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단이 준 경험과 배움, 그리고 잊지 못할 삶의 흉터
검단신도시로 이사를 오고, 회사에는 3개월 병가를 냈다. 2006년 사회생활을 시작한 이래 처음으로 맞이하는 온전한 자유였다.
하지만 낯선 여유는 이내 불안이 되었다.
무언가를 해야만 한다는 관성은 쉬이 사라지지 않았고,
마음 한구석에선 이 공백기야말로 무언가를 해내야만 하는 결정적 시기라는 강박이 고개를 들었다.
당시 내 마음을 지배하던 건 부동산으로 맞은 '현타'였다.
그것을 극복하는 길은 역설적이게도 부동산을 소유하는 것뿐이었다.
몸이 머무는 검단신도시 곳곳에는 신축 아파트들이 우후준순 솟아오르고 있었다.
저렴한 가격에 눈길이 갔다. 견물생심이라 했던가.
일단 저 중 하나라도 내 것으로 만들고 싶었다.
내가 가진 무기는 전세금을 뺀 현금, 그리고 15년 동안 묵혀온 59점짜리 청약통장이었다.
그날부터 닥치는 대로 청약을 공부했다.
블로그와 유튜브를 섭렵하며 나만의 데이터를 쌓아갔다.
밤낮없이 매달린 지 석 달 만에, 드디어 검단신도시의 한 단지에 당첨됐다.
교통 호재가 집중된 곳이라는 홍보 문구에 마음이 설레었다.
인천지하철 1호선, GTX-D, 5호선 연장까지.
지금 돌아보면 1호선을 제외한 나머지는 언제 실현될지 기약 없는, 그저 '호재를 위한 호재'였지만 그때는 달랐다.
내 명의의 집을 갖게 되었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히 기뻤다.
주변에 당첨 사실을 알리면 사람들은 입을 모아 말했다.
"축하해! 근데 분양가가 어쩜 그렇게 싸?"
공공택지라 분양가상한제가 적용된 덕에 4억 원을 조금 넘는 가격이었다.
당시엔 그들의 반응이 그저 부러움 섞인 감탄인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시간이 흐른 뒤 깨달았다.
그것은 "왜 하필 그런 곳을 받았어?"라는 안타까움의 완곡한 표현이었다는 것을.
성급했다. 2022년 봄, 시장엔 여전히 폭등의 온기가 남아 있었다. 그 불장이 영원할 것만 같았다.
더 늦기 전에 뭐라도 잡아타야 한다는 일념이 나를 눈멀게 했고, 결국 검단에서 다시 검단을 잡는 악수를 두었다.
기쁨은 유통기한이 짧았다. 2022년 하반기, 미국의 고금리 여파로 시장은 급격히 얼어붙었다.
'폭등'의 단어는 어느덧 '폭락'으로 바뀌어 있었다.
공급 폭탄이 예고된 외곽의 검단신도시는 직격탄을 맞았다.
연일 터져 나오는 '미분양의 무덤'이라는 기사에 내 마음도 함께 무너져 내렸다.
'하느님은 왜 내게 이런 시련을 연달아 주실까.'
원망이 깊어지자 계약금 4천만 원을 포기하고 계약을 해지할까 고민하기 시작했다.
하루에도 십수 번 생각이 바뀌었다. 다시 실수를 저지른 것 같아 괴로웠고, 나의 결정이 사무치게 후회스러웠다.
혼자서는 도저히 답을 낼 수 없어 조언을 구했다.
부동산 투자 15년 경력의 선배는 "공급이 많으니 4천을 포기하고 다른 기회를 잡으라"고 했고,
서울의 건물주 후배는 "싸게 잡은 물건이니 성급히 목돈을 날리지 말고 지켜보라"고 했다.
양극단의 조언 사이에서 나는 더욱 갈팡질팡했다.
마지막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유명 부동산 유튜버의 사무실을 찾았다.
4천만 원이 걸린 일인데 반차가 대수인가. 아내의 손을 꼭 붙잡고 이수역 인근 그의 사무실 문을 열었다.
연예인을 보는 듯한 기분도 잠시, 우리 앞 손님이 그의 손을 부여잡고 "돈 벌게 해달라"며 나가는 모습에 묘한 기분이 들었다.
한 시간의 상담. 검단에서 왔다는 내 말에 그는 단호하게 말했다.
"내가 인하대 출신이라 잘 아는데, 인천은 안 됩니다. 자, 나를 따라 하세요. 하루속히 인천을 벗어나자!"
홀린 듯 그 말을 따라 했지만, 정작 '4천만 원 포기' 여부에 대해서 그는 즉답을 피했다.
상담 시간이 끝나갈 무렵, 그는 옆방의 퉁명스러운 여인에게 우리를 안내했다.
본인과 협업하는 부동산 대표라며 좋은 물건을 소개해 줄 거라 했다.
그녀는 모니터만 응시하며 뜬금없이 신촌의 신축 빌라 매수를 권했다.
"곧 구역 지정될 거예요. 코로나 전에 샀던 중국인들이 우리한테만 내놓은 급매물이야."
그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말로만 듣던 '신축 빌라 팔이'의 현장이었다.
나는 상담료 20만 원을 던지듯 지불하고 그곳을 빠져나왔다.
아내와 마주 보며 허탈한 웃음만 흘렸다.
다시 한 시간 반을 지하철에 몸을 싣고 검단으로 향하며 생각했다.
'참 안 풀리는구나. 한국살이 참 쉽지 않네.'
결국 4천만 원은 포기하지 못했다. 포기할 배짱도, 새로운 선택을 할 용기도, 무엇보다 경험이 부족했다.
만약 그때 과감히 포기했더라면, 2023년 초 서울 아파트값이 폭락했을 때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검단에서의 그 가을은 그렇게 우리에게 뼈아픈 경험과 배움을, 그리고 잊지 못할 삶의 흉터를 남겨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