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 강남 비전
2024년 6월 22일에 블로그에 작성했던 글을
이 공간에 옮겨 적는다.
->
벌써 다음 주면 2024년의 절반이 마무리된다.
2024년이 우리 가정에 특별한 것은
삶의 공간을 옮겼고
그로 인해 삶의 많은 부분이 바뀌었다.
올 1월 우리는 수도권 외곽 신도시에서
강남구로 이사를 왔다.
나라와 동네를 바꿔가며 숱한 이사를 다닌
우리였지만 이번 이사는 좀 특별했다.
지난 6개월의 변화를 더듬어 기록해본다.
강남은 열심히 사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곳
○○○○ 선배님
작년 추석 즈음 선배로부터 카톡이 왔다.
아내와 함께 강남 오면 동네 구경을
시켜주겠다는 것이었다.
강남은 회사에서 일만 해봤지,
정작 그 동네에서 살아볼 엄두는 못내다가
이듬 해 중학교에 진학하는 딸 아이 교육을 위해
'한 번 가서 살아볼까' 하던 차에
그 곳에 둥지를 틀고 있는 선배가 선뜻
그런 제안을 해주니 참 고마웠다.
그 선배를 만난 곳은
강남의 허름한 재건축 아파트였다.
주말 아침이었는데 주차 행렬이 도로를
점거하고 있었다.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그땐 지하주차장 빵빵한 신도시 신축에
살고 있었기에 이런 열악한 주차 환경에서
어떻게 살아가나 싶은 생각마저 들었다.
그런데 동네를 둘러보고는 생각이 좀 달라졌다.
그 날 개포동-대치동-일원동 등
범대치권을 둘러봤는데 참 좋았다.
대부분 오래된 아파트였지만 조용했고(청각)
단지 안과 주변은 숲과 나무가 우거져있고(시각)
유수의 명문학교가 도처에 있고
정겨운 시장과 오래된 단지 내 상가도 있고
명품 동네가 주는 안정감이 있었다.
은마상가 수제비 집에서 점심을 먹으며
선배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려주었는데,
"강남은 돈 많이 있는 사람만
있는 곳이 아니라 열심히 살아가고자 하는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이란 말씀이
우리 부부의 마음을 움직였다.
그리고나서 바로 다음 주
선배는 부동산에 이야기 해뒀으니
집 보러 한 번 오라고 했다.
당시 살고 있던 집 전세만기가 5개월이나
남아 있었기에 별 생각 없이
집 구경이나 해보자란 생각으로 가봤는데
그 날 바로 덜컥 가계약을 해버렸다.
나 혼자 갔으면 절대 못 그랬을텐데
아내가 가계약금 쏘자고 결단을 내린 것!
그 전 주에 인근 다른 집을 한 번 봤었는데
그 집은 더 비싸면서도 집 내부 컨디션은
더 안 좋았기 때문에
주저하지 않고 현장에서 빠른 결정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3개월 후 기존 전셋집을 미리 빼서
1월에 이사를 오게되었다.
아빠 : 달라진 통근 길, 달라진 풍경
당연히 물리적인 출퇴근 경로가 달라졌다.
이전 거주지는 왕복 통근 시간만 3시간이었다.
아빠만 버티면되는 일명 '신축몸테크'였다
지금 집에서도 직장까지 가기 위해선
강을 건너야 해서 직주근접까진 아니지만
편도 출퇴근 시간이 1시간을 넘지 않으니
이전 보다 하루 1시간을 더 번 셈
시간도 시간이지만 출퇴근 방법에 옵션이 생겨 좋다. 전엔 광역교통망을 이용해야해서
회사 오가는 루트가 Only single way 였지만
지금은 BMW(Bus Metro Walk) 중 아무 거나
교통상황에 따라 혹은 그날그날 기분 내키는대로
선택할 수 있다.
출근 시간엔 시내버스로
한 방에 회사까지 간다던가
퇴근할 때는 강남역까지 버스로 온 이후
밀리는 강남대로에선 지하철로 환승을 한다던가
벚꽃 시즌엔 양재천을 걷다가
도곡역에서 버스나 지하철을 탄다던가
가끔 저녁 회식 때 좀 늦더라도
집이 택시비 6만원 나올 곳이 아니니
마음에 여유가 있다.
선택권이 많은 사람이 부자라던데
서울 이사로 난 교통부자, 시간부자가 됐다 ^^
더러 새벽에 눈이 좀 일찍 떠지면
동네가 임장할 곳 천지니
출근 길 그저 발길 닿는대로 걸어서
때론 무제한 기후동행카드 한 장으로
버스 닿는 곳 구석구석
미래에 등기칠 곳을 물색한다.
새벽 4시 반부터 6시 반까지 서울 대중교통은 조조할인이다
조조할인 버스를 타고 새벽 임장을 하다보면
뜻하지 않게 단지 사이로 해돋이도 볼 수 있다
엄마 : 자본주의 욕망을 깨닫다
기업체 대상 프리랜서 영어강사인
아내의 동선도 바뀌었다.
서쪽에 살땐 마곡에 위치한 LG 계열사가
주 타겟이었는데, 동쪽으로 오니
기업 커버리지가 다양해졌다.
강남 테헤란로, 분당 정자, 판교, 용인 기흥 등
동남권 고급 일자리 벨트를 오가며
왜 부동산은 동남권인지도 몸소 느끼고 있다.
아내의 또 다른 변화는
주택의 가치 기준을 현실화했다는 점이다.
전엔 15억 이상 주고 주택을 매수한다는
사실 자체를 받아들이지 못했는데
이 곳에 와서 입지의 편리함,
동네 사람들의 분위기
그리고 주변 신축 대단지의 위용에
20~30억을 호가하는 강남아파트의
가치를 납득하게 됐고
'우리의 시간'이 오면 거액을 걸고
인생베팅을 감행할 수 있는 용기가 생겼다고 한다.
무엇보다 나와 아내의
가장 드라마틱한 변화는
운명이라 생각했던
팔짜도 한 번 바꿔보자는 마음가짐이
생긴 것이다.
둘 다 사주에 역마살이 있다.
처음 만난 곳이 외국이고
신혼생활도 물 건너 제주에서 했고
직장을 옮겨 제주를 떠나 상경해서도
몇 차례 이사를 했고
해외법인 파견 탓에 타국살이도 오래하며
여행도 전세계 안 쏘다닌 곳이 없다.
결혼 생활을 돌이켜보니
자의던 타의던 평균 1.5년 꼴로 이사를 했다.
어쩌면 그래서 정착하지 못했을지도 모르겠다.
'노마드 라이프'가 숙명인 줄 알고,
여기저기서 다양한 경험을 축적하는 것이
물적자산보다 의미있단 생각도 했다.
더구나 기반을 잡아야 하는 30대 황금기
주재국에서 회삿돈으로 고액의 월세에
안락한 생활을 하다보니
정작 내 나라에서 내 집 한 칸, 내 땅 한 평
소유할 생각을 못했다.
주위에 찐 조언 해주는 사람도 없었고
둘 다 참 순진했다 ^^;
그런데,
강남에서 살면서
아내도 이런 곳이라면 정착
(실거주가 어렵다면 등기로 우리 자산만이라도)을
하고싶다고 했다.
그래.. 이 곳으로 온 일차 목표 달성이다!
아내의 자본주의 욕망을 자극한 것이다.
딸 : 1/300 성공경험을 하다
주재원 아빠 때문에
딸 13년 인생 중 절반에 가까운 6년을
해외에서 살았다.
올 해 2월 초등학교를 졸업했는데
헤아려보니 무려
초등 6년 3개국 5개 학교를 다녔었다.
딸에게 미안하기도 고맙기도 기특하기도 했다.
자기가 줄곧 다니던 국제학교에서
졸업하지 않고,
1년짜리 신도시 신생 초등학교에서
졸업해야 하는 것도 딸은 불만 한가득이었다.
중학교 입학 자체만으로도
크나큰 변화이자 스트레스인데
강남 소재 중학교로의 사실상 전학은
변화로 점철된 딸에게도 큰 도전이었을 터
중학교 입학하면
같은 초등학교 출신들끼리만 어울릴텐데
이방인인 우리 딸이 소외되진 않을까
입학식 즈음엔 내가 더 긴장했던 것같다.
입학식 교장선생님 훈화 중 기억이 남는 대목이..
"올 해는 유독 다양한 초등학교에서
입학을 했는데
(아마 주위 신축 대단지 입주 때문인듯)
그 중에서 인천에서 온 학생도 있다"고 하셨다.
그 학생이 바로 우리 딸이었다.
그 정도로 딸의 강남 소재 중학교 입학은
흔치 않은 일인가 싶어 내심 걱정 했지만
다행스럽게 딸은 별 탈 없이 학교 잘 다니고 있다.
'비 강남'에서 온 아이가
자진해 손 들고 학급 선거를 통해 회장이 되었고,
교내 영어말하기 대회 300명 참가자 중
유일한 1학년 수상자라면
잘 다니고 있는 것이라 판단해도 되지 않겠는가
전교생 900명 중 역대최다(신축 입주 탓인듯) 참가자
300명 중 9명만 수상
1학년은 딱 한 명 입상인데 그게 바로 딸!
물론 강남에 쭉 있었던 또래 친구들처럼
선행학습같은 건 하지 않았고
아직 공부 근육이 확고히 잡혀있진 않지만
사춘기 초입에 찾아온 크나큰 변화와 도전을
담대하게 받아들여준 것만으로도 참 고마운 일이다.
물론 강남 와서 다 좋은 것만은 아니다.
아무래도 불혹을 넘긴 아파트에 살다보니
여러모로 불편하다.
협소한 주차공간,
주말에만 가능한 재활용쓰레기 버리기,
하나 뿐인 화장실,
요샌 귓전에 엥~하고 맴도는 모기 공포까지..
실거주에 불편한 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그러나 결핍은 욕망의 라이터이자
성장의 동력이 될 수 있다고
유년시절부터 몸소 체득해왔고
노력과 존버를 통해 결과로도 증명해왔다.
주위 화려한 신축과 동네 인프라를 보며
이 곳을 향유해야겠다는 강한 자극을 받는다.
내 느낌 조경 끝판왕 서초그랑자이 (2021년 6월 준공)
최고의 한강뷰 아파트가 될 청담르엘 (공사중)
6702세대 강남구 최대 신축 대단지
디에이치퍼스티어아이파크 (2023년 11월 준공)
외국살이에 자기가 부잣집 딸인줄 착각했던
딸도 썩파트의 불편함에 투덜대기 일쑤지만
시간이 흐른 뒤 더 큰 깨우침을 얻길 바란다.
목표는
- Challengeable
- Achievable
- Measurable
해야한다.
어젯 저녁엔 가족회의를 통해 이름하여
'2030 우리가족 강남 비전'을 선포하였고
그 비전에 얼라인된 각자의 목표를 수립하였고
액션플랜에 관한 토론도 했다.
이 글을 박제해놓고
2030년 다시 보러 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