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신축 전세의 함정, 3.4억에 가려졌던 것들

검단신도시에서 깨달은 '환경'의 무게

by 빅토르

100만 원의 월급, 그리고 낯선 선택

병가 후 통장에 찍힌 숫자는 100만 원이었다. 감사하면서도 서글픈 금액.
아내는 담담하게 제안했다.
"4.8억짜리 전세를 역세권이라는 이름 하나로 붙들고 있을 필요가 있을까? 조금 더 가벼운 곳으로 옮기자."
그렇게 시선을 돌린 곳이 검단신도시였다.
처남이 '신도시'가 되기 전부터 터를 잡고 살던 곳이라 이름은 익숙했지만, 심리적 거리는 멀었던 곳.
하지만 그곳엔 공급 폭탄이 만든 '저렴한 신축 전세'라는 명확한 대안이 있었다.

추운 겨울, '죄인'의 마음으로 아내를 따라나선 길.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마주한 건 끝없이 솟은 아파트 숲이었다.
홀린 듯 들어간 부동산에서 34평 신축 전세가 3.4억이라는 소리를 들었다. 평당 1천만 원 수준.
초신축의 깔끔함에 반해 그날로 가계약금을 입금했다.
2년 전, 나의 검단 라이프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부동산 소장님의 "믿어라"는 말의 유효기간

기존 부천 상동 집의 계약 만료 전 나가는 조건이었기에, 우리는 직접 임차인을 구해야 했다.
상동 소장님은 자신만만했다. "여기가 역세권에 몰세권인데, 수요가 차고 넘쳐요. 금방 나갑니다."
하지만 시장은 소장님의 호언장담보다 냉혹했다.
2022년 봄, 그것은 유동성 파티가 끝나고 하락장으로 접어드는 전조였다.
일주일, 이주일... 집을 보러 오는 발길이 뚝 끊겼다.
결국 인근 부동산 5곳에 매물을 뿌리고서야 깨달았다.
내 소중한 자산의 운명을 타인의 '관계'에만 맡겨서는 안 된다는 것을.
천신만고 끝에 옆 단지 부동산을 통해 임차인을 구하고서야 비로소 검단행 짐을 쌀 수 있었다.

신도시가 주는 달콤한 착시 : 장화와 구두 사이

"신도시는 장화 신고 들어갔다가 구두 신고 나온다."
그 격언은 증명되는 듯했다.
입주 초기, 삭막하던 아파트 상가의 부동산 간판들이 하나둘 편의점, 스타벅스, 올리브영으로 바뀌어 갔다.
인프라가 채워질수록 도시의 활력은 눈에 띄게 좋아졌다.

젊은 도시의 역동성: 검단신도시 주민의 평균 연령은 30대 초중반이다.
전국 최연소 수준의 인구 구조를 가진 이곳은 어딜 가나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렸고, 초등학교는 과밀학급을 걱정할 정도였다.

시세의 메커니즘: 분양가 상한제 덕분에 시세 대비 저렴했던 분양권은 입주장이 지나자 무서운 기세로 올랐다.
싼 전세로 들어온 사람들이 동네의 매력에 빠져 매수자로 전환되는 과정, 그것은 교과서적인 시세 상승의 공식이었다.

하지만 도시가 구두를 갈아 신는 동안, 내 마음속엔 자꾸만 장화의 진흙탕 같은 감정이 차올랐다.

내가 선택한 환경의 민낯: '어디 사세요?'라는 질문
저렴한 신축은 예상치 못한 부작용을 동반했다.
'다양성'과 '소셜믹스'라는 교과서적인 가치가 내 일상으로 들어왔을 때, 그것은 때로 공포와 스트레스였다.
20개월 남짓한 시간 동안 나는 너무 많은 것을 겪었다.
단지 인근에 거주하는 성범죄자 고지 문자를 두 번이나 받았고, 마트와 정류장에서 상식 밖의 행동을 하는 이들을 수시로 마주했다.
결정타는 층간소음이었다. 새벽 2시, 술에 취해 고성방가를 일삼는 아랫집 남자에게 항의했다가 받은 폭력적인 위협.
결국 경찰이 와서 제지를 하고나서야 그 소동은 멈췄다.

"어디 사세요?"라는 가벼운 질문에 대답할 때마다 돌아오는 상대방의 미묘한 표정.
'네가 왜 그 동네 살아?'라는 무언의 물음은 나를 자격지심의 늪으로 밀어 넣었다.
오랜 해외 생활 끝에 한국 물정을 몰랐던 나의 선택이 후회스러워 아내와 다투는 날도 늘어갔다.

결국, 상방이 열린 삶을 위하여


나는 서울 외곽의 변두리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다.
공부하려는 아이를 비웃던 '인생 포기자'들 사이에서 나는 필사적으로 그들과 달라지려 애썼다.
검단에서의 생활은 잊고 싶었던 그 시절의 '학풍'을 떠올리게 했다.
인생은 결국 확률의 게임이다. 이상한 사람을 만날 확률이 낮은 곳, 서로에게 건전한 자극을 줄 수 있는 사람들이 모인 곳.
내 아이에게만큼은 '면학 분위기'가 기본값이 되는 환경을 선물하고 싶었다.
단순히 집값이 오르는 곳이 아니라, 내 삶의 태도가 무너지지 않도록 지탱해 줄 수 있는 공동체가 필요했다.

검단에서의 2년은 나에게 뼈아픈 교훈을 남겼다.
집은 단순히 벽지와 바닥재의 깔끔함이 아니라, 내 옆집에 누가 사느냐가 내 삶의 질을 결정한다는 명확한 사실 말이다.
이제 나는 다시 구두를 고쳐 신고, 내가 있어야 할 곳을 향해 발을 떼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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