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10장>
11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37 만일 내가 내 아버지의 일을 행하지 아니하거든 나를 믿지 말려니와
38 내가 행하거든 나를 믿지 아니할지라도 그 일을 믿으라 그러면 너희가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음을 깨달아 알리라 하시니.
오늘 예수님이 날 때부터 맹인이었던 사람을 고쳐주셨다. 그리고 그 사람이 유대인들에게 예수님을 증언한다. 자신의 눈을 뜨게 하신 분이 예수님이라고. 선지자가 아니면 그런 일을 할 수는 없다고 이야기한다. 그런데 그 이야기를 듣는 유대인들의 반응이 조금 이상하다.
그들은 그 증언하는 맹인이 정말 날 때부터 맹인인지 부모에게 증언하게 했다. 또 바리새인들은 잘못 대답했다가는 출교될 수 있는 질문들을 던지면서 그 부모를 협박하기도 한다. 일어난 일을 믿고자 하는 사람들의 반응이 아니었다. 어떻게든 덮으려고 하는 마음이 느껴졌다.
사실 이쯤되면, 아무리 완악하게 거부하더라도 종교 지도자들에게 '혹시나?'하는 마음이 들 때가 되었다. 예수님은 지금까지 물을 포도주로 만드시고, 귀신을 쫓아내시며, 병을 고치셨다. 그러다가 이제는 저 당시의 성경에서는 본 적도 없는, 태어날 때부터 맹인인 사람이 눈을 뜨는 사건까지 목도하게 되었다. 그런데도 그들은 끝까지 예수님을 부인하고, 바리새인들은 '표적'을 달라고 이야기한다. 진짜 맹인은 오늘 눈을 뜬 그 사람이 아니라, 영적인 눈이 가리워진 그들이었다.
예수께서는 그들의 중심을 알고 계시지만, 다시 그들에게 자신을 드러내셨다. 선한 목자 되신 당신이, 양들을 위해 목숨을 버릴 것이라고 비유를 통해 말씀하셨다. 그 비유 속 삯꾼 같은 바리새인들이 완악함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나아오기를 원했다. 잃은 양 하나까지 찾고 싶어하신다고 하시면서, 그 양을 위해서 나는 기꺼이 목숨을 버릴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런데 그 말을 듣고 유대인들이 하는 말이 압권이다. '당신이 그리스도라면 밝히 알도록 드러내소서.' 지금까지 사역으로, 말씀으로 드러내 오셨는데, 직접 내 눈으로 봐야 믿겠다는 이야기다. 이쯤되면 예수님도 포기할만 한데, 예수님의 말씀은 그분이 얼마나 크신 분인지 알게 한다. "나를 믿지 못하겠으면, 내가 해왔던 일들을 보고라도 믿으렴."
이 부분을 읽는데, 내가 꽤 자주 이 말씀 속에 있는 유대인과 같은 자리에 있다고 느껴졌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내 삶 속에서 일해오신 예수님을 나는 안다. 그리고 그런 예수님을 믿는다고 이야기한다. 그런데 내 마음 속에는 아직도 불신들이 남아 있다. 불확실한 미래 앞에서, 버겁게 느껴지는 하루 속에서, 나도 '정말 나랑 계신다면...'을 외치는 순간들이 있다.
너무 연약한 사람이다. 마치 지금의 상황이 영원할 것처럼, 앞날을 기대하지 않게 되는, 나는 그런 사람이다. 오늘 보았던 한 영상에서, 이런 연약함을 하나님께 가져가는 것도 믿음이라고 했다. 오늘 밤엔 사실 안괜찮다고, 걸어갈 힘이 점점 떨어져간다고, 하나님께 가져가야겠다. 이런 믿음도 하나님께서 기다리고 계실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