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8장>
22. 벳새다에 이르매 사람들이 맹인 한 사람을 데리고 예수께 나아와 손 대시기를 구하거늘
23. 예수께서 맹인의 손을 붙잡으시고 마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사 눈에 침을 뱉으시며 그에게 안수하시고 무엇이 보이느냐 물으시니
24. 쳐다보며 이르되 사람들이 보이나이다 나무 같은 것들이 걸어 가는 것을 보나이다 하거늘
25. 이에 그 눈에 다시 안수하시매 그가 주목하여 보더니 나아서 모든 것을 밝히 보는지라
어제는 간절한 사람이 둘이나 나왔는데, 오늘은 전혀 예수님을 갈망하지 않았던 맹인이 등장한다. 주변 사람들이 이끌어 왔기 때문에 예수님 앞에 선 자였다. 예수님께서는 그를 두 단계에 거쳐서 고치신다. 먼저 눈에 침을 뱉으시고 안수하시자, 아예 보지 못하던 맹인이 흐릿하게 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물으신다. “무엇이 보이느냐?”
예수님에 물음에, 맹인은 그냥 보이는 것을 이야기한다. 무언가 보이기는 하는데 제대로 보이지는 않아서 사람이라고 했다가, 나무가 걸어간다고 했다가 횡설수설한다. 그 이야기를 들으시고 예수님께서는 다시 맹인의 눈에 안수하여 주셨고, 이제 그는 ‘주목하여 보더니’ 모든 것을 밝히 보게 된다.
예수님은 분명 바로 낫게 해 주실 수 있는 분인데, 왜 두 번이나 안수하셨을까? 예수님은 맹인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에게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으셨던 것일까.
맹인의 태도의 차이가 눈에 들어왔다. 처음 안수를 받은 그는, 그저 올려다보면서 눈으로 들어오는 정보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이기만 한다. 그리고 예수님이 다시 안수하시니, 주목하여 보기 시작한다. 수동적인 태도에서 적극적인 태도로 바뀐 것이다.
사람은 어떤 것에 관심이 생기거나 욕심이 생길 때 태도가 변한다. 뒤로 기댄 자세로 의심, 무관심의 눈으로 보다가, 관심 있는 것이 나타나면 몸이 앞으로 기울어진다. 첫 번째 안수 이후에 맹인은 보는 것에 욕심이 생긴 것 같았다. 여태까지 보지 못한 기간이 길어지면서, 고쳐질 수 있을 거란 기대도, 보는 것이 얼마나 좋은지에 대한 감각도 희미해졌을 것이다. 그래서 병 고치는 자로 소문난 예수님을 찾아 나설 생각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다 그가 희미하게나마 보게 되니까, 기억 저편에 있던 감각들이 살아났을 것이다. 그래서 더 선명하게 보고 싶어서 주목하여 보게 되고, 마침내는 모든 것을 밝히 보게 되었다.
예수님이 굳이 두 번 일을 하신 이유는 여기에 있을 것 같다. 회복에 대한 기대가 없는 맹인이 보고 싶게 만드시려고 그러셨던 것이다. 그분이 보여주시려 하는 세상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알려주고 싶었던 것이다.
얼마 전 나에게도 첫 번째 안수와 같은 사건들이 있었다. 그래서 예수님이 알려주시는 세계를 보려는 욕심이 생겨나고 있다. 흐릿하게 잠깐씩 보이는, 다른 사람의 입으로 듣는, 하나님이 너무 아름답고 선한 분이었다. 또, 그분이 그려나가는 세상은 얼마나 아름다울지 기대가 되고 있다. 나도 선명히 보고자 하는 욕심에, 자세를 고쳐 앉고 주목하여 보려고 노력하게 되는 것 같았다.
그 과정에서 예수님이 이해되지 않는 이야기들을 하시고, 그분의 일하심을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들을 마주하게 된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맹인처럼 온유하게 그분의 인도하심을 따라가야겠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해버리고 싶은 마음은 다가온다. 사탄은 그 마음들을 이용해서 지금까지의 노력들을 허무한 것으로 만드려고 한다. 그래도 나는 나를 멈추신 하나님을 신뢰하며 온유함으로 이끌려야겠다. 자세를 다시 고쳐 앉고, 그분이 보여주실 세계를 기대하면서, 주목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