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의도는 그렇게 디자인이 된다.
이전 글에서 다루었던 기계식 시계와 A4 용지에 숨은 규격이 말해주듯, 일상의 시공간이 촘촘히 계산된 오늘날에도 디자인은 '효율'만을 유일한 목적으로 삼지 않는다. 때로 디자인은 지극히 의도적인 비효율의 형태를 띤다. 특히 그것이 '공공'과 맞닿아 있을 때, 종종 디자인은 -역설적이게도- 누구나 함께 누려야 할 자원을 기꺼이 포기하거나, 타인의 접근을 배타적으로 밀어내며 사회적인 경계의 차이를 분명하게 드러낸다.
오래전, 런던에서 한동안 커피숍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다. 일주일에 서너 번씩 출근하던 그 카페에 가려면 늘 셰퍼드 부시(Shepherd’s Bush) 공원을 가로질러야 했다. 아름다운 도심 공원이 자랑인 도시라지만, 정작 이 작은 공원에서 런던 특유의 여유로운 풍광이나 정돈된 정취를 느껴본 기억은 거의 없다. 도로 사이 비좁은 틈에 끼어 있는 공원의 입지 탓에 노숙인이나 취객이 유독 눈에 띄기도 했지만, 정작 그곳이 불편하게 느껴졌던 건, 잠시 쉬어 가려던 벤치에서조차 마음 편히 앉아 있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벤치 중간중간 뜬금없이 솟아오른 팔걸이들은 팔을 걸기엔 너무 낮고, 그렇다고 잠시 눕기엔 명백한 장애물이었다. 정원 옆 난간 위에 촘촘히 박힌 날카로운 돌기나, 앉기조차 힘들 만큼 가파르게 기울어진 좌석들 역시 나에게는 공원에서 숨을 고르고 가다듬을 틈을 쉽사리 허용하지 않았다. 이렇듯 도심 일상에서 심심치 않게 발견할 수 있는 이 이질적인 장치들은 공간이 누구를 허용하고 누구를 배제시키는지에 대한 분명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잠시 앉는 것은 허용하지만, 오래 머무는 것은 곤란하다"는, 선별적인 허용 말이다.
이러한 장치들은 대개 도심의 질서와 위생을 유지한다는 명분 아래 설치된다. 밤새 공원을 차지하는 이들의 장기 체류를 막거나, 특정 무리가 공원을 점유해 생기는 불안감을 방지하겠다는 의도로 말이다. 실제로 공원 시설물이 훼손되거나 야간 안전에 대한 민원이 제기될 때면, 이러한 차단 장치는 빠르고 효율적인 처방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눈에 보이는 불편함과 어수선한 풍경을 정돈하려고 등장한 이 교묘한 해결책들은, 어딘지 모르게 불편하다.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빈곤과 소외 같은 복합적인 문제를 정책이나 복지의 영역에서 충분히 풀어내지 못한 채, 단지 사물의 형태만 바꾸어 보편의 시야 밖으로 격리시키는 방식에 가깝기 때문이다.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보다, 사회가 외면하고 싶은 불편한 존재들을 눈에 띄지 않는 곳으로 소외시키는 이 계획된 비효율 속에서, 도시는 누구에게 이 공간이 허락되는지를 가려내는 권력이 되기도 한다.
2012년 런던 캠든 지역의 이 콘크리트 벤치는 누워 자는 행위, 스케이트보드, 낙서, 쓰레기 투기처럼 도시에서 허용하지 않는 행위를 원천적으로 차단하기 위해 설치된 배제적 디자인(hostile architecture)의 대표적 사례다. 벤치의 각 구간은 높낮이가 다르게 설계되어 있어, 몸을 온전히 눕히거나 기대어 잠자는 일이 어렵다.
왼쪽 상단부터시계 방향으로 '돌로 된 팔걸이 벤치', '홍콩의 고가 도로밑 쇠돌기', 서울 공원시설물 '윤슬'의 나무데스크(https://www.beminor.com), 도로 환풍기를 덮고 있는 뾰족한 창살 커버(https://www.canadianarchitect.com/toronto-general-hospital-removes-bars-defensive-architecture)
19세기 빅토리아 시대, 말번(Malvern) 게이트하우스에는 남성들의 노상방뇨를 막기 위한 소변 유도판이 설치되어 있었다. 건물 구석이나 벽을 향한 소변이 다시 튀도록 곡선형 벽돌 구조물을 덧댄 것으로, 불쾌한 경험을 통해 자연스럽게 노상방뇨를 단념하게 하려는 심리적인 장치였다.
공원 벤치의 불편한 팔걸이와 고가도로 아래 놓인 돌·콘크리트 돌기들은 사람이 편히 쉬거나 공간을 자유롭게 활용하는 일을 가로막게 설계되어 있다. 심지어 샌프란시스코 클린턴 파크(Clinton Park) 인근 인도에는 노숙인의 정착을 막기 위해 주민들이 자비로 설치한 스물네 개의 거대한 바위가 놓여 있다. 누군가의 안식처가 될 가능성을 처음부터 차단하듯 길목을 막아선 이 육중한 바위들은, '공공'이라는 이름 뒤에 숨은 배제의 의지가 얼마나 서늘하고 먹먹하게 형상화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이로써 도시의 공공장소는 시민의 권리로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곳이라기보다, 도시가 요구하는 행동 규범과 태도를 따르는 이들에게만 조건부로 허용되는 '사유화된 공간'에 가까워진다. 누가 이 도시 안에 오래 머물 수 있는지, 누가 앉아도 되는지, 누가 눈에 띄지 않아야 하는지가 디자인을 통해 은밀하게 가려지는 셈이다.
단정하고 질서 있는 도시를 유지한다는 이유로 누군가에게 의도적인 불편을 감수하게 하는 설계가 과연 어디까지 정당화될 수 있는지, 다시 한번 진지하게 생각해 볼 일이다. 이는 단순히 깨끗한 거리를 만드는 효율의 문제를 넘어, 때로는 가장 친절해 보이는 사물의 형태가 특정한 누군가에게는 단 한 뼘의 온기도 허락하지 않는 비정한 경계선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누군가의 고단함을 기꺼이 끌어안는 디자인이었으면 좋겠다.
누군가의 공간을 지우지 않는, 자비로운 도시였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