핫플 관악산 컵라면에서 느낀 격세지감

by 찌니
3월 말 관악산 연주대 아래 관악사 모습

지난 토요일 관악산에 다녀왔다. 거의 일 년 만이었다. 갑자기 ‘핫플’로 떠올라서가 아니었다. 나에게 관악산은 무릎에 통증이 오기 전 한 달에 두 세 번은 찾아가던 가깝고 무리하지 않아도 되는 친근한 산이다.

관악산이 특히 2030 젊은이들에게 핫플이 된 까닭은 지난 1월 tvN ‘유퀴즈 온 더 블록’에 출연한 역술가가 “운이 안 풀릴 땐 관악산으로 가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이런 미디어의 언급이 있기 전에도 관악산 정상 연주대는 인증샷을 찍기 위한 젊은이들로 긴 줄이 형성되던 곳이기는 했다. 그런 곳이 매스컴까지 탔고 SNS로 확산되었으니 얼마나 붐빌 것인지는 불을 보듯 뻔했다. 이것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관악산에 기 받으러 갔다가 기 빨려서 왔다”, “인증샷 찍는 데 한 시간이 걸렸다.” 등 자제를 권하는 기사까지 나오는 시점이었다.

신림선 관악산역에서 오전 10시 30분 무렵 출발했다. 일단은 여느 주말 산의 풍경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서울대, 과천, 사당 등 코스에 따른 줄발지가 분산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었다.

계절은 바야흐로 만산에 꽃이 피고 나무마다 고운 연두빛이 일렁이는 초봄. 등산을 즐기지 않던 사람도 한 번쯤 산을 오르고 싶어지는 계절이다. 적당히 흐린 날씨에 간간이 불어오는 바람이 부드러워 등산하기에 좋은 날이었다.


사람들은 많았으나 오르는 데 지장은 없었다. 일행과 담소를 나누며 천천히 한 시간 정도를 오르니 산길이 점점 좁아지고 가파른 오르막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하늘에라도 올라가듯이 길고 좁은 계단이 시작되었다. 분산되어 올라오던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도로의 병목현상과 비슷한 상황이었다. 확실히 젊은이들이 많았다. 중장년층들과 달리 그들은 등산복이나 등산화를 대부분 착용하지 않았다. 간편한 레깅스나 트레이닝 복장에 운동화를 신었고 작은 쌕 같은 가방을 둘러맸을 뿐이었다. 가끔 짧은 비명과 함께 미끄러져 먼지와 잡풀을 풀썩이기도 했다. 핸드폰을 들여다보며 두리번거리기도 했다. 연주대 가는 길이 맞느냐고 물어오는 젊은이도 있었다. 곳곳에 형성된 돌탑에 장난스럽고도 정성스럽게 돌을 얹기도 하고 인증샷을 찍기도 했다. 송글송글 맺힌 땀과 어쩐지 달큰할 것 같은 가쁜 숨소리와 홍조 띤 얼굴과 단단하고 유연한 젊은 몸들이 나는 보기에 좋았다. 유행과 미디어에 무조건 따르는 가벼운 행위, 혹시나 하는 운에 기대려는 마음으로 산을 찾았을지라도, 어떤 이유이든 간에 산을 오르는 일은 비난받을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연주대는 올라가지 않기로 했다. 오늘은, 아니 당분간은 젊은이들에게 양보하지뭐... 이렇게 객쩍은 농담을 하며 연주대 밑 관악사로 내려갔다. 거기도 진풍경이 펼쳐졌다. 절 건물의 난간이나 계단 뿐만 아니라 절 주변에도 앉을 자리가 없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의 대부분이 사발면을 먹고 있었다. 절 마당으로 내려서니 입구 한쪽 구석에서 사발면을 판매하고 있었다. 판매대 옆에는 커다란 온수통이 있었다. 판매대 앞에도 온수통 앞에도 줄이 길었다. 허기진 배가 꿈틀댔다. 큰 사이즈 사발면이 한 개에 3,000원이었다.


등산객들에게 비빔밥을 공양하던 때가 있었다. 나물 두 세 가지가 얹힌 잡곡밥을 고추장에 쓱쓱 비벼 먹었다. 서너 숟가락이면 그릇의 바닥이 드러날 만큼 소박한 양이었지만 배보다 마음이 부른 듯한 그 비빔밥. 동치미 국물이나 간단한 된장국이 제공되었던 것도 같다. 가끔은 시주함에 얼마 되지 않는 정성을 넣기도 했다.

공양간에서 바삐 움직이던 보살님들의 물질적 보상 없는 수고로움과 잔잔한 표정을 보는 것도 하나의 수양이었다. 인공의 맛이라고는 조금도 없는 자연 그대로의 맛. 그 비빔밥을 여러 번 공양받은 기억이 있는 나로서는 간편하고 편리한 인스턴트 식품의 대표격인 사발면으로 대체된 모습에서 새삼 격세지감을 느꼈다.

절 주변에서 한참 내려간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사발면은 그 사이 좀 불어 있었다.


아무려나, 사발면은 너무너무 맛있었다. 불어서 더욱 부드러워진 면과 붉고 칼칼하고 느끼한 국물을 남김없이 비웠다. 그러나 어쩐지 뭔가를 잃어버린 듯 헛헛한 마음이 드는 건 나의 뇌리에 남아 있는 공양 비빔밥의 맛 때문이었을 것이다.


#관악산 #연주대 인증샷 #관악사 사발면 #공양 비빔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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