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부모 잘못이 아니라는 말, 그 이후

센터의 40분이 아닌, 부모의 시간을 말해야 할 때.

by 우리의 모든 순간
부모 잘못이 아니라는 말


“자폐는 부모 잘못이 아니다.”

많은 전문가들이 부모에게 가장 먼저 건네는 말입니다.


과거에는 꼭 필요했습니다.

부모가 차갑거나 무심해서 자폐가 생긴다는 오해가 널리 퍼져 있었으니까요.

그 오해를 깨기 위해, 의학은 오랫동안 이 말을 강조해 왔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현실에서는 이 말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자폐가 부모 탓이 아니라는 말은 낙인을 지우는 데에는 도움이 되지만,

부모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알려주지는 않습니다.


부모의 태도와 개입이 실제로 아이 발달 궤도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는,

여전히 설명되지 않은 채 남아 있습니다.




같은 기질, 다른 궤도


발달 과정에서 비슷한 기질을 가진 두 아이가 있습니다.

둘 다 낯선 상황에서 쉽게 무서워하고, 새로운 자극 앞에서 몸을 움츠리고, 발달이 느리며, 의존적 낯가림이 없으며, 특정 자극에 몰두하는 상동행동을 보입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자, 두 아이의 발달 궤도는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A' 가족은, 아이가 문제 행동을 보일 때마다 크게 꾸짖습니다.

상동행동이 나오면 먹을 것으로 달래며 순간을 넘깁니다.

전문가가 알려준 과제 외에는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알지 못합니다.

집에서는 자연스레 디지털 기기에 의존하게 되었습니다.

이 가정은 전문가가 알려준 하루 40분 수업과 10분 과제에 모든 걸 맡겼고,

나머지 하루 대부분은 공백으로 남았습니다.


'B' 가족은, 달랐습니다.

아이가 울고 버둥거려도 기다렸습니다.

상동행동을 단순히 막지 않고, 사회적 제스처로 연결되도록 끊임없이 노력했습니다.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려주고, 원하는 제스처가 나올 때까지 기회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순간에만 보상을 주었습니다.

이 단순한 과정을 매일 반복하며 수십 번 아이의 손을 잡았습니다.

때로는 지치고, 때로는 포기하고 싶었고, 부모의 감정과 체력을 끝없이 소모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반복은 결국, 아이가 흉내를 넘어 삶 속에서 제스처를 사용하게 만드는 변화를 이끌어냈습니다.

같은 기질의 아이들이었지만, 부모의 태도와 개입이 발달 궤도를 갈라놓았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B' 가족이, 처음부터 확신했던 것은 아닙니다.

이 아이가 언젠가 정상 궤도로 올라설 거라고, 마음속 깊이 믿었던 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혹시 내가 잘못 본 건 아닐까? 혹은 그냥 조금 느린 걸까?” 수없이 흔들렸습니다.

그래서 다른 가정의 양육을 보면서도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내가 맞는지, 내가 하고 있는 방식이 옳은지, 그 누구도 알려주지 않고, 도무지 자신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 불확실함 속에서, 그저 오늘 하루만이라도 아이의 시선을 돌려주고, 원하는 행동이 나오면 보상을 주는 일을 반복했을 뿐입니다.

확신이 없었기 때문에 오히려 더 매달렸고, 때로는 믿음이 아닌 두려움이 그들을 붙잡았습니다.

그렇게 이어진 작은 반복들이 모여, 결국 궤도를 바꿔 놓았습니다.



센터의 40분, 그리고 부모의 23시간


센터 수업은 하루 40분. 과제는 10분 남짓.

그러나 발달은 하루 종일, 생활 속에서 일어납니다.


전문가들은 “조기개입이 중요하다”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정작 부모에게는 “어떻게 개입해야 하는지” 알려주지 않습니다.

현 시스템 안에서는, 전문가도 부모를 충분히 지원할 수 없는 구조에 놓여 있습니다.

‘부모 잘못이 아니다’라는 말은, 더 이상은 보호가 아닐 수도 있습니다.


“센터에 보내면 되겠지.”라는 안심 뒤에 숨은 위험을 알지 못합니다.

그 시간이 일상으로 이어지지 못한다면 효과는 금세 사라질 수도 있습니다.


가정 개입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수십 번 되풀이하고, 때로는 감정을 억누르며 끝없는 인내가 필요합니다.

때로는 잠을 못 자고, 때로는 스스로의 감정을 억눌러야 합니다.

하지만 그 어려움을 뒤에는, 발달의 새로운 길을 보일 수도 있습니다.


살아온 날보다, 아직 살아갈 날이 더 많이 남은 아이들이니까요.



연구는 이미 알고 있다.


연구들은 경고와 희망을 동시에 전합니다.

미국의 Deborah Fein(2013)은 위험군이나 자폐 진단을 받았던 아이들 중 일부가 시간이 지나면서 또래와 구분되지 않을 만큼 발달하는 경우를 확인했고, 이들을 “Optimal Outcome 그룹”이라 불렀습니다. 전체의 약 10~20%가 해당한다고 보고했습니다. (Fein et al., 2013).

Zwaigenbaum 등(2021)은 세 살 이전의 조기개입이 발달 궤도를 결정짓는다고 합니다. 부모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강조했습니다. 이 연구는 조기 개입에서 부모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Zwaigenbaum et al., 2021).

국내 연구에서도 이와 같은 맥락의 결과가 보고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오치국과 한유진(2025)은 어머니의 양육 태도가 발달지연 또는 장애 위험군 아동의 실행기능 발달에 직접적 영향을 준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즉, 부모의 태도가 아동 발달에 미치는 영향은 '국제 연구만의 결론'이 아니라, 한국 아동에게서도 확인된 사실입니다.

Lin et al.(2023)은 어머니의 자폐적 특성(autistic trait)과 양육 방식이 아동의 행동 문제와 직접 연관된다고 보고했으며, Gale-Grant et al.(2024)은 18개월 영아의 초기 자폐 특성이 부모의 양육 태도 및 사회경제적 환경과 밀접하게 관련된다고 밝혔습니다.


연구들은 공통으로 말합니다.

부모의 태도와 개입은 실제로 아이 발달의 방향을 바꿀 수 있다고 말입니다.




이제는 새로운 메시지가 필요하다.


“부모 잘못이 아니다.”

이 말은 과거의 낙인을 지우는 데 꼭 필요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이렇게 바뀌어야 합니다.

"부모 잘못이 아니다.

하지만 부모가 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지 않은,

지금의 시스템 잘못은 크다. "


미국의 IDEA(Individuals with Disabilities Education Act), 영국의 EarlyBird, 캐나다의 Social ABCs처럼, 부모 교육을 제도 안에 포함시키는 시도는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 미국 IDEA, Part C: 생후 3세 미만 아동에게 조기개입 서비스를 법적으로 보장하며, 부모 교육·상담이 포함됩니다.

• 영국 EarlyBird: 국립자폐협회(NAS)가 운영하는 대표적 부모 교육 프로그램으로, 진단 직후 가정에서 적용할 수 있는 전략을 직접 코칭합니다. 현재 영국 공공보건체계(NHS) 또는 관련 공공 보건 체계를 통해 제공되거나 비용이 지원되는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 캐나다 Social ABCs: 부모가 일상 속에서 사용할 수 있는 언어·놀이 전략을 훈련하는 12주 프로그램으로, 연구 결과 언어 발달과 사회성 향상에 효과가 입증되었습니다. 캐나다 일부 주에서는 공공 서비스로 제공되고 있습니다.


반면 한국 사회는 아직도 부모가 스스로 길을 찾아야 하는 구조에 머물러 있습니다.

“센터에 맡기세요”라는 조언이 반복되는 이유도, 제도적으로 부모를 훈련·지원하는 체계가 없기 때문입니다.

부모는 단순한 보조자가 아니라, 아이 발달의 공동 설계자입니다.

이제는 그 설계도를 부모 혼자 그리게 두는 것이 아니라, 사회가 함께 그려야 할 때입니다.


부모의 이야기가 곧 아이의 기록이 되듯,

이제 사회의 기록도 달라져야 할 것입니다.



참고문헌


•Fein, D., Barton, M., Eigsti, I. M., Kelley, E., Naigles, L., Schultz, R. T., … & Tyson, K. (2013). Optimal outcome in individuals with a history of autism. Journal of Child Psychology and Psychiatry, 54(2), 195–205. https://acamh.onlinelibrary.wiley.com/doi/full/10.1111/jcpp.12037

•Zwaigenbaum, L., Bauman, M. L., Choueiri, R., Kasari, C., Carter, A., Granpeesheh, D., … & Wetherby, A. (2021). Early intervention for children with autism spectrum disorder under 3 years of age: Recommendations for practice and research. Pediatrics, 147(5), e2020036336. https://pmc.ncbi.nlm.nih.gov/articles/PMC9923898/

•Lin, C. Y., Lee, T. L., Chou, W. J., Yen, C. F., Chen, Y. L., Hu, H. F., & Liang, S. H. (2023). Maternal autistic traits, parenting styles, and child behavior problems: A moderated mediation model. Frontiers in Psychiatry, 14, 1107719. https://www.frontiersin.org/journals/psychiatry/articles/10.3389/fpsyt.2023.1107719/full

•Gale-Grant, O., Murray, A. L., Auyeung, B., & Murray, G. (2024). Clinical, socio-demographic, and parental correlates of quantitative autistic traits at 18 months. Scientific Reports, 14, 58907. https://www.nature.com/articles/s41598-024-58907-w

•오치국과 한유진. (2025). 어머니의 양육태도가 발달지연 및 장애위험군 아동의 실행기능에 미치는 영향: 자율성의 매개효과. 한국심리학회지: 발달, 38(1), 23–42. https://www.kci.go.kr/kciportal/ci/sereArticleSearch/ciSereArtiView.kci?sereArticleSearchBean.artiId=ART0031969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