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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hn Dec 24. 2023

켄터키의 증류소들

버번위스키 증류소를 여행하다 #1

이 얼마나 축복받은 직업인가-

잠들었던 술맛도 활짝 피어날 봄날에 '술'에 관련된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되었다니.

프로젝트를 시작하며 술을 증류하고 숙성시키는 과정을 두 눈으로 보기 위해 위스키 증류소가 모여있는 미국 켄터키와 테네시 지역으로 출장을 가게 되었다.


버번위스키의 본고장은 내슈빌, 루이빌 같은 미국 중부의 소도시들이다. 사실 미국은 몇 개의 대도시를 제외하면 평생 동안 한 번이라도 갈 일이 있을까 싶을 만한 곳들이 대부분이라 출장길에 오르는 마음가짐도 특별했던 것 같다.


많은 위스키 증류소들은 방문객 투어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전체 일정과 동선을 고려하여 출국 전 몇 개의 증류소에 투어 신청을 해두었는데, 지역이 워낙 넓다 보니 굉장한 강행군이 될 것으로 예상했다. 그렇게 위스키 여행이 시작되었다.



2023.04.20 Day 01


밤늦게 애틀랜타에 도착한 우리는 루이빌로 연결되는 항공편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기내에 탑승한 지 몇 시간이 흘러도 비행기는 꼼짝도 하지 않더니 조종사가 없다며 항공편이 아예 캔슬되어 버렸다. 다음날 항공편에도 자리가 없다며 추가 운행이 될지는 미지수라고 했다. (델타에어의 악명을 몸소 체험하게 된..)

애틀랜타에서 목적지인 루이빌까지는 차로 8시간 정도 떨어져 있다. 내일도 비행기가 없는 상황에서 우리가 예약해 놓은 투어 일정 등을 고려하면 어떻게든 빨리 도착해야 하는 상황. 항공사에서 호텔을 제공한다기에 잠시 쉬었다가 직접 운전해서 가기로 했다. (항공사에서 우리를 버렸음에도 우리는 위탁 수화물을 찾지 못했다. 루이빌 공항에 가서 수령하라니, 이게 말이 되는 상황인가!)



중간 경유지에서 버림받은 우리는 가지고 온 짐도 못찾은채 하룻밤을 보냈다.
애틀랜타에서 루이빌까지 약 700km


3시간 정도 눈을 붙이고 아침 일찍 렌트카를 빌려서 루이빌로 향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운전자가 세명이었고, 미국 중부의 고속도로는 피로도가 낮은 편이었다. 원래 계획이라면 오늘 아침부터 예약된 증류소를 돌아봐야 했지만, 일정이 틀어지며 대부분의 예약은 취소해야 했다. 그래도 최대한 빨리 가면 한 군데라도 볼 수 있지 않을까? 중간중간 허기를 달래고, 기름을 넣고, 잠시 멈춰 스트레칭을 하며 끝도 없이 달렸다. (이 와중에 잠시 쉬어갔던 Nickajack Lake에서 너무 힐링)



Angel's Envy Distillery

500 E Main St, Louisville, KY 40202, United States


Angel's Envy는 신생 브랜드에 가깝다보니 전체적으로 젊고 깔끔한 인상을 준다.


마지막 투어프로그램 시간보다도 20분 정도 늦게 도착한 우리는 다행히 Angel's Envy 증류소를 방문할 수 있었다. 평소에 알고 있던 버번위스키 브랜드가 많지 않다 보니 Angel's Envy는 처음 들어봤는데, 모던하면서 빈티지스러운 느낌을 잘 살린 건축물 외관이 인상적이었다.


투어 도슨트는 약 20명 정도의 방문객을 인솔하며 브랜드 스토리와 주조 공정을 하나씩 소개해준다. 버번위스키의 주재료는 옥수수와 보리, 호밀이란다. 원재료에 대한 소개를 마친 뒤에, 2층 높이의 커다란 발효 탱크를 설명한다.



공간과 설비 곳곳에는 발효 공정에 대한 방문객의 이해를 돕는 시각정보가 잘 활용되고 있었다. 이곳에서 발효 중인 원액을 시음할 수 있는데, 그야말로 곡식을 발효시킨 것이라 향이나 맛은 살짝 역한 편이다.



다음은 증류소의 메인 설비라고 할 수 있는 증류기이다. 위스키 증류기는 매우 긴 타워형인데 알코올 도수를 높이는 원리라고 한다. 다른 위스키들과 같이 95도 정도의 원액을 추출하는데, 이 원액은 너무 독하다 보니 시음 대신에 손에 살짝 뿌려준다. 95%의 술을 피부에 묻히면 피부가 엄청 부드러워진다. (처음부터 도슨트의 말투와 움직임이 살짝 이상해 보였는데 이때 깨달았다. 하루에 몇 회씩 투어 가이드를 돌면서 취해버린 상태였다는 걸.)



아쉽게도 Angel's Envy에서는 숙성고를 볼 수 없었다. 오크배럴과 숙성 과정에 대해서는 설명만 듣고, 병입 과정을 둘러보며 50분가량의 공정 투어는 종료되었다.


투어프로그램의 마지막 순서는 테이스팅이다. 창립자의 이름을 딴 테이스팅룸에 들어가자 각자의 자리에 3가지의 위스키, 작은 초콜릿이 준비되어 있었다. 공통적으로 싱글몰트모다 단맛이 강하고 풍미가 다양하다. 버번위스키의 맛을 제대로 알고 갔다면 조금 더 잘 즐겼을 것 같다.



첫 번째 증류소를 돌아보며, 버번위스키도 오래된 브랜드만 있는 게 아니라는 것, 젊은 이미지의 브랜드도 충분히 매력적일 수 있음을 느꼈다. 어떤 술이든 오랜 시간 오크통에서 숙성을 시키면 술의 가치는 높아지지만, Angel's Share라고 하는 자연 증발의 양도 늘어난다. (숙성기간이 1년 늘어날 때마다 원래 있던 술 양의 3~5%가 증발한다고 한다.) Angel's Envy라는 브랜드 이름에서 또 다른 재미를 느끼며, 천사의 날개를 모티프로 한 Bottle의 형태, 다양한 굿즈들을 모두 만져보고 돌아왔다. 한국에 돌아와서 한참 뒤에 느낀 점은, 여기 술을 더 사 왔어야 했다는 것이다.



이 모든 일정 끝에 루이빌 공항에서 되찾은 짐 & 루이빌 시내의 술에 취한 풍경

챕터 2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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