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르크 마개에 대하여
레스토랑에서 와인을 병으로 주문했을 때 흔히 보게 되는 광경이 있죠. 소믈리에 혹은 와인 담당자가 와인 코르크를 능숙한 솜씨로 병에서 뽑아낸 뒤, 코르크를 자신의 코로 가져가서 냄새를 맡습니다. 그런 뒤에 손님에게 테이스팅을 해보라며 와인을 잔에 약간 따라줍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상황에서 무엇을 할지 몰라 당황하곤 하는데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한 모금 마신 뒤 어색하게 고개를 끄덕이죠. 어떤 이들은 와인의 향과 맛을 시적인 언어로 묘사하기도 합니다.
이 불편한 의식은 왜 수행하는 걸까요? 이 테이스팅은 주문한 와인에 대한 호불호를 알아보기 위한 것이 아니에요. 그러기에는 너무 조금 따라주죠.
이것은 와인의 결함 여부를 확인하는 겁니다. 와인의 결함은 여러 가지가 있으나 가장 흔한 것은 와인이 ‘코르크’되었다(corked)고 표현하는 코르크 오염 현상이에요.
코르크 된 와인에서는 젖은 종이 또는 지하실의 눅눅한 향이 나요. 이 향을 내는 범인은 2,4,6 - trichloroanisole 일명 TCA라는 화학 성분이에요. 이 물질을 만드는 진균류는 자연 상태의 코르크나무에서 살고 있기에 코르크 오염은 코르크로 봉한 와인에 항상 도사리는 위험이에요. 통계에 따르면 전 세계의 와인의 대략 5 퍼센트 정도가 코르크 됐다고 하네요.
레스토랑에서는 손님이 와인을 맛본 뒤 코르크 오염이 의심된다고 와인 담당자에게 말하면 일단 그가 와인을 마셔 봅니다. 정말로 와인이 코르크난 걸로 판명되면 레스토랑은 손님에게 새로운 와인 병을 열어줘야 해요.
우리가 와인 하면 머릿속에 떠올리는 코르크로 막혀있는 유리병은 사실 역사가 엄청나게 오래된 것은 아니에요. 유리로 된 와인병은 17세기에 영국의 Kenelm Digby 경이 발명해 냅니다. 하지만 이때만 해도 유리값이 너무 비쌌기에 와인의 유리 병입이 대중화되지는 못했죠. 1800년대 중반에 이르러서야 산업화의 힘으로 유리병이 넓게 보급되기 시작해요. 이때에서야 비로소 코르크 마개로 봉한 유리 와인병이 확고하게 자리 잡습니다. 당대에는 코르크 마개는 정말 놀랍고 편리한 신기술이었어요. 딱히 더 좋은 방법이 없었기에 당시 와인 음주가들은 코르크 오염 정도는 받아들이기로 합니다.
현대에는 새로운 합성물질들과 기술들이 등장하죠. 그래서 탄생한 것이 와인의 스크류캡 마개예요. 스크루캡 이용하면 코르크 오염을 완전히 피할 수 있어요.
그러나 만사 모든 것이 그렇든 스크루캡도 일장일단이 있어요. 스크루캡의 문제는 와인의 ‘환원’입니다. 여기서 환원이리는 단어는 화학 용어인데요. 산화의 반대 개념으로서 환원이에요. 와인의 환원은 산소가 부족한 환경에서 와인의 생화학적 변화를 말해요. 여기에는 특히 황이 관계돼 있기에 환원된 와인에서는 황화물 특유의 고무 타는 냄새 혹은 썩은 달걀 악취가 느껴져요. 한 조사에 따르면 통계적으로 스크루캡 와인 중 2 퍼센트 정도가 환원됐다고 합니다. 다행인 점은 회복이 불가능한 코르크 된 와인과 달리 환원된 와인은 산소와 오래 접촉시키면 원래 환원취가 사라지기도 해요.
스크루캡의 다른 문제는 와인의 장기 숙성 가능 여부예요. 앞서 말했듯이 산소를 완전히 차단하는 스크루캡에 비해 코르크는 산소 투과가 가능해요. 그렇기에 와인이 미량의 산소와 장기간 접촉하며 약간의 산화를 거치는 장기 숙성이 스크루캡 와인에서 가능할까를 두고 아직도 의견이 분분합니다.
스크루캡이 가지고 있는 오명도 한 가지 있는데요. 그건 바로 스크루캡으로 봉한 와인이 싸구려라는 오해예요. 물론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유럽의 유명 와이너리들은 장기 숙성 문제 및 변화와 혁신을 피하는 보수적인 성향 탓에 코르크 마개를 씁니다. 하지만 이런 와이너리들이 만드는 와인은 일반인들이 좀처럼 마시기 힘든 초고가의 와인들이에요.
시중에 있는 10만 원 이하의 와인들의 경우 스크루캡이냐 코르크냐는 생산자의 선택일 뿐 그 와인의 품질과는 관계가 없어요.
앞서 언급한 코르크 오염과 환원은 심하게 일어난 경우엔 누구나 문제의 그 향을 맡을 수 있지만, 살짝 발생한 경우에는 후각이 굉장히 예민한 소수만이 맡을 수 있어요. 따라서 평범한 코를 가진 저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은 미세한 코르크 오염과 환원을 모르고 지나칠 확률이 높죠. 미세하게 코르크난 와인은 비록 젖은 종이 냄새가 느껴지지 않더라도 와인 본연의 과실향을 꽤 잃어버린다고 해요.
그래서 저는 와인을 마실 때 성급한 판단을 자제하려고 노력해요. 어떤 한 병을 마셔보고 당시에 별로라고 느낀 한 와인이 사실 미세하게 코르크 혹은 환원된 와인일 수도 있으니까요. 그래서 저는 별로라고 느꼈던 와인의 다른 병을 다음에 또다시 마셔보곤 해요. 역시 별로라고 느낄 때도 있지만 어떨 때는 그 와인이 너무나 마음에 들어서 어떻게 내가 처음에 이 와인의 매력을 몰라봤을까 하고 스스로이게 놀라기도 합니다.
그래서 저는 코르크나 스크루캡을 열 때 항상 기대감으로 두근거려요. 와인은 제게 일관성을 보장하는 프랜차이즈 식품이 아닌 평생을 함께할 즐거운 모험이기 때문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