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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종연 Nov 26. 2022

앞으로 너는 반석이 될 거야.

<요한복음 1장>
42 데리고 예수께로 오니 예수께서 보시고 이르시되 네가 요한의 아들 시몬이니 장차 게바라 하리라 하시니라(게바는 번역하면 베드로라)

42절 주석
(... 중략) 복음서에서는 베드로가 반석과 같은 존재가 아니지만 사도행전에서는 초대교회의 기둥 같은 존재가 되었다.

<요한복음 1장>
50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너를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보았다 하므로 믿느냐 이보다 더 큰 일을 보리라




1.

        오늘 말씀에서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부르는, 그렇지만 다른 복음서와 사뭇 다르게 묘사된 장면이 나온다. 요한을 따르던 안드레가 먼저 예수님을 만나고, 이 사람이 메시야라고 생각하게 되자, 그 형제 베드로를 예수님 앞으로 데리고 온다.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말씀하는 장면이 여기서는 드러나지 않지만 결국 같은 이야기를 하시는 예수님을 만나게 된다.


지금 베드로에게는 신앙이 없다. 일반적인 사람의 눈으로는 그냥 다혈질 어부일 뿐이었다. 그런데 그런 베드로를 처음 만나서 말씀하신 첫 이야기가, '앞으로 내가 너를 내 교회의 반석으로 부를 거야.'였다. 예수님의 교회의 토대, 기둥이 될 사람이라기엔 너무 작은 사람이었던 베드로였다. 그에게 어떤 잠재력을 보시고 고르셨던 걸까? 예수님 눈에만 보이는 뭔가가 있었을까?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세례 요한은 능히 돌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할 수 있다(마 3:9)고 말했다. 이스라엘이 뭘 잘해서 하나님이 선택하신 것이 아니니, 그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사실에 안도하지 말라는 말씀이었다. 그러니까, 베드로의 경우에도, 그가 어떤 능력이 있어서 반석으로 부른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그를 반석으로 삼으시기로 결정하셨기에, 베드로가 반석이 될 수 있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말씀을 묵상하면서 이 사실이 참 은혜가 되었다. 예수님이 쓰시기로 선택하시면, 그가 말씀하신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이 이야기가, 세상의 시선으로는 갖춘 것 하나 없는 우리네 삶에 정말 큰 희망이 된다.


또, 예수님은 베드로를 부를 때, 어떤 직업이나 어떤 일을 하라고 부르지 않으셨음을 바라본다. 베드로에게 주신 비전은, 그의 정체성이었다. 교회의 반석이 될, 머지않아 하나님이 이뤄가실, 그 정체성을 약속하셨던 것이다. 나는 비전을 생각할 때, 하나님이 이뤄가실 나의 정체성보다는 어떤 직업이나 일을 생각했던 것 같다. 내 잘못된 시선이 하나님의 응답을 인식하지 못하도록 하는 노이즈가 되고 있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2.

        베드로를 부르시는 이야기 이후에 나다나엘(바돌로매)이 예수님을 만나는 장면이 있다. 나다나엘도 빌립에게 이끌려 예수님께 다가온다. 그리고 자신을 만나기도 전에 지켜보고 계셨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믿기 시작한다.


그의 믿음이 시작되었음을 보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신다. '내가 너를 만나기 전부터 봤다고 믿었니? 더 큰 일을 보게 될 거야.' 누군가에겐 얕은 믿음이라고 여겨질 수 있는 부분인데, 예수님은 전혀 꾸짖지 않으시고 기대와 희망을 심어주신다. 어린아이와 같은 믿음을 가진 자들을 품어 안으시는 예수님의 온유한 사랑을 느낄 수 있는 부분이었다.



        내 믿음이 너무 보잘것없어 보이고, 자라지 않는 것 같다고 여겨지는 순간에 이 말씀을 떠올리면 좋겠다. 예수님은 더 큰 일을 보게 될 거라는 희망을 주시기 이전에, 우리에게 믿음이 있다고 확인해주셨다. 그리고 그 믿음은 많고 적음의 문제가 아님을 그의 생애에 걸쳐서 말씀하셨다. 겨자씨만 한 믿음이 있다면 산도 옮길 수 있다고 말씀하시기도 했으니까 말이다.


믿음의 크기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믿음이 예수님과 함께하고 있는지가 정말 중요한 것 같다. 예수님만이 목적이 되는, 그의 은혜에 온전히 반응하는 그 믿음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그렇다면 오늘 나다나엘에게 하셨던 것처럼, 예수님과 함께하는 삶에 대한 희망을 보여주실 것이다. 우리의 믿음을 확인해 주실 것이다. 예수님은 얼마나 좋은 분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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