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 응급실에서 바로 서울로 가셔서 수술하라는 말에 우선 통증에 대한 처지만 한 후 새벽 4시에 펜션을 퇴실하고 서울로 출발했다.
엄마,아빠가 응급실 간 사이 중2 큰아이가 서울로 올라갈 짐을 싸고 있었다. 카톡으로 이미 나와 이야기를 하던 큰아이가 대처를 한 것이다. 아픈 아빠가 운전을 하면 괜찮을까 염려를 하면서 말이다.
작년 제주도 여행에서도 그렇고 큰아이는 감정에 휘둘리기 보다는 대처하며 상황에 임하는 편이다. 큰아이의 이런면은 남편과 다르고 남편에게서 내가 원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큰아이가 아빠와 닮지 않은것에 감사를 해야할까? 그래 이런 부분은 참 다행이다 싶다.
미리 짐을 싸놓은 덕분에 펜션에 도착하자마자 서울로 출발한다. 나와 아이들은 잠에 빠지고 불안한 친정엄마가 남편에게 자꾸만 말을 시킨다. 간간히 들려오는 친정엄마와 남편의 대화.
이번 여행에서 나름 소득이라면 엄마가 그간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남편에게 전한 것이다. 그저 좋은게 좋은거라 여기고 시댁에서 나에 대한 온갖 억측에도 엄마는 설마 진짜 그럴까 하셨던 분이다. 그런분이 내 편에 서서 아니 우리 부부와 아이들을 위해서 할말을 해주신다. 남편을 우리에게서 뺐으려고 했던 시댁과는 다르다.
그렇게 갑작스레 여행이 종료되고 남편 맹장수술을 무사히 마치고 나는 아이들을 챙기고 남편은 간호병동에서 보호자없이 입원중이다.
오늘 친정엄마가 전화가 와서 할말이 있다며 남편에게 잘하라고 하신다. 이러나저러나 아이셋 키우는 가장의 무게감이 느껴지신다며 잘해주라고 하신다. 그리고 내가 애쓰는 모습도 보였다며 처음으로 위로의 말을 전하신다.
남편은 살수록 내가 짊어져야 하는 짐의 무게만 더할 뿐이다. 시댁과 전혀 상관이 없었다면 기꺼이 짊어져줄 짐이다. 하지만 시댁과 전혀 분리되지 못하고 시댁과 우리 가정 사이에 여전히 우선순위를 시댁에 두는 남편을 용서하기 쉽지 않다.
엄마에게 남편과 지금껏 사는거만으로도 난 충분히 잘하고 있다 이야기했다. 그 이상 잘하고 싶지도 않고 잘할 이유도 없다고 말이다. 그 이상은 내 홧병을 키우는 짓인걸 알기에 말이다.
여전히 자기만의 세계에서 탈피하지 못한 채 살아가는 그를 견뎌내는 것은 사랑도 미움도 아닌 그저 그 사람이 감당할 수 있는 선에서만 인정하고 받아드리는 것이었다.
항상 너답다 라는 것에 단 1도 예외가 없는 그 사람을 그저 그런 사람이라고 명하는 것이 나에게 가장 이로운 것임을 말이다.
아주 가끔 너답지 않은 그 이면의 모습이 날 조금은 위로할지도 모르지만... 여전히 너다운 그것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않는 그의 식상함이 나를 더 이상 잠식시키지 않기를 바랄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