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고딕성당 소개
20여 년 전, 파리를 방문하면서 파리대성당을 감상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때 중세 고딕양식으로 지은 성당을 처음 만나면서 영혼을 뒤흔드는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 후, 해마다, 혹은 2-3년마다 고딕성당 순례를 나섰습니다. 오랫동안 성당들을 순례하면서 고딕성당의 건축과 예술, 그리고 건축예술에 담긴 종교적 의미를 조금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미국에 살면서 고딕건축에 관한 자료를 모으고, 한국의 여러 모임에서 고딕건축을 소개했습니다. 이제 출판을 준비하면서 우선 브런치에 주요 고딕성당들의 이야기를 간단하게 연재합니다.
고딕성당을 연재하면서 21 세기 AI 시대 가운데 묻혀 살고 있는 우리들이 잃어버린 건 과연 무엇일까? 질문을 해봅니다. 연재를 읽고 어느 구독자 한 분이 “정말, 고딕성당 찾아가 보고 싶구나" 해서 성당을 찾아 나선다면 이 연재는 대박!입니다.
고딕성당 건축은 공간을 짓는 독특한 건축 양식이라고 할 수 있다. 대부분 종교 건물들은 건물 구조를 설계하고, 그 구조에 맞추어 공간이 디자인한다. 하지만, 고딕 성당들은 우선 공간을 어떻게 디자인할까 고민하고 설계한다. 그런 후 건축 구조가 만들어진다. 로마네스크 양식의 성당들도 실내 공간이 작지 않지만, 그 공간은 먼저 건축 구조를 설계한 뒤 만들어진 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반면, 고딕양식의 성당들은 먼저 공간을 설계하고, 설계한 공간을 시각적으로 빚어내기 위해 공간을 담는 구조를 설계한다. 큰 로마네스크 성당의 공간도 크지만 대부분 어두운 물리적인 공간이라면, 고딕 성당의 공간은 스테인드글라스를 통해 빛을 받으며 살아나는 공간이라 할 수 있다. 이 공간은 하늘나라의 신비감이 충만한 공간이다.
고딕성당 건축은 크게 초기고딕양식, 높은 고딕양식, 후기고딕양식으로 나누어진다. 후기고딕양식은 다시 레요낭양식과 풀랑부아양 양식으로 나누어진다. 초기고딕양식은 아주 높은 공간보다는 높으면서도 공간 높이와 폭의 균형감을 강조했다. 초기고딕양식의 문을 연 성당은 생드니수도원성당이다. 이후, 상스대성당, 상리대성당, 노아용대성당을 거쳐 라옹대성당에서 초기고딕양식의 정점을 이룬다. 높은고딕양식에서는 공간의 높이와 폭의 균형감보다는 높은 공간에 추구해 천장이 아주 높아지면서 마치 떠 있는 것 같은 공간을 창조했다. 파리대성당은 처음 천장이 아주 높아진 성당으로 초기고딕양식에서 높은고딕양식으로 넘어가는 징검다리 역할을 했다.
초기고딕양식의 절정 - 라옹대성당
샤르트르대성당은 파리대성당을 넘어 명실공히 높은고딕양식의 문을 열었다. 샤르트르대성당이 제시한 높은고딕양식은 고딕양식을 재창조했다고 할 만큼 초기고딕성당들과는 근본적으로 달라 모든 고딕건축양식의 표준으로 자리매김했다 랭스대성당 건축에선 샤르트르대성당에서 처음 시도한 높은 고딕 양식을 한층 더 세련되고, 정교해졌으며, 아미앵대성당에 와서는 높은고딕양식은 마침내 완성된다. 아미앵대성당은 모든 고딕성당 중 가장 뛰어난 성당으로 고딕의 파르테논 신전으로 불린다.
모든 고딕성당의 정상에 우뚝 서 있는 고딕의 파르테논 신전 - 아미앵대성당
아미앵대성당 이후 고딕양식은 후기 고딕 양식으로 접어들었다. 후기고딕양식에서는 천장 높이가 높은고딕양식에 비해 훨씬 낮아지고, 벽은 얇아지고, 기둥은 가늘어지고, 스테인드글라스창은 크게 확장되고, 성당 내부는 밝고, 아담하게 변모했다. 후기고딕양식은 레뇨앙 양식과 플랑부아앙양식으로 세분된다. 레뇨앙양식은 중심으로부터 빛이 사방으로 퍼져간다는 의미로 장미창과 스테인드글라스 디자인에서 유래했다. 플랑부아양양식에 들어서면서 성당은 스테인드글라스창 뿐 아니라, 성당 벽과 기둥은 한층 더 가벼워지고, 벽장식은 마치 하늘을 향해 타오르는 불꽃 모양으로 지어지면서 스테인드글라스창과 벽장식은 화려해지고 성당 규모는 눈에 띄게 축소됐다. 특히, 15세기에 접어들면서 르네상스의 영향을 받아 고딕성당 규모는 축소되고, 성당벽은 성경 메시지 조각들은 크게 줄어들고, 세련된 조각들로 장식되고, 다양한 빛깔로 스테인드글라스창은 화려하게 장식됐다. 해서, 땅에서 하늘나라를 향해 높이 치솟은 장대한 고딕성당들은 몇 세기를 거치면서 땅 위에서 하늘나라를 경배하는 아담한 성당으로 변모했다.
플랑부아양양식의 마지막 시기에 지은 성 마클루성당
‘주님께서 집을 지어주지 않으시면 그 짓는 이들의 수고가 헛되리라 (시편, 127.1)'
고딕성당은 사람과 신이 함께 지은 집이다. 오늘날 종교인들에게는 하늘나라는 상징적인 측면이 있지만, 중세인들은 하늘나라는 지금 여기 발을 딛고 있는 땅처럼 실존하는 현실이었다. 그들에게는 현세는 고단한 임시적인 삶에 지나지 않지만, 하늘나라는 죽음이 사라진 영원한 삶이었다. 당시 중세인들은 신이 그들의 마음을 움직여 이 땅에 신이 머물 집을 짓는다고 믿었다. 그래서, 고딕성당의 공간은 단순히 물리적 공간이 아니고, 하늘나라를 담은 신비한 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