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브랜드와 함께 성장한 이야기
리먼브라더스 사태가 터졌던 그해,
사회 초년생이었던 나는 회사 사정으로 해고를 통보받았다.
갑작스러운 공백이었지만 이상하게도 마음은 크게 흔들리지 않았다.
아직 젊었고, 해야 할 일이 많다고 느꼈다.
그 시간 동안 관련 자격증을 준비하며 차분히 다음을 고민했다.
경기는 좋지 않았지만, 8개월 뒤 나는 지금까지 이어지는 업계에 첫발을 내디뎠다.
첫 회사는 해외 가구 브랜드를 전개하는 딜러사였다.
시장 분위기는 활발했고, 일은 넘쳐났다.
2011년, 당시 회사에서 남자 직원은 나 혼자였고
현장 관리까지 맡으며 첫해에 쉰 날을 손에 꼽을 정도였다.
몸은 분명 힘들었지만, 매출이 늘고 프로젝트가 쌓이는 과정을 가까이서 경험하며
‘언젠가는 나도 이런 비즈니스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자리 잡았다.
그 무렵 몇 차례 프로젝트를 함께했던
H사의 APAC 담당 매니저가 새로운 기회를 제안했다.
한국 시장 전면에 나서는 딜러사 경험에
본사에서 제품을 제공하는 시각까지 더해진다면
이 업계에서 더 입체적인 역할을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나는 H사로 자리를 옮겼다.
H사는 그때도, 지금도
한국 시장에서 아주 대중적인 브랜드는 아니다.
그래서 더욱 개인의 역할과 실행력이 중요했다.
나는 30대의 대부분을 그 브랜드와 함께 보냈다.
그 시간 동안 나에게 회사는
단순히 일하는 회사 이상의 의미가 되었다.
나의 이름과 나의 판단, 책임이
고스란히 브랜드에 닿아 있는 느낌이었다.
가족 다음으로 가장 많은 시간과 마음을 쏟은 존재였고,
감히 말하자면 ‘내가 키워온 브랜드’였다.
만 13년이 가까워질 즈음,
예상하지 못한 변화의 순간을 맞이하게 되었다.
회사 기준과 시장의 윤리적 관점에서 보면
빠른 정리가 필요한 상황이었지만,
동시에 브랜드의 장기적인 성장을 위해
필요한 움직임이라고도 생각했다.
매니저로서의 책임과
브랜드가 더 멀리 나아가기 위한 선택 사이에서
많은 고민 끝에 나는 후자를 택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선택은
결국 나를 조직 밖으로 이끄는 결과로 이어졌다.
물론 아쉬움이 전혀 없다고 하면 거짓말일 것이다.
해결해야 할 부분도 분명 있었고, 그 과정은 진행 중이었다.
다만 모두가 같은 속도로, 같은 시야로
그 시간을 기다릴 수는 없었다.
결국 나는 회사를 떠나게 되었지만,
한 가지는 지금도 분명하다.
같은 상황이 다시 주어진다 해도
나는 같은 선택을 했을 것이다.
브랜드가 더 많은 사람에게 알려지고,
그 가치가 더 넓게 전달되는 것이
결국 그 브랜드를 위한 길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13년 동안 진심을 다해 함께한 브랜드가
이제 다른 손에서 더 크게 성장해가길 바란다.
내가 보낸 시간과 마음이
누군가에게는 새로운 가능성의 밑거름이 되기를.
그리고 이 선택들이
언젠가 돌아보았을 때
내 삶의 또 다른 전환점으로
담담히 기억되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