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와 F의 대립
나와 너의 다른 마음, 다른 언어
MBTI가 관계의 또 다른 해결책이 될 줄이야. 파고드니 나와 그 외 모든 관계 안에서의 애매모호한 찝찝함들이 술술 풀리고 있다. MBTI의 결과만 알면 되는 1인인지라 '나는 ESTJ로서 엄격한 중재자 스타일이다.'만 알고 있을 뿐 세세하게 살펴보지 않았다. 마치 한식조리사 시험을 이론만 본 것과 이론을 바탕으로 실기를 합격한 기분이라고 할까? 그저 MBTI를 이론으로만 이해하다 실생활에 접목시켜 보니 이건 너와 나의 문제를 떠나서 나는 T라서 이럴 수밖에 없고 너 역시 F이기에 그럴 수밖에 없음을 이제야 선명하게 보게 된다. 혹시 나와 맞지 않아서 골머리를 앓고 있다면 당장 MBTI부터 서로 확인해보시길 바란다.
나는 전형적인 사고형이다. 가령 남편이 아프다고 하면 감정형인 남편은 '아파서 힘들지?'의 반응을 원할 텐데 난 항상 증상과 증상에 따른 대처만을 이야기할 뿐이었다. 비단 이것뿐만이 아닌 남편과의 대화에서 대부분 해결책을 제시해 주거나 잘못된 부분을 딱딱딱 짚어주며 잘못된 것을 고치길 요구한다. 한마디로 이건 맞고 틀리다의 사고로 남편을 대할 뿐이었다.
반면 감정형인 남편은 내가 그저 이불을 덮고 있으니 몸이 뜨거워졌을 뿐인데 '열나네? 아파?'라는 말을 건네고 설거지 후에 '수고했어.'라거나 '먹고 싶은 거 없어?'라며 내 마음을 떠보는 질문들을 건네는 편이다. 이 질문들에 대한 나의 반응이 어떨 거 같은가? 설거지는 할 일이니 수고한 게 아니고 열이 나는 건 이불을 덮고 있으니 몸이 덮혀져서이니 잘못된 판단을 내리는 너의 오류일 뿐이다. 다만 먹고 싶은 거 없어라는 질문에는 진짜 먹고 싶은 걸 이야기하거나 먹고 싶은 거 다 먹었어 라고 대꾸해 준다. 문득 쓰다 보니 이래서 우리 부부가 대화가 통하지 않았구나 싶다. 사고형인 나는 네가 틀려서 대화가 되지 않는다 치부해 버렸는데 남편 입장에서는 내가 이상해서 대화가 되지 않는구나 싶을 수 있겠다 싶다. (다행히도 남편은 나와 대화가 안 통한다고까지 생각하는 거 같진 않다. 웬 자신감? 한번 물어보고 확인이 필요할 듯하다.)
문득 오래된 친구가 생각났다. 지금은 손절 아닌 손절을 한 상태이지만 인스타를 통해 서로의 안부만 전하고 있다. 그 친구는 매우 아주 감정형의 사람이다. 이 친구가 남편을 소개해 줬다. 연애 때부터 결혼해서도 이 친구는 항상 구남친, 현남편의 편을 많이 들어줬다. 감정형이니 나에게 '넌 틀렸어'라고 말하진 않았지만 항상 구남친,현남편의 감정이입이 되어 나에게 전달해 주는 역할을 자처했다.
감정적인 친구에게 나는 사고만을 들어내며 너의 잘잘못과 앞으로의 방향을 친절하게 상세하게 브리핑을 해줬지만 물론 달래주기도 했다. 왜냐? 어린 시절부터 그 모습 그대로인 친구였기에 우리 사이는 항상 그런 식이었다. 달래주는 거 같은데 듣고 보면 위로는 안 되는 그런 류의? 그러다 그 친구도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키우는 과정에서 나의 사고가 더 이상 받아들여지지 않고 선을 긋기 시작한 거다. 그 친구 입장에서 자기에게 득이 되지 않은 혹은 아픈 부위를 자꾸만 들춰내는 것이 자기가 원하는 바가 아닌 걸 깨달으므로 나에게 선을 그을 용기가 생긴 것일 것이다. (그 친구와 나만의 관계가 아닌 4명의 친구사이에서 그 친구 혼자 감정형으로 아파하다 결국 나가떨어지긴 했지만...) 나는 그 친구의 마음을 순순히 받아들여줬고 지금은 그 친구를 놓아주고 때가 될 때까지 기다려주는 게 그 친구를 위한 일이라는 결론에 더 이상 손을 내밀진 않았다.
감정형이라도 남녀의 차이는 분명하다. 만약 내가 사고형 남편인데 우리 남편이 감정형이었으면 맨날 내 앞에서 질질 짰을 거 같다. 사고형인 나는 넌 또 우냐? 넌 또 상처 받았냐? 라며 상처를 안 받을 수 있는 대책을 브리핑했을 거다. 쓰고 보니 내가 사고형 아내고 남편이 감정형이라 다행 인가 싶다.
엄마 글 쓰는 줄 알고 아이들이 소재를 제공해준다. 좀 전에 초5 큰아이가 물건을 꺼내다 초3 딸의 어깨를 쳤나 보다. 바로 울며 '오빠가 내 어깨를 때렸어.'라는 아이에게 '오빠가 때린 게 아니라 물건 꺼내다가 물건에 부딪힌거잖아''라고 해주니 방으로 들어가 버린다. 딸아이와 관련해서는 이런 일이 빈번하다. 엄마 마음의 여유가 있을 땐 의식적으로 "아팠어?"가 먼저 나왔을 텐데(노력의 반응) 글을 쓰고 있는 중이라 일이 방해되는 요소에 신경이 건드려져서 내 식대로 반응이 나온 거다. 하지만 맞는 말이다. 일부러 때린 것이 아니고 그저 물건에 부딪힌 거지 않나? (이런 T스러운...) 배운 대로 실천하는 엄마이니 내 마음 살포시 접어두고 방으로 들어가 '어디가 아팠어?' 어루만져 주니 배시시 바로 웃는 딸이다. (아 피곤하다.) 분명 딸아이는 아빠랑 같은 감정형일 것이다.
나와 너의 언어가 다를 수밖에 없는 이유가 어떤 유형의 MBTI인지에 따라 관계면에서도 큰 영향을 미칠 거 같다. 나와 너의 언어가 전달이 되기 위해서는 사고형이 감정형의 언어를 해석하는 마음이 필요할 듯하다. 사고형은 있는 그대로를 이야기할 뿐이니 감정형은 그 말에 대해 감정을 덧붙이지만 않으면 그만이다. 못 알아듣는 사고형을 위해서 자세하게 감정에 대해 구구절절 이야기도 필요할 거 같다. 물론 알아서 알아준다면 좋겠지만 사고형은 등이 간지러우면 효자손을 찾아서 스스로 긁는 사람이고 감정형은 내 등이 간지러운 걸 알고 직접 긁어주길 바랄 것이다. 실제로 우리 남편은 등이 간지럽다고 긁어달라고 하지만 난 효자손의 위치를 알려주며 직접 해결하라고 할 뿐이다.
당신은 사고형인가? 아니면 감정형인가? 등이 간지러울 때 알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