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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환희 Oct 09. 2021

PB1과 엄마

희옥의 단백뇨 투쟁기



90년대 당시 새로 나온 피비원이라는 세제가 있었다. 지금도 찌든 때 청소할 때 사용하는 세제인데, 락스만큼 강력하고 강력한만큼 희석해서 사용해야 하는 세제다.


92년 12월에 둘째를 낳은 희옥은 출산한 몸을 충분히 돌볼 여유가 없었다.

뇌성마비인 첫째 딸과 이제 갓 낳은 둘째 딸까지 식구는 늘어났고, 남편은 사업 구상하느라 제대로 된 직업 없이 전전하던 시절이었다.

 12월 한 겨울에 둘째 낳을 때 피가 잘 멈추질 않자 질 입구에 얼음을 대며 아기를 낳았던 희옥. 친정에서 미역국을 먹으며 몸을 풀었지만 그로부터 8개월이 안되어 생활비를 벌기 위해 새로 나온 세제를 집집에 방문해 시연한 다음 판매하는 방문판매원 일을 시작했다.

회사에서는 이 세제가 인체에 무해하다고 했다. 그 흔한 마스크 한 장 없이 세제를 뿌리고 닦아내도록 방문판매원들을 교육시켰다.

희옥은 피비원 세제가 주방의 찌든 때를 얼마나 효과적으로 제거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어야 했기에 집집마다 방문해 주방의 높은 곳에 위치한 후드 필터나 기름때 낀 곳에 PB1세제를 칙칙 뿌린 다음 닦아내며

설명을 했다. 지금도 참 설명을 잘하는 엄마, 수학 과외를 했던 만큼 얼마나 판매직으로 전향했어도 설명을 참 성의 있게 잘했을 것이다.

희옥은 인체에 무해한 세제(?)를 뿌려가며 설명하면서 계속, 계속해서 몇 개월 동안 코와 입으로 피비원 세제를 마셨다.


1993년 10월 2일, 그 일을 한지 약 3개월 만에 희옥은 쓰러졌고 응급실로 이송되었다. 그리고 한 달을 내리 입원했다.

신장에 무리가 가 단백질이 소변으로 빠져나오기 시작했다.

이른바 단백뇨. 희옥의 나이 35살이었고,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은 이른 나이에  희옥은 더 이상 월경도 하지 않는 몸이 되었다.

삼십 대 중반에 몸이 늙어버린 것이다.

퇴원한 희옥에겐 여전히 경제적으로 안정되지 않은 남편, 5살 먹은 뇌성마비 첫째와 이제 막 걸어 다니는 돌도 지나지 않은 어린 내가 있었다.


한국의 추운 겨울 IMF가 터지기도 전인 그 가을의 어느 날

희옥은 병상에 누워 무슨 생각을 했을까.

자신은 살아남아야 한다고 생각했을까

살고 싶다고 생각했을까

희옥의 존재로 인하여 살아갈 어린아이의 웃음 떠올리며 흰 밥을 꾸역꾸역 넘겼을까.


‘엄마는 어쩌다가 단백뇨에 걸렸어요?’


한마디 물음에 알게 된 진실에 눈시울이 시큰하다.

92년에 낳은 둘째 딸이 어느새 서른 살이 되었다. 희옥의 단백뇨 투병생활도 삼십 해를 넘겼다.

이제 더 이상 약이 듣지 않는다. 정기 검진하러 병원에 갈 때마다 신장내과 선생님은 고개를 갸웃한다.

답답한 나는 최악의 상황도 상상해본다.

투석, 신장 이식 수술, 그걸 버티지 못할 희옥의 

희옥에게 많이 사랑한다고 해야겠다.

신장에 좋은 음식이 무엇이 있는지 찾아봐야겠다.

그녀가 건강하게 오랫동안 내 곁에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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