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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명 Jun 21. 2015

한량의 시작

London Calling

왜 런던이냐고 묻는다면, 이야기는 한참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렇게 오픈된 곳에 써도 되는지 모르겠지만, 철이 든 이후로 나의 장래희망은 오로지 '일을 안 하고 먹고살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었다. 집에서 보리차를 마시면서 음악을 듣고 책이나 읽으며 살면 세상 행복하겠다는 생각이 온통 머리 속에 가득 차 있었다. 심지어 첫 회사에 입사한 후에는 "나 딱 천만 원만 모으면, 바로 회사를 그만두고 흥청망청 살 거야!"라는 순진한 꿈을 사방에 떠들고 다니곤 했었다. 고작 천만 원만 모으면 평생 놀면서 살 수 있다고 생각하다니! 세상 바보도 이런 바보가 없었지.


런던에서 어디에 있었냐고 물으신다면, 이 동네-


언제나 그렇듯 세상사 내 맘대로 되는 일은 하나도 없었다. 천 만원만 모으면 그만둬야지 했던 회사는 거짓말 하나 안 보태고, 팀장님을 만나 퇴사하겠다는 담판을 지을 틈조차 없이 바빴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것도 싫었고, 매일 새벽까지 하는 야근도 싫었다. 회사가 있는 강남도 싫었고, 매일 타야만 하는 지하철 2호선은 더 싫었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그만두겠다고 하면, 엄마한테 석달 밤낮으로 탈탈- 털릴 텐데... 그건 상상만 해도 눈 앞이 캄캄했다. 출근시간의 지하철 2호선보다 엄마의 잔소리가 더 무서웠다. '한량'이 되고 싶다는 의지는 남들이 상상도 못 할 정도로 간절했지만, 실천으로 옮기기에 쫄보였다. 그래서 방법을 바꿔 우연을 가장한 기회를 노려보기로 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몇 번 그런 기회가 왔던 거 같기도 하지만, 항상 타이밍이 문제였다.


몇 번의 좌절 후, 울증과 조증 사이를 롤러코스터 타듯 오가기를 수 번, 나는 이내 곧 현실을 받아들였다. 회사는 다니되, 휴가를 몽땅 몰아서 쓰면 오래 쉴 수 있을 거야- 라며 마음속에서 혼자 타협점을 찾았다. 나름 마음을 정리한 이유에도 생각할수록 억울했다. 지레 겁먹고 시도조차 안 하는 성격 탓이기도 했지만, 남들은 휴가도 몽땅 몰아 쓰고, 여행도 다녀오고 나서 한다는 이직을 나는 단 하루도 쉬지 못하고 했다. 건강이 급격하게 안 좋아져서 수술대에 올라갔야만 했을 때도, 팀장님 눈치를 보며 고작 3주를 쉰 게 전부였다. 세상에 호구도 완전 이런 호구가 없었다. 신께서 꿈을 포기하고 사는 호구의 기도를 긍휼히 여기셨는지, 좋은 곳으로 이직할 수 있도록 해 주셨다. 새로운 회사에서는 사원복지로 3년 근속에 1개월 안식휴가를 제공하고 있었다. 물론 그런 좋은 복지가 있다고 해서, 내 삶의 질에 드라마틱한 변화가 온 건 아니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여전히 질 낮은 삶에 허덕이며 살았지만, 그래도 안식휴가라는 희망이 있어서, 그거라도 바라보며 일할 수 있었다. 그러다 보니 벌써 4년 반이 지났다.



그리고 지금 나는 지금 런던으로 간다.

누가 뭐래도 런던- 하면 역시 클래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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