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욕구
연휴 내 남편과 냉전 중이다. 남편이 쉬는 날은 냉전의 신호탄이자 신경이 곤두서는 날이다. 이유는 단 하나. 쉬는 날 내내 먹고 자고 싸고 소파와 핸드폰으로 혼연일체가 되는 남편의 태도 때문이다. 아이들 방학인 요즘 아이들과 함께 외출이라도 하면 좋으련만, 남편은 아파트 놀이터조차 가본 적이 없는 양반이다. 그만큼 아이들과 놀아주는 일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다. 반면 아이들과 함께 핸드폰 게임은 한다. 왜냐면 자기 몸 편한 거 유지한 채 아이들과 게임을 한다는 거창한 이유를 대며 적당히 핑곗거리를 삼는 것이다. 주말에 재활용 분리수거라도 한 날은 더 의기양양, 큰일을 했다는 듯이 으스대며 본인의 할 일을 다한 듯 당당한 태도까지 보인다.
다른 집안일과 다르게 유독 먹이고 치우는 일은 모든 엄마들의 난제다. 빨래나 청소처럼 한 번에 끝나는 것이 아니라 때 맞춰 세 번씩이나 찾아오니 여간 괴로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요리라도 하는 남편이라면 한 끼의 고단함을 은근슬쩍 떠 넘겨도 되련만 우리 집 양반은 라면 정도만 끓일 줄 안다. 설령 아이들과 라면으로 끼니를 때워준다 쳐도 아직 매운 걸 먹지 못하는 막내가 있기에 남편은 막내 끼니는 전혀 안중에도 없이 막내 밥은 자연히 나에게 떠넘겨진다. 이러나저러나 밥을 안 차려도 되는 호사를 누리기가 쉽지 않다.
한동안은 주말에 설거지를 남편에게 시켜보기도 했다. 먹이고 치우는 고단함을 토로하며 쉬는 주말에 그 정도는 일임해 주기를 바라며 잘 지켜오고 있다가 주말에 시어머니 병원으로 간병을 하러 가면서 그 일은 자연히 도태되었다. 부메랑이 다시 나에게 돌아왔으니 평소처럼 내일 인양 그저 묵묵히 먹이고 치우다 남편이 어쩌다 한 번씩 알아서 설거지를 해주면 마음이 그렇게 너그러워질 수가 없다. 오늘 책을 통해 그것이 나의 진짜 승리가 아닌 잠깐의 위안이었음을 너무도 뼈저리게 느껴져 그 마음을 품은 내가 초라해졌다. 당연히 함께 도와야 할 부분이 남편 스스로 했다는 이유로 얼굴에 미소가 번지며 마음이 달래진다니 우는 아이 사탕 하나로 울음이 뚝 그쳐지는 듯한 나의 모습이 괜히 미워졌다. 그래서 연휴동안 은근슬쩍 티를 내며 남편의 설거지를 유도할까도 생각했지만 그건 근본적인 해결이 아니고 마치 내 것인데 감정을 드러내므로 그 감정에 대한 책임을 지어주는 꼴 인양 남편의 무언의 승리가 느껴져 그냥 티를 내지 않았다. 티를 내지 않았지만 설거지하는 폼새는 '나는 화난다'를 여실히 보여줬지만 말이다.
남편이 얼마 전에 왜 그렇게 소리를 지르냐며 본인은 소리를 안 지르는데 왜 그러냐고 어불성설을 해댔다. 애쓰고 참지 않으니 소리 지를 일이 없는 거고 소리를 지르는 입장에서는 책임져야 할 것들로 둘러싸여 있으니 그 짐에 눌려 소리를 지를 수밖에 없다고 소리 지르며 이야기를 했다. 이 소리는 명절 때 친정아빠에게도 했다. 그냥 마음 편히 스트레스 안 받으면 되지 뭘 그렇게 신경을 쓰며 애쓰고 사냐는 말을 친정엄마에게 하시길래 남편에게 한 말을 똑같이 해주었다. 남편이나 친정아빠나 세상 스트레스 없이 흐르는 강물 같은 마음으로 소리 지르는 일 없이 평안하게 사는 남자들이다.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다. 가정문제든 자식 문제든 전혀 간섭을 하지 않고 신경 쓸 생각도 없는 두 사람이니 평안할 수밖에... 친정아빠나 남편이나 소소한 아이들 문제에 간섭하거나 알려고 하기보다 주먹구구식의 마음만을 표하며 전혀 도움을 주지 않는다. 물론 집안일도 그렇다.
연휴 내 남편으로 인해 끓어오르는 마음을 어떤 식으로 달랠지 고민하는 와중에 케럴라인 랩의 '욕구들'이란 책을 통해 내 마음이 읽혀졌다. 말로 풀어내지 못한 내 마음을 알아주는 듯 문장에서 분명하게 나를 이야기하고 있어 한순간에 이 문장은 내 마음을 점령했다.
남편의 변화를 바라거나 남편을 종용해서 집안일에 대한 몫을 얻어내기 이전 나 스스로 그 일에 대한 권리를 내려놓아야 함을 그것이 진정 나를 위한 승리라는 걸 새삼 느끼고 있다. 방학 내 아이들 삼시 세 끼에 대한 고민과 에너지 낭비를 최근 반찬을 일주일에 한두 번 구입하면서 내려놓았다. 음식에 관해서는 일가견이 있고 또 차려주는 일에 대한 기쁨이 큰 편이지만 삼시세끼 식성 다른 세 아이 맞추기 지치기도 하고 방학 내 삼시 세 끼로 인해 내 할 일이 자꾸 뒷전으로 미뤄지는 것에 대한 방편으로 반찬 사는 것을 택한 거다. 지인은 어느 반찬집이 자신의 아이를 키웠다고 말할 만큼 반찬집과 가깝지만 모든 걸 직접 해 먹인 나로서는 반찬집 반찬으로 아이 끼니를 차려주기까지 나 스스로 내 안에서 한정한 선을 넘기는데 시간이 필요했다. 마침 소개로 딱 마음에 드는 반찬집을 발견해서 밥 차리는 일이 한결 가벼워졌다. 물론 아이들의 반응이 좋지만은 않았지만 나는 차리는 거에 만족하며 은근슬쩍 아이들의 반응을 눈 감아 버렸다. 남편이 있을 때도 산 반찬과 국을 턱 놓았더니 의외의 표정으로 날 바라봤지만 그 반응 역시 넘겨버렸다.
적당히 내가 지켜오고 맞다고 여기며 산 부분에 대한 개혁을 이뤄낸 것이다. 그것이 내가 가진 열정과 욕망을 이뤄가는 일임을 스스로에게 상기시키려고 한다. 항상 단정하게 정리가 되어 있는 집안, 먹고 바로 치우는 깔끔함, 식구들이 먹고 둔 쓰레기들을 그들 스스로 의식하기도 전에 치워버리는 신속함, 이런 것들이 내 발목을 잡는다는 걸 이제야 안 것이다. 나 스스로 내 발목을 잡고 산 셈이다. 다만 집안일과 관련해서는 아이들이 일정 나이가 되면 분담할 생각을 아이들에게 인지시키고 있다. 지금은 힘들어 보이는 엄마를 위해 어깨를 주물러주고 응원의 말을 건네는 정도지만 일정 나이가 되면 그 몫을 같이 나눠 가질 것이다. 그리고 남편에게도 아이들 성인이 되면 밥하는 일에 손을 놓겠다고 선언한 상태다. 식성 까다롭고 식성 다른 우리 식구들이 먹는 일에서 통일되는 것은 각자 알아서 먹는 것 뿐이다. 난 이미 아이들과 다르게 식사를 한다. 물론 다이어트를 하는 중이라 음식의 종류가 다르긴 하지만 난 먹는 일에 의미가 큰 사람이기에 내 식사만큼은 사수하고 있다. 가장 원초적인 음식에 대한 욕망을 스스로 해결하는 엄마인 만큼 우리 아이들도 성인이 되어서 충분히 해내리라 생각한다.
평생 먹는 거 때문에 친정엄마는 아직도 친정아빠와 입씨름 하신다. 난 그렇게 애쓰며 살고는 싶지 않다. 내 입에 들어가는 게 제일 중요하고 아무리 남편, 자식이라도 입에 넣기 싫으니 안 먹을 테니 그 부분에 대해서는 너무 애쓰고 싶지 않다. 다만 자라는 아이들을 키우는지라 어느 정도는 씨름을 하며 먹이고 있지만 아이들이 성인이 되면 아이들에게 그 권리를 넘겨줄 것이다.
여자 스스로의 권리와 호사는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스스로 주어진 것을 모르고 쟁취해야만 하는 사회)쟁취할 영역이고 그 쟁취는 여성 스스로 해야만 진정한 것이 된다. 어린 시절부터 여성으로서 제한되거나 억눌리며 살지는 않았다. 부모님은 장녀인 나에게 장녀로서의 책임을 떠 안겨 주거나 장녀로서 행할 것에 대한 의무를 전혀 물리지 않으셨고 오히려 큰아이이기에 하고 싶은걸 다 해주게 하시며 지원을 아끼지 않으셨다. 성인이 되어 사회에 나가서도 여자라서 차별받거나 하는 직종이 아니었기에 그다지 여성 권리에 대한 고민이나 의식은 없었다. 하지만 결혼과 아이 셋 육아는 그동안 느끼지 못한 여성의 권리를 사수하게 만들었고 쟁취하게끔 나를 자극했다. 특히나 여성으로서 사회적 인식에 대해 그려진 이미지가 내재화되어 당연한 듯 더 잘하고 싶은 태도와 마음으로 애쓰며 해오기도 했다. 여성의 욕구에 대한 모든 부분을 세세하게 그려낸 '욕구들'이란 책을 통해 여성으로서 당연시되어야 하는 것들에 대한 의식을 재고 중이다. 지금 현재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집안일, 특히 밥이라는 영역에 대한 내 욕구를 좀 더 살펴보고 그것에서 좀 더 자유를 찾고 내 열정을 나를 위해 사용하고 싶다.
*연휴 마지막 날 남편은 재활용 쓰레기를 버렸다. 그 사람 몫을 위해 재활용을 쌓아놓을까 싶다. 물론 바로 버리고 싶은 내 정리 욕구를 눌러야 하는 어려움을 감수해야 하지말 말이다. 그것이 신경 쓰이지 않은 수준까지 내 의식이 바뀌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