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준 작가의 산문집 '밑줄과 생각, 작가정신'을 읽다가 이런 글을 발견했다.
<사람들은 '충동'이란 말을 두려워합니다. 비이성적이고 비합리적인 결정과 판단을 하게 만들어 나중엔 반드시 후회하게 하는 단어라 여기죠. 건강한 삶을 흔들고 건전한 사고를 위협하며 일상의 루틴을 파괴하는 어리석음이라고 믿는 것입니다. 하지만 정말로 그럴까요? 물론 대책 없이 온갖 충동을 몸에 내맡기는 삶은 고민해봐야 합니다. 하지만 충동 그 자체는 나쁜 것이 아닙니다. 충동이 없다면 인간의 시선은 어느 곳으로도 향하지 않습니다. 어떤 것에도 도전하지 않고 무엇도 시도하지 않은 채 어제의 발자국에 오늘의 발을 집어넣고 같은 보폭으로 살게 되겠죠. 욕심, 욕망, 꿈, 소원. 그것들은 '지금'과 '여기'를 불안하게 만들지만 그 충동들이 없다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어떤 충동은 미래를 품고 도래합니다. 어떤 충동은 이야기를 담은 한 권의 책이 되어 내 앞에 펼쳐집니다. 충동. 그것은 갑자기 빨라지는 심장의 박동만큼이나 중요한 에너지입니다..... 62 ~ 63p>
사전에 나온 '충동'의 뜻은 '순간적으로 어떤 행동을 하고 싶은 욕구를 느끼게 하는 마음속의 자극'이다. 심리학적으로는 '반성 없이 행위를 하는 경향, 원시적 반응, 폭발 반응, 동기 없는 행위 따위에서 볼 수 있다'라고 나와 있다. 그러므로 '충동'은 억제하고 억눌러야 마땅한 원시적이고 저급한 일차원적 감정으로 치부해 왔다. 작가도 '건강한 삶을 흔들고 건전한 사고를 위협하며 일상의 루틴을 파괴하는 어리석음'이라고 했다. 그러나 작가는 이렇게도 썼다. 충동들이 없다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어떤 충동은 미래를 품고 도래합니다... 그것은 갑자기 빨라지는 심장의 박동만큼이나 중요한 에너지입니다....
나의 MBTI는 INFP(내향적, 직관적, 감정적, 인식적), 이상적이고 창의적인 성격을 가진 유형으로 계획을 세우기보다는 자신의 가치관과 감정에 따라 행동하는 것을 선호한다고 나왔다. 어느 정도 맞았다. 나는 계획을 세우기보다 감정적으로 행동하는 편이다. 나에게 '충동'은 '후회'와 썀쌍둥이처럼 붙어 있었다. 그러나 이 글을 읽은 후 곰곰 생각해 보았다. 나의 이런저런 충동적인 행위들이 후회만을 남겼나... 아닐 수도 있겠네...
20대 중반의 나는 모 기업 자료실에 근무하고 있었다. 똑같은 일의 반복이 지겹던 어느 날 버스를 타고 노량진역쯤을 지나가다가 '취재/편집 기자 디자인학원'간판을 보게 되었다. 잠깐 멈춘 버스 창 너머로 보인 그 간판이 학창 시절 잠깐 꾸었던 기자의 꿈을 생각나게 했고 다음날로 나는 그 충동을 실행에 옮겼다. 그 학원을 수료한 후 조그만 잡지사의 취재기자가 되었고 그 일을 하다가 지금의 남편을 만났다.
가만... 글을 쓰다 보니 퍼뜩 이런 생각이 든다. 나에게는 충동이었는데 신에게는 다 계획된 일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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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금까지 어떤 충동에 휘둘리며 살았을까 생각해 보았다. '충동' 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것이 '가출 충동'이다. 생각해 보니, 결혼 전에는 삶과의 불화가 가출 충동을 일으켰다면 결혼 후에는 가족과의 불화로 인한 가출충동이 많았던 것 같다.
20대 초였던 것 같다. 성탄절을 앞두고 무작정 기차를 탔었다. 낯선 도시에 내려 낯선 동네의 골목길을 걸었었다. 동네 안의 따스한 불빛이 환한 작은 교회에서 웃음소리와 음악소리가 들렸다. 교회 안으로 들어가 안을 들여다보았다. 행복하고 즐거운 모습으로 크리스마스트리를 장식하고 있었다. 나는 돌아가지도 못하는 탕자 같은 마음으로 그 모습을 한참 훔쳐보았다. 세상은 저토록 환하고 따뜻한데 나는 왜 이렇게 춥고 외롭나... 20대의 나는 그렇게 가끔 집을 나가 고아처럼 떠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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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이 지겹고 가족이 버겁고 가정이 감옥 같을 때... 가출...이라는 말은 가슴을 뛰게 한다. 책임과 의무라는 허울로 덮어놓은 가출에의 충동에 불을 지피는 것이 가족 간의 불화였다.
오래전(찾아보니 2017년이다) 여름휴가철이었다. 휴가를 앞두고 남편과 불화가 있었고 화해하지 못한 채로 휴가가 시작되었다. 나는 가슴을 짓누르는 무거운 공기로 가득 찬 불편한 집안에서 도망치고 싶었다. 그것은 가출에의 충동이었다. 그날 아침은 장대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가방을 챙겨 놓고도 한참을 망설였다. 집안의 공기는 내리는 비와 눅눅한 공기로 인해 더욱 무거웠다. 무거운 공기는 나가라 부추기고 내리는 빗소리는 떠나라 재촉하는 것 같았다. 나는 빗소리의 유혹에 항복하고 집을 나섰다. 비는 더욱 거세게 휘몰아쳤다. 대못처럼 내리꽃히는 빗속에 한 발을 내디뎠다. 빗물은 발바닥에서부터 종아리로 공포영화에서 나오는 검은 그림자처럼 휘감고 올라왔다. 나를 잡으려는 일상의 손아귀 같았다. 그래서 더욱 힘을 주어 한걸음 한걸음 철벅 철벅 앞으로 나아갔다. 두 다리는 금방 흠뻑 젖었지만 앞으로 맨 백팩을 꽉 끌어안고 빗속을 걷는 가슴은 쿵쿵 뛰고 있었다. 걸음은 점점 빨라졌다. 나를 질척이는 일상에 묶어두려는 검은 그림자는 어느새 저만큼 나가떨어졌다. 후회와 두려움과 긴장과 더불어 나의 가슴을 뛰게 한 그것이 무엇인지 나는 몰랐다. 그것이 작가가 말한 삶의 에너지였나 보다. 심장 박동만큼이나 중요한 에너지. 나는 사슬을 스스로 끊어내고 내달리는 짐승처럼 자유로웠다.
버스정류장에서 안내판을 올려다보며 '충동'적으로 부안을 선택했다. 오후 한 시 무렵 도착한 부안은 눈을 바로 뜰 수 없을 만큼 밝고 델 듯 뜨거웠다. 그 8월 한여름 뙤약볕 속을 걸었다. 고사포해수욕장에서 격포항에 이르는 변산마실길을 허기가 지도록 걷고 또 걸었었다. 이상한 생각이 들 만큼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멸망한 지구에서 살아남은 일인 같았다. 배들이 정박해 있고 잡은 물고기가 뜨거운 태양 아래 꼬들꼬들 말라가는 작은 바닷가마을 평상에 앉아 쉬고 드넓은 논에서 벼가 자라는 작은 마을의 노인정에 들어가 시원한 물을 청해 마시며 쉬기도 했었다. 격포항 앞 모텔에서 잠을 자고 먼지 낀 유리창과 낡은 안내판이 너덜거리는 시골의 조그만 버스정류장 옆 허름한 식당에서 식사를 했다. 그곳에서 일하는 우리말이 서툰 젊은 외국 여자... 저 여자는 어쩌다가 여기까지 흘러왔나... 그런 생각을 하면서 열 가지가 넘는 반찬을 남김없이 천천히 다 집어먹었던 기억...
지난해 추석 무렵에는 김유정 문학촌에 가서 삼 일을 혼자 있다가 왔다. 이번에도 가족 간의 불화가 도화선 역할을 한 충동적인 가출이었다.
주방에서 잡채를 하다가 가방을 대충 꾸려 집을 나왔었다. 모든 차표가 매진되어서 전철로 갈 수 있는 먼 곳을 찾다가 간 곳이 김유정역에 있는 김유정 문학촌이었다. 전철로 2시간 30분이 걸리는 거리였고 문학촌 안에 있는 민박집은 하루 숙박비가 5만 원이었다. 이틀 동안은 전화도 받지 않은 완전 잠적이었고 삼일 째 되는 날 통화하면서 화해를 시도했고 어이없을 만큼 쉽게 화해했다.
어쨌든 지금까지 나는 늘 돌아왔다. 지쳐서 돌아왔지만 그렇게 돌아오면 다시 또 일상을 살았다. 가출의 빌미를 제공한 상대를 용서하고 상대도 나를 용서했다. 피를 몽땅 갈아버리고 싶을 만큼 맘에 들지 않는 나 자신도 용서가 되었다. 끊임없이 회의하게 하는 삶에도 너그러워졌다. 그렇게 가출에서 돌아온 나는 나를 내몰았던 충동과 화해하고 평화를 찾았다. 물론 일시적인 평화이지만 나에겐 언제든 가출을 감행할 용기가 있다는 사실이 큰 위안이 되어준다면... 이상한가?
어쩌면 나는 내 일상에 가끔 출몰하는 가출충동과 그 실행을 삶의 에너지 삼아 여기까지 온 건 아닌지...
봄의 끝자락... 가출충동이 일어나기 좋은 계절이다. 그런데 나의 가출충동에 도화선이 되어 주는 남편과의 불화가 없다. 좀 길게 평화로운 날이 계속된다. 물론 마음속에 일말의 불만과 불안을 품고 살지라도. 잠시 기출 충동이 잠들어 있는 상태다. 더 깊이 잠들기 전에 가출 충동을 일으키기 위해서... 불화를... 만들어... 봐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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