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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찌니 Jun 24. 2024

아들아 너는 너의 인생을 살아라

그러나 나는 혹시 모를 니 옆의 절벽 앞에 서 있을 거다

수암봉에서 바라본 노을과 야경


  우리의 영웅 골프여제 박세리가 기자회견을 하며 눈물을 흘렸다. 아버지의 빚을 막다가 막다가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아버지를 고소했다고 한다. 박세리의 인감도장을 도용한 박세리 아버지는 어느 인터뷰에서 내가 박세리 아버지니까... 그래도 된다고 생각했단다.  

  이와 대비하여  우리의 자랑스런  축구선수  손흥민의 아버지 손웅정 씨의 발언이 재조명되었다. 손웅정 씨는 어느 인터뷰에서 자식은 내 소유물이 아니다, 자식 돈은 자식 돈이고 내 돈은 내 돈이다, 자식의 성공은 자식의 성공이고 내 성공은 내 성공이다,  나는 흥민이 얼마를 버는지 어디에 어떻게 쓰는지 모른다.  자식에게 숟가락을 왜 얹나? 부모가 그러면 안 된다....


  요즘 아들이 인생의 한 고비를 힘들게 넘고 있다. 경우는 완전히 다르지만 부모로서 어디까지 어떻게 걱정을  하고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는 상황이어서인지 두 아버지의 방송에 관심이 갔다.


  오래전 돌아가신 막내삼촌도 떠올랐다. 어느 명절 가장 큰집이던 시골 우리 집에 다 모였을 때의 일이다. 어떤 얘기 끝에 막내숙모가 당신들의 딸에 대한 서운함을 쏟아냈다. 그들의 딸은 서울의 명문대를 나와서 모 방송국의 아나운서로 입사한 집안의 자랑거리였다. 그런데 그날 막내숙모는 어쩐 일인지 자랑을 하기는커녕 못된 년 싸가지 없고 버릇없는  딸년이라고 흉을 봤다. 집에서는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는다는 둥 묻는 말에 톡톡 쏘거나 무시한다는 둥  좀 나무라거나 잔소리를 할라치면 미친년처럼 대든다는 둥... 그리고 무엇보다 용돈은커녕 생활비 한 푼 안 보탠다는 둥... 세상에 저를 우리가 어떻게 키웠는데... 하면서 끝내 눈물을 보였었다.

  그때 옆에서 몇 번이나 막내숙모를 제지하던 막내삼촌이 그 특유의 느리고 낮은 음성으로 말씀하셨다.

  자식에게 뭘 바라나 이 사람아... 뭐가 그리 서운한가 이 사람아... 자식은 태어날 때나 어릴 때 그리고 무럭무럭 자라면서  준 기쁨만으로 우리에게 다 보답한 거야...

 

   너무 순해빠져서 답답해 죽겠다고 막내숙모의 가슴을 치게 만들던 막내삼촌은 4형제 중 막내인데도 가장 먼저 세상을 떠나셨다. 일찍 시집와서 동생처럼 보살폈던 시동생의 이른  죽음이 너무 안타까운 엄마는 그 억척스럽고 사나운 막내 숙모 등쌀에 제 명을 다  살지 못한 거라고  우리에게만 나직이 막내숙모의 흉을 봤었다.  그래도 그 억척스러운 생활력과 욕심으로 애들 보란 듯이 키우고 셋방에서 시작한 살림을 지금처럼  불린 거지... 언니가 그렇게 응수했던가 내가 그랬던가...


아들을 키우면서 나는 가끔 막내삼촌의 그 말이 생각났다. 국민학교만 졸업하고 포크레인 기사로 노동하셨던 막내삼촌의 자식에 대한 그 확고한 신념이 존경스러웠다.


ㅡㅡㅡㅡㅡㅡ

 

  아들은  계속 사직서를 제출하기 전보다 10 ㅡ 20분 정도 늦게 일어나 출근준비를 한다. 그 시간만큼 늦게  돌아보지도 않고 갔다 올게 힘없이 말하고는 어깨를 늘어뜨리고 집을 나선다. 나는 그저 아들의 축 쳐진 뒷모습에 대고  수고해 아들.. 너무 늦지 말고... 말해 줄 뿐이다. 지나친 걱정과 애탐이 묻어나거나 또는 부자연스러운 밝음의 하이톤 음성이 되지  않도록 신경을 쓰면서.

  일찍 들어와도 저녁을 먹거나 먹지 않은 후 바로 방에 들어가 문을 닫아버린다. 삼일 째 저녁을 안 먹길래   좋아하는 소고기육개장 고사리 넣어서 맛있게 끓여놨는데 오늘 안 먹으면 맛 없어지는데 조금만 먹지 않을래? 물어보았다. 그럼 조금만 줘... 했다.  아들은 말아준 밥을 고개도 들지 않고 말없이 묵묵히 떠먹을 뿐이었다. 좋아하는 계란말이와  오이무침 반찬은 손도 대지 않았다.  엄마인 나  생각해서 억지로 먹어주는 건가 ... 그 모습이 먹먹하여 다가가서

맛있지? 물었더니 별로... 고개도 들지 않고 말했다.  억지로 먹다가 탈날까 싶어 남겨도 돼...라고 말해줬지만 아들은 남기지 않고 그릇을 비웠다.


착한 녀석...


ㅡㅡㅡㅡㅡ


하산길을 따라오던 달

  지난 금요일에는  남편과  저녁 7시  좀 넘어  수리산 수암봉을 올랐다.  조금 서두르면 산 위에서 장엄한  노을을 볼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수암봉주차장에서 수암봉 (398m)까지 한 시간 정도 걸리던 가파른 코스를 40 여 분 만에 올랐다. 시나브로 산속이 어두워왔지만 헤드렌턴을 켤 정도는 아니었다. 땀에 흠뻑 젖어 숨을 헐떡이며 수암봉 데크에 도착했다. 잘했다 장하다 수고했다는 격려와 위로의 속삭임 같은 밤의 산바람이 사방에서 불어왔다. 그리고 하늘 가득 연하고 짙은 주황색 노을이 보석을 뿌려놓은 듯한 야경과 함께  눈앞에 펼쳐졌다. 아... 멋있다... 이쁘다... 좋다... 좋구나...

감탄사가 저절로  나왔다.

넓은 데크 위에는 우리 외에 열명 가까운 사람들이 있었다. 그중에 네 명의 젊은이들은 접이식 테이블 위에 렌턴을 켜놓고 접이식 의자에 모여 앉아 정답게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들 옆에 커다란 백배커용 배낭이 놓여 있었다. 아마도 거기서 밤을 보낼 모양이었다.  그들의 모습에 노을과 야경만큼이나 시선이 자꾸 갔다. 우리 아들도 하루빨리 정상적인 궤도에 올라와 저렇게 밝고 건강하게 생활해야 할 텐데... 하는 생각에 잠시  마음이 무거워졌다.

수암봉 데크에서 밤을 즐기는 젊은이들

  멋진 풍경을 보면 누군가와 공유하고 싶은 건 인지상정.  나는 노을과 야경을 동영상에 담아 단톡에 올렸다.

  얘들아... 지금 현재 수리산 수암봉의 풍경이다... 노을과 야경... 멋지지? 아름답지? 나는 힘들게 올라와서  보는데 니들은 땀 한 방울 흘리지 않고 편안히 보는 거야... 고마운 줄 알거라... 히히...

하고 음성까지 넣었다


멋지다 멋져

와우...

근데 혼자 올라간 건 아니지?

조심히 내려와


몇 개의 톡이 올라왔다.


 산속은 금방 어둠으로 가득 찼다. 헤드렌턴의 빛에 의지해 조심조심 천천히 하산을 시작했다. 도중에 왁자하게 올라가는 한 무리의 젊은이들을 만났다. 그들의 건강하고 밝은 웃음과 말소리가 밤의 산속 적막을 유쾌하게 흔들었다.

이 시간  도심 어딘가에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을 아들 생각이 났다. 어서 빨리 이 고비를 넘었으면...


 뜬금없이 호밀밭의 파수꾼에 나오는 홀든  콜필드의 꿈이 생각났다.  요즘 읽고 있는 박연준 시인의 는 사람 산문집 때문일 것이었다.


....... 그리고 난 아득한 절벽 옆에 서 있어. 내가 할 일은 아이들이 절벽으로 떨어질 것 같으면, 재빨리  붙잡아 주는 거야....


  헤드렌턴 불빛이 미치지 못하는 몇 발자국 앞은 깜깜한 어둠뿐이었다. 절벽 같은 어둠이었다.


  문득  나는, 혹시나 아들 앞에 있을지도 모르는 깜깜한 절벽 에 서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할 일은 내 아들이 행여 깜깜한  절벽 가까이로 다가올 것 같으면 나는  재빨리 달려가 아들을 안아 주는 거다. 아들은 아들의 인생을 살고 나는 내 인생을 살겠지만 아들 앞의 혹시 모를 어둠은 온몸으로 막아줄 것이다.


  렌턴불빛에 의지한 하산길은 올라갈 때 보다 오래 걸렸다. 가파른 길을 내려와 완만한 평지에 다다랐을 때에야 숨을 고르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검푸른  하늘에 달이... 휘영청 밝은 달이... 수호신처럼  우리를 따라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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