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 단골 메뉴인 어묵볶음은 남편과 나만 먹었다. 아들은 먹지 않았다. 편식하지 않고 두루두루 잘 먹는데도 그랬다. 그래서 어제 남편이 없는 아들의 저녁 식탁에 전날 먹다 남은 어묵볶음을 꺼내 놓지 않았다. 속이 더부룩한 내가 화장실에 갔다가 오니 식탁에 냉장고에 있어야 할 어묵 반찬 그릇이 통째로 나와 있었다. 벌써 어묵에 같이 넣어 볶은 당근과 양배추 몇 조각만 남아 있었다.
“어? 너 어묵볶음을 다 먹었네... 웬일이야?” 물었더니 무심한 듯
맛있네... 했다.
그 한마디에 나는 잠들기 전 냉동실의 어묵을 꺼내 놓았다.
그리고 그 한마디가 오늘 아침 나를 주방에 서게 했다. 특별한 일이 없으면 오후 다섯 시쯤 저녁을 준비하는데 오늘은 어쩐지 아침에 몇 가지 반찬을 만들어 놓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는 김에 어제 사놓은 콩나물과 시금치도 무치고 또 하는 김에 사놓은 지 한참 된 토마토를 당근과 함께 갈아 놓기로 했다
안 먹던 어묵을 꺼내서 먹어? 참... 내 어묵요리가 맛있어진거야? 식성이 변한거야?
적당히 달궈진 웍에 식용유와 다진마늘을 넣는다. 어슷어슷 썰어 놓은 어묵과 당근을 넣어 볶는다. 또 적당히 볶아진 어묵 위에 간장 한 스푼, 미림 한 스푼, 참치액 한 스푼, 올리고당을 한 바퀴 넣어 뒤적거린다.
어렴풋이 알 것도 같았다. 그렇지... 내 요리들의 맛이 전체적으로 싱거워진거야...싱겁게 맛있어진거지... 순해진거지...
그러고 보니 그랬다. 예전에는 주로 짜지 않냐, 고 물어봤다면 요즘에는 너무 싱겁지 않냐, 고 물어보고 있었다. 짜지 않냐는 예전의 물음에 짜다,는 대답을 자주 들어야 했고 싱겁지 않냐는 요즘의 물음에는 괜찮다, 맛있다는 대답을 듣고 있다.
그러고보니 많은 시간이 흘렀다. 강산이 몇 번이나 바뀌었나...짜지 않냐는 물음이 싱겁지 않냐는 물음으로 변할 때까지. 힘들었지만 여기까지 함께 무사히 왔다.
양배추 한 줌과 대파와 청양고추를 넣어 뒤적이다가 통깨와 참기름을 넣는다. 어묵과 양배추와 당근을 포개 집어 입에 넣고 간을 본다. 싱거운 듯하다. 좀 더 간을 할까 하다가 이쯤에서 마무리한다. 예전엔 좀 더 넣을까 싶을 땐 넣어버렸다. 그냥 넣은 게 아니라 넣 어 버 렸 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건, 내 안의 결핍과 내 안의 불만과 불안과 원망의 무의식적인 행위였던 것 같다.
내가 직장을 다니고 아들은 커가고 남편은 자주 술에 취해 새벽에 들어오던 과거에... 직장을 그만두고 싶어도 그만 둘 수가 없었던 지난 시절에... 그 때 내가 만드는 요리들은 그렇게 맛이 강했다. 자주 음식을 하기 싫어 한꺼번에 많이 해 두었다. 버리기도 많이 버렸다. 아들이 좀 짜다고 하면 뭐가 짜냐고 짜증을 냈고 남편은 말없이 맹물을 타고 밥을 말아 거의 마시듯이 먹고 급히 식탁을 떠났다. 그리고 지금보다 더 자주 배달 음식을 먹었고 라면도 자주 끓여 먹었다.
라면도 그냥 라면은 끓이지 않았다. 만두, 어묵, 콩나물, 참치, 각종 야채 등 냉장고를 뒤져 넣을 수 있는 식재료는 거의 다 때려 넣었다. 고춧가루와 간장을 더 넣어 간을 했다. 넣는 양에 비해 물 조정을 잘 못하여 면은 불고 물은 줄어들어 그야말로 개죽처럼 되어 버리기 일쑤였다. 보기는 그래도 건강에 좋은 것들이니까 많이 먹어... 하고 퉁명스럽게 말했을 것이다. 그러면 남편과 아들은 한숨을 한 번 푹 쉬고는 머리를 박고 개죽 같은 라면을 그래도 먹어 주었다. 어쩌다가 남편이나 아들이 오로지 라면에 파와 계란만 풀어 끓인 라면이 그렇게 깔끔하고 맛있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도 나는 자꾸 뭔가를 더 넣고 간을 더 했다. 현실에 대한 불안과 불만의 표출이었는지도 모른다.
생각해보니 마치 거식증 환자처럼 음식을 했다.
지금도 라면을 끓일 때 만두나 콩나물이나 알배추나 부추 들을 넣어 끓이지만 예전처럼 때려 넣지는 않는다. 알맞게 넣고 물 조절도 적당히 잘 한다. 그리고 어김없이 묻는다. 싱겁지 않아?
정년을 채우지 못하고 퇴직한 후 3년 차에 접어들고 있다. 주방에서 떠나도 좋을 나이에 다시 주방으로 복귀한 셈이다. 남들보다 긴 길을 돌아 뒤늦게 아들이 취직을 했는데 집에서 자동차로 20분 정도의 거리다. 남편이 전철을 이용해 출퇴근하는 대신 아들이 자동차로 출퇴근을 한다. 아들은 특별한 저녁 약속이 없으면 6시에서 7시 사이에 퇴근한다. 집에 들어서면 가방을 방에 던져 두고 주방으로 들어와 렌지 위의 냄비 뚜껑을 열어 본다. 얼굴이 환해진다. 고기 반찬이 있으면 더 환해지고 카레에도 돈가스를 함께 해 놓으면 완전 헤벌쭉해진다.
식사 준비에 신경을 쓰고 전통시장에 다니고 주방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는 나에게 뒤늦게... 이 나이에...뭘 그렇게까지... 하는 지인도 있다. 그럴 때면 이렇게 응수한다. 만고의 진리 있잖아... 이 또한 지나가리라... 아들이 언제까지 내가 해주는 밥을 먹겠니... 그러나... 좀 빨리 지나갔으면 하는 바람도 없지 않아 있단다 솔직히...
나는 이제 이렇게 산다.
내가 하는 요리들은 재료도 종류도 평범하고 소박하다. 청국장, 된장찌개, 김치찌개, 순두부찌개, 황태국, 냉이국, 김칫국, 시래기국, 미역국, 소고기국 등 국이나 찌개와 훈제오리볶음, 닭볶음탕, 소불고기, 돼지불고기, 두부조림, 냉동떡갈비와 토마토캐찹, 돈가스(동네마트 정윩점에서 월요일에만 나오는 수제), 카레, 생선구이 등 주요리와 멸치볶음, 콩자반, 오징어채볶음, 콩나물무침, 시금치무침, 파김치, 오이무침, 계란말이, 어묵볶음 등이 밑반찬이다. 아 그리고 빼놓을 수 없는 조미김.
이 중 찌개나 국 한 가지와 주요리 한 가지와 밑반찬 두 세 가지가 저녁 매뉴가 된다. 아들은 밥 한 공기는 기본이고 밥 두 공기와 찌개나 국 두 그릇을 먹을 때가 많다. 요즘 들어 부쩍 잘 먹는다. 너무 먹는 거 아니냐고 물어보면 맛있는 걸 어떡하냐고 대답한다. 그래도 키가 187cm이고 저녁을 먹은 후 한 시간쯤 후에 헬스를 가기 때문인지 비만은 아니다. 어제 저녁도 밥 두 공기와 돼지고기 김치찌개를 두 번이나 퍼서 먹었다. 남편과 아들과 셋이 식탁에 앉아 내가 한껏 차려 낸 저녁을 후루루 쩝쩝 먹을 때면 어쩐지 평화롭고, 좀 간지럽지만 행복한 것 같기도 하다. 남들과 비교하면 못 가진 것이 헤아릴 수 없이 많지만. 이제 가지지 못한 것에 안달하는 것보다 가진 것에 고마워 할 줄 알게 되었다. 아니 그렇게 살려고 아직 애쓰고 있다고 해야 정확한 표현이다.
두 시간 가까운 요리를 끝내고 주방을 정리하고 커피를 들고 책상에 앉는다. 햇살이 밝고 따뜻하다. 밖엔 지금 꽃이 다투어 피겠구나. 나뭇가지의 연두빛은 또 얼마나 선명해져 있을까.
안양천에 나가 볼까 하다가 이번 주 독서 모임에 읽어 갈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책을 펼친다.
‘왜 지금보다 더 많은 것을 얻기 위한 노력만 하고, 덜 가진 것에 만족하는 법은 배우려고 하지 않는가?’
‘간소하게 간소하게 간소하게 살라!’
‘소로’의 외침이 오늘따라 크게 와 닿는다.
#어묵볶음 #반찬 #국⸱찌개 #월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