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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찌니 Jan 07. 2025

문상을 다녀와서


눈이 펄펄 내리는 날 작은아버지의 부음을 들었다. 세 의 작은아버지 중 둘째 작은아버지시살아계신 마지막 작은아버지셨으며 올 해 79세시다. 1남1녀를 두셨는데 몇 년 전 딸을 먼저 암으로 보내셨으며 세 의 시동생 중 엄마에게 가장 다정하셨다. 아버지 돌아가시고 우리 다섯 남매들도 모두 떠나 산 밑 넓은 집에 혼자 게 된  엄마에게 자주 전화를 하셨으며 나이가 들어갈수록 더욱 자주 전화를 하셨다. 엄마 생신날이나 집안 행사 때나  농번기 때는 칠씩  머물 농사일을 돕고 말동무를  해주셨다.  

엄마는 작은아버지가 내려오신다면 먼저 고방에 가서 콩가루를 퍼내 왔다. 작은아버지는 엄마가 반죽하고 치대어 넓고 긴 안반에 놓고 홍두깨로 보자기처럼 밀어서 다시 접어서 썰어서 큰 솥에 끓여 주는 노리끼리한 콩국수를 엄청 좋아하셨다.


그리고 술을 엄청 즐기셨다. 장난기 많고 짓궂은 성격에 기운이 차올라 마음이 풀어지시면 형수 형수 우리 형수 하서 엄마의  손과 뺨을 어루만지 옛날에 너네 엄마 얼마나 예뻤는지 아느냐고... 얼마나 달처럼 꽃처럼 밝고 예뻤는지 아느냐고..  주름진 엄마의 얼굴을 몇 번이고 몇 번이고 쓸어내리셨다. 누나에게 치대는 철없는 남동생럼 늙음이 안타까운 오래된 연하의 연인처럼... 엄마가  고만하라고 가볍게 역정을 낼 때까지... 그렇게 허물없이 세상 다정한 형수와 시동생이었다.

누구보다 엄마 곁에 오래 계시길 바랐는데 두 달 전쯤 두 번째 뇌출혈로 쓰러지다. 뇌수술 후 깨어나지 못하셔서 한 달 가까이  중환자실에 계셨고 의료진과 가족들이 합의한  연명치료 중단을 이틀 앞두고 돌아가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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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순의 엄마가 걱정되어 전화해 보려다가 엄마의 슬픔을 마주하기가 두려워 자꾸 망설여졌다.


발인을 하루 앞둔 날 늦은 오후 문상을 갔다. 펄펄 내리던 눈이 그치고 녹아 도로가 젖어 있었다. 

결혼식이나 장례식에서나 만나는 선 듯 낯익은 친인척들에게 목례하서 들어섰다. 지난해 10 월 조카의 결혼식장에서 만난 친인척들이그나마  덜 낯설고 덜 어색했다.


지난 10월의 조카 결혼식에는 작은아버지가 오셨었다. 까무잡잡하고 작은 얼굴이 부풀어 오른 밀가루반죽처럼 허옇고 크게  변해 있었다.  얼핏 보면 살 찐 모습 같았지만 자세히 보면 부어 올라 부자연스러운 모습이었다. 그때가 두번 째 뇌출혈로 쓰러지기 전의 모습이었는데 아무도 그 모습이 마지막일 줄 몰랐다. 다시 입원하고 치료 받으면 또 집안의 대소사에서 볼 수 있을 줄 알았다.


웃음도 말도 부자연스럽고 힘들어 보였던 그날의 작은아버지가 하얀 국화꽃 속 단정한 모습의 영정사진으로 계셨다.

작은아버지께 절을 하고 상주인 아들과 며느리와 손자와 맞절 했다. 작은엄마는 꼭 안아드렸다. 미소짓고 계셨지만 처연함이 느껴졌다. 부모를 잃은 자식의 모습은 슬퍼만 보이는데 배우자를 잃은 남편이나 아내의 모습은  슬픔에 더해 한없이 쓸쓸해 보이는 것은 나만의 느낌일까.

음식을 앞에 두고 담소를 나누는 조문객들을 둘러보다가 자석에 이끌리듯이  다가간 자리는 먼 지방에서 새벽 기차를 타고 올라온 친오빠와 언니가 있는 자리였다. 오빠와 언니는 어릴 때 가까이 살며 자주 어울려 놀았던 육촌 오빠들과 합석해 있었다. 얼굴이 모두들 불콰했다. 60대 중후반 대인 그들 가까운 자리에는 삼사십 대의 그들의 자식들이 모여 앉아 있었다.  언니오빠들은 지난 시절을 이야기하고 그들의 자식들은 지금 현실을 이야기했다.


 상주가 아들 며느리 손자 배우자뿐인 고인의 입관식을 보겠다는 친인척들이 예상보다 많음에 장례지도사는 조금 놀라는 듯했다.  고인은 생전 그만큼 다정하고 정 많은 분이셨다. 농담도 잘하시고 잘 웃으셔서 작은 아버지들 중 가장 편했다.


작은아버지의 머리는 찢어진 천을 박음질해 놓은 듯 꿰맨 수술자국이 선명했다. 20년 전 돌아가신 아버지와 똑같은 모습이었다. 아버지도  뇌수술 후 깨어나지 못하시고 꿰맨 수술 자국인 채로 돌아가셨다. 돌처럼 굳은 머리와 얼굴을 쓸어보며 가장 서럽게 운  사람은 나의  첫째 오빠였다. 엄하고 무뚝뚝했던 아버지와 달리  정 많고 다정했던 작은 아버지는 오빠에게 또 다른 아버지였을 터이다.


죽음이... 바로 앞에 있었다. 숨도 온기도 없이 차갑고 뻣뻣하게 굳은 죽음이 바로 앞에 놓여 있었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우리는 죽음을 향하여 한 발 한 발 다가가는 것이라고, 가장 확실한 미래는 죽음뿐이라지만  바람결에 실려왔다가 바람결에 사라져 버리는 뜬소문 같은 말들일 뿐이었다. 가까운 사람의 죽음도 슬픔의 시간이 지나면 또 잊혀졌다. 그래서 우리는 남들처럼이나 남들보다 더 잘 살아 보겠다고, 뭔가를 이루어 보겠다고 애면글면  살아갈 수 있었다.


내 나이 육십(맙소사!!)에 작은아버지의 죽음을 대하고 보니  죽음이 성큼 가까이 다가온 듯했다. 차례로 늘어선 죽음의 줄이 있다면 앞사람들로 인해 보이지 않던 죽음의 입구가 서서히 보이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 느낌은 그리 두렵지 않았다.


육십부터 죽음의 카운트다운이 시작된다고 하면 슨 소리냐! 인생은 육십부터다!!라고 누군가는 강력히 반발하려나? 평균수명이 얼마나 늘어났는데, 앞으로도 계속 늘어날 건데 무슨 소리냐고...

그러나 육십은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짧다. 그저 살아만 있는 날이 아니라 살아갈 수 있는 날들... 병들지 않은 건강한 몸으로 자신의 의지대로 살아갈 수 있는  날 말이다.


그러하니.


지금보다  더 모으고 더 채우고 더 틀어쥐려 하지 말자 싶어 진다.  무엇보다 아직도  놓지 못하는, 꼭 이루고 싶었으나 이루지 못한 꿈도  이젠 놓아줄 터이다.  그것 또한 '노욕'일 것이다. 인연에도 연연해하지 않을 터이다. 새로운 인연은 만들지 않을 것이며 가까운 인연이 멀어진대도 상심하지 않을 것이다. 다시 가까워지려 애쓰지도 않을 것이다. 조금씩 모든 걸  비워갈 터이다.  그럴 나이가 된 거다.


이러한 마음이 작은아버지의 장례식에 다녀온 후의 객쩍은 감상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많은 날 잊고 살겠지만 아주 잊혀지지는 않을 것 같다. 아니 의식적으로라도  자주 떠올려야만 하리라...내 나이 육십(맙소사!!!) 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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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작은아버지 장례식 갔다 왔어..."


다음날 엄마에게 전화했다.


"오냐오냐 갔다 왔냐... 그래..."


"엄마 슬프지? 작은아부지 엄마한테 엄청 다정했잖아..."


"그래... 그래서 많이 울었다... 소식 들은 날 울고 어젯밤에도 많이 울었다..."


엄마의 목소리는 의외로 담담하고 씩씩했다. 슬픔은  하룻밤으로 충분하다는 듯이. 험한 세월을 철없는 밝음으로,  자기중심적인 현명함으로  건너온  엄마 다웠다. 조금 긴장했던 마음을 놓고  장례식장에서 들은 소식을 전했다.


"엄마 손부가 임신을 했다네... 엄마가 어릴 땐 금이야 옥이야 귀해하고 다 커서는 어쩐지 어려워하던 장손이, 늦도록 장가를 안 가서 걱정하던 장손이 열 달 후면 애 아빠가 된다..."


엄마는 당신 자식인 우리는 앉아서 맞이하면서 장손인 큰 조카가 들어서면 벌떡 일어났다. 우리를 바라보는 미소와는 묘하게 다른... 함부로 대해서는 안 될 집안의 큰 어른을 맞이하는 듯 보인 것은 나만의 오해인지도 모르겠지만.


"뭐라고?"


엄마의 목소리가 튀어 올랐다.


"손부가 임신했다고... 엄마 친손자가 아기를 가졌다고... 엄마 증손자 본다고... "


귀가 어두운 엄마가 잘 알아듣도록 나는 더욱 목소리를 높였다.  


"아이고 장하다 장해... 하하하 증손자... 하하하..."


"엄마 좋아? 좋지?"


"좋지러 좋아... 하하하..."


"은 결혼이고 또  요즘 애들처럼 애 없이 산다 할 줄 알았는데 기특하게도 애를 가졌다네...그 엄마... 기특하지?"


"그래그래... 아이고 기특해라... 아이고 장해라... 하하하..."


한참을 웃던 엄마는 영감을 보낸 지 얼마 안 된 친한 이웃이 자꾸 놀러 오라고 성화라고 거기 가봐야 한다고 서둘러 전화를 끊으시려 했다. 나는  전화를  끊고 싶지 않아서

거기 가서 뭐 하고 노시느냐 물었다. 화투도 치고 윷놀이도 한다신다. 눈길 조심하라고 넘어지면 클난다고(큰일 난다고)... 행여 들리지 않을까 또  소리를 지르다시피 말다.


그래 그래 클나...클나지러 클나... 하시며  내 말투와 억양이 우스웠는지 또 소리 내 하하하 웃으다.


온기 없는 햇살이 구름 속에서 약하고 엷게 퍼져 나온다. 회색의 춥고 마른, 계절의 죽음인, 겨울이 깊다. 이 겨울이 지나면 봄이 오겠지.

계절이 봄 여름 가을 겨울 순환하듯이 우리의 삶은 생로병사의 자연스러운 순환이어야 한다.  

태어나 살고 늙고 병들어 죽는... 이 자연스러운 순환의 고리에서 어느 누구도 튕겨져 나가지 않아야 한다. 조금 더 희망한다면... 병들어 누군가에게 무엇인가  의탁해 살아야 하는 시간이 일주일을 넘기지 않았으면 한다. 순하게 살고 순하게 늙고 순하게 병들어 순하게 죽음으로 넘어갔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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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스러운 이 순환의 고리에서 튕겨져 나가 참혹한 죽음을 당한 제주항공 희생자들의 명복을...  늦게나마... 빕니다... 마음 깊이... 애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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