관점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기독교식 '이단은 불쌍한 사람들' 대상화로, 신천지에는 신빠사 1편에 등장하는 '효은 (가명)'과 같은 사람, 존재하지 않는다.


 참으로 우연의 산물로 인한 것이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것 중에는 그 어디에도 나와있지 않은 것들이 상당하다. 그래서 조직의 핵심인 베드로 지파에서 형민이 직접 겪은 경험과, 외부에서 그들을 마주해온 나의 경험 및 해석들을 종합하면, 그들에 대한 나름의 관점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최근 관련 정보들이 쏟아지고 있으나, 왜곡된 내용들도 많을뿐더러, 굉장히 단편적이다. 그래서 왜 청년들이 그곳에 가는지 썼다. 사적이고, 정념적이며, 부끄러운 과거를 '경험'으로 포장하기 위한 욕심이 없다고 한다면 거짓말이겠지만, 그저 과거의 한 시절에 대해 담담하게 썼다. 정보이기 전에 우리들의 삶의 한 시기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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