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여행 3일 차, 다시 일상으로.
벽에 걸린 시계 초침 재깍이는 소리에 잠에서 깨어났다.
아침 7시 20분.
어젯밤 자정이 넘도록 잠을 이루지 못해 이불속에서 이리저리 뒤척이다가 잠든 탓인지 평소 기상 시각을 지나쳤다. 오늘은 남편 주간 근무일, 모닝콜을 해줘야겠다.
두 번의 전화 시도 끝에 남편과 연결되었다.
"나는 벌써 일어났어요. 여행씩이나 가서 모닝콜을 해요? 그냥 마음 놓으시오. 식탁에 밥 차려놓고 이제 막 밥 먹으려는데 자기 전화받은 거예요."
언제나 자상하고 한결같은 내 반려자.
소변을 보고 양치질을 하고 짤막한 아침 기도를 하고 갑상선 약을 먹으면서 물 한 컵 마시고 잠시 서 있다가 반듯하게 누워 호흡에 집중하는 시간을 가진다. 여행이라도 혼자 있어도 다른 누군가들과 함께여도 이 아침 루틴은 호흡하듯 반복된다. 코로 숨을 들이쉬고 배가 불룩해지고 배가 꺼지면서 가늘게 벌린 입으로 다시 내쉬는 숨소리, 침대와 맞닿아 있는 나의 피부, 시계 초침 소리, 창의 방음 기능을 뚫고 들어오는 자동차 클락슨 소리...... 내가 인지하는 하나하나에 집중하는 10여분 남짓의 이 시간을 좋아한다.
오늘은 여행의 마지막 날이다.
시작할 때도 계획은 없었지만 마지막 날은 마무리에 집중하다 보니 그냥 하루를 보내는 느낌이다. 그래서 얼른 정리하고 이른 체크아웃을 한 다음 카페에서 실컷 책 읽다가 부산으로 돌아가는 여정을 만들어 보기로 했다.
"j, 오늘까지 휴가라면서? 어제 인터폰 했더니 차장님이 대신 받았어서 통화했거든. 또 혼자 여행 간 거야? 또 경주야? 나, 출근하면서 궁금해서 전화해 보는 거야. 자고 있었던 건 아니지?"
한참 호흡에 집중하고 있을 무렵 가깝게 지내는 동료 성희 씨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여행 3일 내내 첫 수신 전화다. 어제 오후에 업무 처리 중 의문점이 있어서 나에게 인터폰 했다가 휴가를 알게 되었다고. 통화를 마치고 나니 또 다른 동료 정화 씨의 메시지가 와 있다.
"출근 잘했어요? 우리 내일 저녁에 얼굴 보기로 한 거, 장소 골라봤는데 여기는 어때요?"
"j 씨랑 내 취향에 잘 맞는 곳인 듯한데.......^^"
"정화 씨, 나 어제오늘 휴가 냈어요^^ 제안한 장소 괜찮네요. 우리 내일 여기서 6시까지 만나요."
이틀 동안 잠잠하던 내 전화기가 3일째 되는 오늘에서야 가동되는 느낌이다.
집과 회사로부터 잠시 떨어진다더니 전화벨 소리, 문자메시지에 나는 반가워하고 고마워하고 있다.
숙소 체크아웃을 하고 아침 겸 점심 식사를 어떻게 할까 망설이다가 첫날 맨 처음 코스였던 카페로 다시 갔다. 밥 대신 빵을, 아메리카노 대신 라테를 선택했다.
따뜻한 커피와 빵을 올려두고 사진을 찍어보았다. 사진을 보며 웃고 있는 나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전혀 슬프지 않고, 즐거운 눈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그게 가능한 게 신기했지만 애써 닦아내지도, 멈추려고도 하지 않고 나의 현상을 그대로 두고 느꼈다.
여행은 현실도피인가, 일상 재충전인가. 다시 물어본다.
둘 다 맞다.
좀 버거워서 여행으로 도피하고, 그래서 충전되는 거 아닌가. 그럼으로써 다시 일상을 잘 이어나갈 수 있는 거라고. 다만 '도피'라는 단어보다는 좀 더 완곡한 단어를 찾는 중이다.
고지식하다, 융통성 없다, 무디다, 느리다......
성실하다, 책임감 있다, 든든하다, 정확하고 깔끔하다......
20대 성인이 된 이후부터 지금껏 내가 들었던 여러 표현 중에서 가장 많이 들었던 이 말들이 지금의 나로 자리 잡은 듯하다. 그렇지만 고지식함과 성실함 사이에서 그간 많은 눈치를 살피고 맞추느라 나 자신을 피곤하게 만들어 온 것도 맞다. 그 피곤함을 잘 풀어주려고 혼자서 여정을 하나씩 하나씩 쌓아나갔다.
이번 경주 여행도 나의 여정 기록에 남게 되겠지. 웃고 있는 눈으로 눈물을 흘리는 모습도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