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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주 Aug 08. 2024

남편과 두번째 응급실행

남편이 또 배가 아프다며 끙끙 앓는 소리를 낸다. 저녁 먹은게 잘못 된건지 햇빛알러지 처방받은 약을 잘못 먹은건지 아니면 위염이 또 도진건지 내 머릿속은 왜 그럴까에 맴돌며 스며드는 짜증을 달래본다.


6시간 넘게 걸려서 휴가지에 도착하고 올해는 친정부모님까지 함께했다. 애초에 돌아가신 외할머니댁 방문겸 일정을 잡은 것인데 어찌하다보니 친정부모님과 함께 하는 평생에 첫 여행이 된 것이다.


그런데 그가 아파죽겠다며 끙끙거린다. 듣기 싫다. 거슬린다. 왜 참지 못할까? 부모님 계시는데 적당히 하면 안되나? 자꾸 꼬리를 물고 나를 괴롭히기 시작한다.


그와중에 휴가를 제대로 즐기겠다며 잠도 안자고 핸드폰을 하고 있는 중2 큰아이 기척이 자꾸만 신경 쓰인다.


몇년전 새벽에도 이런 일이 있었고 그땐 아이들이 어려서 119를 불러 남편을 혼자 보냈다. 이송되는 병원이 보호자가 없이는 받아주지 않는 대학병원이라 아이들이 깊이 잠든 걸 확인하고 30분을 걸어 병원으로 갔다.


그때도 역시나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 다 부정의 날 것들. 남편을 향한 부정의 상념들.


다행인지 아프다고 난리치는 남편과 달리 여러 검사 후 별 이상없음이 나왔다. 역시 너답다 생각했다. 그리고 이번에도 너답게 아픈척이 좀 심할 뿐이라고 생각했다. 차라리 그렇게 되어버리는데 나에게 정당성을 줄테니 말이다.


서울에서 차로만 4시간거리 지방 병원 응급실 담당의사는 꽤 신중하고 믿음직스러웠다. 이리저리 만지고 두드리더니 맹장이라고 한다. 서울로 바로 가시라고...


진단을 내리기 위해 검사후 맹장이 확진된다. 2024년 여름 휴가 하루만에 서울로 올라가게 생겼다.


서울 응급실과는 꽤 다르게 보호자석에 앉히고 결과를 보고해주신다. 듬직하지 못한 남편이 못마땅한 남편과 비슷할거 같은 나이에 지방 응급실 의사에게서 남편에게 그토록 바랬던 듬직함을 발견한다.


마음이 놓인다. 아픈 이유를 알았고 해결 방법을 찾았으니 말이다. 듬직하지 못해서 못마땅한 남편을 진료한 듬직한 의사덕분에 말이다.


유독 즐겁게 물놀이를 하고 막내 수영을 가르쳐주겠다며 물놀이까지 자처한 엄마, 그리고 하루종일 아이들을 지켜만 보고 있어도 행복하다는 아빠, 내 행복이 너무 차고 넘쳤나?

 

내 행복에 그림자를 드리우는거만 같은 남편의 존재는 내 날것의 반증인가?아니면 진짜 나에게 그늘을 드리는우는 존재인것인가?


내 행복에 애초에 그가 포함되지 않는 것이 문제였을까? 행복의 순간마다 우리에게 거하지 못한 그의 잘못일까?


남편이 밉다. 내가 그토록 원하고 바라는 듬직함을 본인이 아닌 나에게 전가시키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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