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RN Feb 13. 2022

고시원 창문 있는 방 할까, 없는 방 할까

끈질긴 생활력의 공대생


 상차 아르바이트로 모은 800만 원으로 가장 먼저 한 일은 경제적 독립이었다. 한 학기 정도는 아무 도움 없이 생활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번 학기만큼은 등록금, 월세, 식비, 통신비를 스스로 해결하겠다고 말씀드렸다. 막상 등록금 440만 원을 내려고 보니 그동안 했던 고생이 떠올랐다. 내 돈이 이리도 큰 의미를 가졌다니.




 절반으로 줄어든 잔고는 그다지 많은 선택지를 주지 않았다. 남은 돈으로 어떻게 4개월을 먹고 잘 수 있을까. 우선 자는 문제부터 해결했다. 기숙사는 한 달 35만 원이었고 2인실이었다. 친구와 같은 방을 쓰면 분명 노느라 돈을 탕진할 것 같았다. 지방이 집인 친구는 원룸을 구하기도 했지만 나는 보증금을 낼 여력 없었다. 그래서 마지막 남은 선택지인 고시원을 찾아갔다.


 컴팩트의 최고봉이라 할 만큼 1평 내외의 공간에 침대, 책상, 옷걸이가 기가 막히게 배치되어 있었다. 창문이 있는 방은 23만 원, 창문이 없는 방은 18만 원이었다. 창문이 있는 방의 장점은 크기가 미세하게 컸고, 환기가 가능했다. 그러나 고민할 것도 없이 18만 원짜리 방을 선택했다. 5만 원은 하루를 꼬박 아르바이트해야 채울 수 있는 돈이었기 때문이다. 창문 하나를 위해 하루 더 고생하고 싶지 않았다.


 창문이 없었기에 방이 어두웠다. 애초에 잠을 자기 위한 공간이어서 오히려 목적에 딱 맞았다. 불을 끄면 조용하고 어두워서 온갖 생각을 하기에 좋았다. 고시원의 최대 장점은 공대와 5분 거리에 있다는 점이었다. 공강 시간에 뛰어와서 낮잠 자고 수업을 들으러 갈 수 있었다. 수업 시간에 유일하게 한 번도 졸지 않은 비결이었다. 내가 체력이 좋은 줄 알았겠지만 사실 하루에 14시간씩 잠을 자면서 다녔다.


 오후 6시까지는 학생들이 학교에 남아 과제를 수행하느라 공대 도서관의 경쟁이 치열했다. 이 시간을 피하기 위해 오후 5시에 저녁을 먹고, 방에 가서 낮잠을 잤다. 오후 8시쯤 일어나서 샤워를 하면 잠이 깼다. 운동복 복장에 삼선 슬리퍼를 장착하고 오후 9시쯤 공대 도서관으로 슬금슬금 걸어갔다. 하교하는 친구들은 내가 수업이 끝나고 그때까지 계속 공부한 줄 착각하고 있었다. 오후 10시부터 새벽 1시까지 3시간 남짓 공부한 게 전부였는데 말이다. 우게도 하루 20시간씩 공부하는 벌레로 소문이 나 있었단다.


 내 방의 큰 단점은 창문이 없었기에 환기 문제가 있었다. 밀폐된 공간이라서 그런지 감기와 비염이 잘 걸렸다. 하필 중간고사 때 고열 감기가 와서 시험을 포기할 뻔했는데, 고맙게도 친구가 강의실과 병원을 차로 데려다줘서 무사히 시험을 마쳤다. 최근에는 공기청정기를 2대나 가동하고 있는데 이 증상이 싹 사라졌다. 그 당시 환경이 그 증상들을 만들었나 싶다. 창문이 있었다면 괜찮았을까.


 식비는 학생 식당에서 해결했다. 그 당시 1끼 식사는 2500원이었다. 자판기 커피, 초콜릿까지 포함하면 하루 만 원으로 해결됐다. 한 달 식비는 30만 원으로 끊을 수 있었다. 통신비는 기본요금 19800원짜리로 버텼다. 평소 휴대폰을 거의 꺼놨더니 19820원이 나왔다. 지금 생각해보니 한 달 동안 문자 1통만 썼었나 보다. 주변 사람들은 불편해했지만 나는 어느 때보다 편하고 여유로운 시간이었다.


 한 학기가 끝나갈 때쯤, 이렇게나 타이트하게 소비했지만 잔고가 바닥나 있었다. 하지만 복학생의 저력으로 성적은 역대 최대치를 받았다. 공대 전체를 통틀어 성적 우수자 10위 안에 들어서 게시판에 이름이 붙었다. 기뻤던 점은 장학금이 나왔다는 사실이었다.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만으로도 성공적이었다. 따로 노력하지 않았지만 탄탄한 생활력은 덤으로 키워졌다.


 주변 가족과 친구들은 나의 악착같은 모습을 안타까워했지만 나는 내가 주인이 된 내 삶에 큰 만족감을 느끼고 있었다. 눈치를 덜 보는 멘털도 같이 키워졌다. 그 어느 때보다 눈빛은 또렷했고 자신감이 있었다. 이를 무기 삼아 창피함을 무릅쓰고 다양한 도전들을 이어갔고 특이한 이력들을 쌓아갈 수 있었다.


 이후 총 5학기나 고시원 생활을 했다. 주 4일 수업시간을 제외하시간이 남기 시작했다. 고시원은 나를 안에 가둬두려고 하기보다 오히려 바깥으로 더 내몰았다. 이때 시작한 대외활동에서 돈도 벌고, 새로운 경험도 하고, 내 인생에서 중요한 친구들도 만나게 되었다. 고시원 밖에서 생활하는 시간을 늘리려고 바쁘게 살았고, 녹초가 되어 돌아온 내게 방은 답답함 대신 아늑함을 주었다.


 고시원 생활이 내 인생의 바닥점이 되어서 현재의 인생이 더 큰 만족감으로 느껴지는 듯하다. 그때는 비록 창문도 없었지만, 지금은 창문도 크고 많은 집에서 살고 있니 그것만으로도 더 나은 삶 아닐까 스스로에게 위로와 격려를 한다.




 내가 좋아하는 오디션 프로그램인 쇼미더머니, 싱어게인 참가자들의 공통점을 생각해 보자. 어린 나이에 서울로 상경해서 음악을 공부하는 참가자, 아르바이트로 작은 작업실을 마련해서 자투리 시간마다 노래를 만드는 참가자의 스토리가 마음을 움직이게 한다. 그들은 비록 어둡지만, 오롯이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는 공간에서 갈고닦은 기술로 예술적인 장면을 만들어낸다.


 무언가 변화가 필요하다면, 그 시작은 나만의 공간으로 독립하는 것을 추천한다.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나만의 공간을 만들어보길 바란다. 이때 남는 시간과 에너지를 느끼면서 어떻게 쓸지 고민해봤으면 좋겠다. 분명 더 나은 미래의 장면이 내 앞에 찾아올 것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