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켓몬빵 인기로 아이들이 빵이 먹고 싶다며 몇번 이야기 했지만 가장 먼저는 줄을 서서 기다릴 자신이 없고 그만큼의 에너지를 들여야 하는 타당성을 알지 못했기에 그저 못구한다고 일관하고 있었다. 그런중에 초4인 딸 학교 담임 선생님이 방학식날 아이들에게 눈을 감아보라 하시더니 스무개가 넘는 포켓몬빵을 구해서 아이들에게 방학 선물로 하나씩 나눠 주신 것이다. 포켓몬빵을 먹어 보지 못했던 딸은 눈이 휘둥그레지며 그것을 들고 집에 와 들뜬 마음으로 이야기를 쏟아냈다. 그럴만하다. 엄마도 안구해 주는 포켓몬빵을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담임 선생님이 주셨으니 말이다. 선생님은 지인 동원해서 그 많은 빵을 구하느라 애쓰셨다고 한다. 역시 포켓몬빵은 사랑이다. 주변에 포켓몬빵을 구해서 조카나 지인 아이들에게 선물로 주는 이들이 제법 있는걸 보며 포켓몬빵에 담긴 사랑을 여차 느끼는 바였는데 스무개가 넘는 포켓몬빵을 구한 선생님은 사랑과 애정이 아니고는 말로 설명이 안될거 같다.
그런와중에 그 이야기를 들은 아이들 아빠가 마음이 동했는지 포켓몬빵을 사러 가겠다며 호언장담한다. 물론 한번에 실천이 되지는 않는다. 평소 이것 저것 따지고 재면서 자기 기분에 따라 말이 바뀌는 성향이라 나로서는 그저 한귀로 듣고 한귀로 흘리는데 아이들은 아빠의 말에 기대감에 부풀어 아빠에게 종요하기 시작한다. 역시나 그것이 통했는지 갑자기 편의점을 간다고 나선다. 물론 단서를 달고 말이다. 아이들에게 같이 가자고 하는 것이다. 그 시간이 밤 10시 가까운 시간이라 나로서는 영 달갑지 않은데 간절함이 큰 딸이 따라나서겠다며 옷을 챙겨 입는다. 아이가 열성이니 말릴수도 없고 우선 다녀와 보라 한다.
결론적으로 1시간 넘게 기다려서 딱 하나 사왔다. 그날 딱 한개만 들어온 귀하고 귀한 포켓몬빵을 가장 먼저 기다린 남편과 아이가 획득하게 된 것이다. 나로서는 영 달갑지 않다. 달랑 한개만 구하기 위해 1시간이 넘는 시간을 편의점에서 보낸다는 것이 낭비에 가깝기 때문이다. 남편은 그런 것에 전혀 개이치 않는 사람이고 말이다. 가만 생각해 보았다. 포켓몬빵을 대하는 자세가 이리도 다르단 말인가?
가장 우선적으로 나는 불활식한 것을 견디지 못하고 가장 싫어하는 사람이다. 나라는 사람은 확실이라는 명제가 붙을 만큼 주변에서도 인정하는 바다. 반면에 남편은 확실보다는 불확실에 가깝고 불확실한 것에 대해 스스로 전혀 의식이 없는 사람이다. 그렇기에 나는 확실이 전제되지 않는 이상 움직이지 않는 편이며 남편은 확실과 불확실 여부에 관계없이 그저 자기 몸과 마음이 동하면 그만이다. 이런면에서 부부가 서로 다른 건 이점이 될수도 있겠다는 걸 이번 포켓몬빵으로 크게 깨달은 바다.
언제나 남편의 확실치 못함이 나에게는 불안으로 작용을 해왔다. 나의 불안을 잠재울 수 있는 건 확실한 근거와 증명인데 남편은 언제나 불확실한 근거와 증거없음을 들어내는 사람이었기에 나로서는 그 사람 자체가 불안요소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나에게 확실은 책임의 또 다른 영역이었고 그에 반해 불확신을 전제하는 남편은 무책임으로 읽혀질 수밖에 없는 연결고리로 꽤 오랬동안 남편을 미덥지 않게 바라온 것이 사실이다. 나에게 확신은 책임의 영역이지만 남편에게도 그 명제가 적용되는 건 아닌데 말이다.
그 이후 남편이 오는 금요일 저녁이면 아이들은 아빠 얼굴 보자마자 포켓몬빵 타령을 한다. 옆 아파트에 마침 편의점이 생겨서 남편은 호기롭게 또 나선다. 남편은 무언가 시작하기 전에 생각만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지만 어렵게 시도한 일은 또 주구장창 하는 성격이기도 하다. 아마도 그것이 인정으로 스스로에게 받아들지는 일이라 더욱 그런거 같다. 포켓몬빵을 구해오는 아빠가 아이들에게 영웅으로 비춰지니 말이다.
이날 역시 달랑 한개 들어온 빵을 1시간이나 편의점 밖에서 모기에게 뜯겨가며 전리품처럼 들고 온 남편은 아주 의기양양이다. 나는 다시는 편의점에 가지 말라고 말한다. 달랑 한개를 구하기 위해 그만한 낭비는 이제 그만해도 되겠다며 말이다. 그리고 이미 아빠의 애정은 아이들에게 확인사살이 되었으니 말이다. 이날은 궁금하기도 해도 해서 강아지 산책겸 나가는 길에 편의점을 지나 가는데 애잔함이 그에게서 느껴진다. 하지만 그 애잔함에 동참할 생각이 없는 나는 내 갈길을 간다. 그 애매하고 불확실한 상황에 나를 굳이 끼어 넣고 싶지 않은 마음이었다. 몇시쯤 올거라는 편의점 주인의 말이 우선은 가장 불확실하고 몇개가 들어올지 모르지만 대부분 달랑 하나일 경우가 많은 것도 나에게는 기다릴 이유보다는 기다리지 않을 이유로 작용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가장 큰 요인은 편의점 앞에서 서성이고 있는 것 자체가 나에게는 굉장한 불편감을 주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나는 상황을 주도하는 성향이 큰 사람이기에 편의점 앞에 서성이며 기다리는 것이 내 주도성을 빼앗기는 것에 가깝다. 그런 면에서 남편은 상황에 대한 주도성 역시 느끼지 않는 사람이다. 그런 상황에서 불편하다거나 신경이 쓰인다거나 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다만 모기에 뜯겨서 문제긴 하지만 말이다.
어쩌면 이건 감정과 이성의 차이일수 있다. 감정적인 남편에게는 오로지 아이들을 위해 포켓몬빵을 획득하는게 목적일 테고 이성적인 나에게는 목적물보다는 그 목적물을 획득하는 상황이나 방법에 대해 자꾸만 이성적인 잣대가 드리워져 판단을 하게 만드니 말이다. 여러모로 남편과의 차이가 이럴때 이점이구나를 다시 한번 느낀다.
아이가 셋인 우리집에 편의점에서 하나씩마 획득할 수 있는 포켓몬빵은 아이들 불화의 원인이 되기도 해서 이마트에서 1인당 3개씩 구할수 있다고 하니 남편은 이마트 오프런을 위해 주말 아침 9시도 전에 이마트를 갔다. 벌써 2주째 주말 아침마다 이마트 오픈런 중이신 남편에게 경의를 표한다. 한번은 따라 나서겠다는 막내까지 합세해서 (이 역시 나는 굉장히 불편했다. 아침 9시도 전에 아이를 줄 세워 한다는 것이 나에게는 불필요한 요소였기에 말이다. 더운 날씨에 아이가 힘들 것도 계산이 되니 말이다. 반면 아이는 너무도 행복하니 이건 엄마 문제인걸로!) 6개를 특템을 해왔다.
결론적으로 감정적으로 앞뒤 가리지 않고 일을 저지르는 남편과 이성적이고 현실적인 나의 대안은 최강의 조합이라는 것이다. 둘다 감정적이지 않아서 다행이고 둘다 이성적이지 않은 건 나에게는 괜찮다 여겨지는데 아이들 입장에서는 너무 메마르려나?
포켓몬빵 덕에 남편을 객관화 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나에게는 틀림으로만 일관되게 여겨지던 그를 이해하는데 굉장히 큰 의미있었던 이상 포켓몬빵 구매후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