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실함
올해 새로운 도전으로 어린이 동화책 만들기 수업을 진행하게 되었다. 저학년 어린 친구부터 고학년 아이들까지 모여서 작품 구상을 하고 구성안도 함께 짜 보면서 어떤 동화책을 만들까? 고민하는 모습이 이미 동화 작가가 된 듯하다.
누구나 그렇듯 글쓰기는 고된 작업이다. 끊임없이 이야기를 떠올려야 하고 머릿속 생각들을 상황과 문맥에 맞게 풀어낼 수 있는 역량도 필요하다. 그런데 아이들은 미리 준비라도 한 것처럼 이야기를 잘 풀어냈다. 평소 동화책을 많이 읽은 아이들이어서 그런지 동화에 대한 이해도 높았다.
그중에는 동화에 대한 찐 사랑이 엿보이는 친구도 있었다. 동시에 두 작품을 쓰기 시작한 여자아이부터 자신이 알고 있는 과학적 지식을 총동원해서 SF동화를 쓰기 시작한 남자아이도 있었다. 그들에게는 동화책을 만드는 일이 꼭 이루고 싶은 꿈처럼 보였다. 짧은 상상 쓰기를 시작한 일곱 살 여자아이는 아기자기한 이야기들을 만들어서 작은 작품집을 만들 계획이다.
글이란 어른의 마음뿐 아니라 아이들의 마음을 새롭게 하는 좋은 기능을 가졌다. 거기에 더해 절실함까지 갖춘다면 훌륭한 작가로 거듭날 수 있는 매개체가 될 수 있다. 주말마다 작은 공간으로 찾아오는 고사리손들은 작은 노트를 아름다운 이야기로 채울 꿈에 부풀었다. 이미 나와 있는 동화책들을 살펴보며 그에 버금가는 자신만의 예쁜 동화책을 만들 욕심에 숨죽이고 여백을 채워간다. 그들만의 비밀 일기장처럼 한 장 한 장 펼쳐가는 이야기들은 예쁜 그림과 함께 새롭게 탄생할 것이다.
누구나 좋은 책을 내고 싶고 인정받는 작가가 되고 싶은 욕심이 있다. <괴테와의 대화>를 쓴 요한 페터 에케만은 문학에 대한 절실함을 느낀 후 괴테를 만나고 싶어서 무려 10년 가까이 자신의 지적인 수준을 단련했다고 한다. 그러고 보면 절실한 마음은 실천으로 보여주는 것이지 말로 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SF동화를 쓰기 시작한 남자아이는 말없이 글을 쓰다가 동화에 담을 만한 과학적 정보를 얻기 위해 도서관을 먼저 찾는다고 한다. 동시에 두 작품을 쓰기 시작한 여자 아이는 좋은 문장을 얻기 위해 열심히 책들을 뒤지기 시작한다. 그 모습을 보면 진실로 절실한 사람은 그냥 저절로 눈에 보인다. 절실한 마음을 숨길 수 없기 때문이다. 절실한 사람은 가만히 앉아 있지 않는다. 절실한데 어떻게 가만히 앉아 있겠는가? 행동하기에도 바쁜 시간이다.
아이들과 뜻깊은 작업을 함께 하게 되어서 나로서는 그저 즐겁다. 아이 중에서 울산을 빛낼 동화 작가가 나오면 좋겠다는 바람도 가져본다. 그리고 때때로 나는 절실하다고 말할 정도로 절실한가? 에 대해 고민해 보게 된다. 사람의 삶은 굴곡이 있어서 끊임없이 뭔가를 추구하다가도 풍선에 바람 빠지듯 손을 놓을 때도 있다. 오히려 요즘은 아이들에게서 기운을 얻는다. 소소한 것에도 웃을 줄 아는 아이들의 명랑함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까닭이다.
부쩍 차가워진 날씨 탓에 몸을 움츠리게 되는 늦은 가을이다. 흐린 날씨에 몸뿐 아니라 마음도 가라앉는다. 하지만 아이들처럼 무언가를 소망하기를 게을리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소소한 것에도 웃음 지을 수 있는 유연함도 가져야겠다. 아이들과 함께 작업하다 보니 오히려 아이들에게서 내가 배운다. 제일 부러운 것은 그들의 활기 넘치는 에너지일 것이다.
한 주를 보내고 주말이 되면 아이들을 만난다. 아이들은 또 어떤 이야기로 자신만의 세계를 창작할지 기대되는 만남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