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방송통신대학교
지난 2월 28일 안양시청 별관 2층에서 ‘2025 학위전수식 및 2026 전기 신⸳ 편입생 오리엔테이션’이 있었다. 한국방송통신대학교(이하 방송대) 경기지역대학 안양시학습관 제52대 총학생회가 주최했으며 나는 안양시학습관 국어국문학과 4학년 재학생으로 행사를 돕기 위해 참가했다. 일반 대학교의 졸업식과 다른 점이 있다면 학생들이 모두 젊지 않다는 것이다. 대부분 쉰을 넘었으며 칠 팔십 대도 있다.
나는 지난해 미뤄 두었던 국어국문학 공부가 하고 싶어서 방송대 3학년으로 편입했다. 방송대에서 만난 학우들이 예상보다 고령인 것이 조금 놀라웠다. 30대 후반 무렵 편입을 했었지만 그만둘 수 없는 직장과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들이 있는 가정과 학업을 병행하기 어려워 한 학기를 채우지 못하고 포기한 경험이 있다. 그때는 방송대 학생들이 그렇게 나이가 많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했었다. 우리 사회 전체가 고령화되면서 방송대 학우들의 연령도 높아진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스터디 모임에 참가하면서 여러 학우들을 만날 기회를 가졌는데 의외의 사실을 알게 되었다. 대부분이 몇 개의 졸업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올해 예순이 된 이 ㅇㅇ 학우는 나이 쉰 즈음의 어느 날 갑자기 판사가 되고 싶었던 꿈이 생각나서 방송대 법학과 공부를 시작했는데 늦게 시작한 공부가 그렇게 재미있더란다. 그래서 졸업 후 바로 문화교양학과 3학년에 편입하여 졸업하였고 지난해 다시 국어국문학과 3학년에 편입했다. 올해 예순둘 된 ㅇㅇ 학우는 유아교육학과를 시작으로 관광경영학과를 졸업하고 국어국문학과 3학년에 편입했다. 올해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며 지난해 총학생회장이었던 전 ㅇㅇ 학우님은 올해 예순넷 되셨는데 졸업과 동시에 영어영문학과 3학년으로 다시 편입했다.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이나 학술대회나 각종 행사 후 뒤풀이 자리에서 자기소개를 할 때마다 늘 자신을 최고령이라고 소개하는 유 ㅇㅇ 학우님은 올해 일흔아홉 되셨다. 암기가 잘 안 되고 태블릿으로 보는 오프라인 시험을 보기 어려워 될 수 있으면 과제물 제출하는 과목을 선택한다는 유 학우님은 스터디 때마다 방송 강의를 들으면서 빼곡하게 기록한 노트를 가지고 오신다. 노트를 펼쳐 보이며 “방송강의를 몇 번이나 듣고 이렇게 열심히 했는데도 하나도 기억 안 나고 모르겠어... 도와줘... ”하며 엄살을 떨다가도 과제물 시험에서 대부분 A를 받았다고 은근히 자기 자랑도 하신다. 참고 도서로 읽어보라는 책을 읽다가 도저히 못 읽겠어서 몇 번이나 던져버렸지만 결국 끝까지 읽었다고도 하시고 이번 학기에는 ‘플라톤’과 ‘루소’의 책 중 선택해서 읽어야 하는데 뭐가 좀 쉬울지 우리에게 알려 달라고도 하셨다. 졸업 후 또 무슨 과 공부를 하고 싶다는 말이 오고 갈 때는 자신도 공부를 더 하고 싶은데 더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자신 없음을 드러내기도 한다.
지난 1월 방학특강으로 문화교양학부 이준석 교수의 ‘비극의 세계로 – 오이디푸스’ 특강이 있었다. 영하의 추위 속에서도 강의실은 꽉 차서 일부는 맨 뒤에 의자에만 앉아서 들어야 했다. 두 시간 가까운 특강은 매우 흥미로워 끝나는 시간이 아까울 정도였다.
강의 후 질문 시간이 주어졌다. 세 번째 질문자는 앞에서 두 번째 의자에 앉아 있는 학우였다. 뒷자리에서 얼핏 보아도 거의 여든은 넘어 보이는 남성이었다. 그런데 질문은 의외로 날카롭고 깊었다. 교수가 제대로 답을 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였다. 질문을 다 들은 교수의 첫 대답은 이랬다. “테바이 3부작을 다 읽으셨군요...” 노(老) 학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재빨리 폰을 열어 ‘테바이 3부작’을 입력해 보았다. ‘테바이 3부작은 테바이 왕가의 비극적인 운명을 다룬 세 편의 고대 그리스 비극을 말합니다. 극작가 소포클레스 작품으로 1. 오이디푸스 왕 2. 콜로노스와 오이디푸스 3. 안티고네입니다.’
나는 교수가 한 번쯤 읽어오기를 바란다고 추천해 준 책 ‘오이디푸스 왕’ 만을 겨우 읽어왔을 뿐이었다.
‘공부’라고 하면 우리는 먼저 시험과 스트레스를 떠올린다. 성적을 걱정하고 합격과 불합격에 마음을 졸이던 기억이 먼저 떠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공부는 늘 무언가를 얻기 위해 치르는 과정처럼 여겨지곤 했다.
그러나 노년에 시작한 방송대 공부는 조금 다르다. 물론 대학교 이므로 시험도 치러야 하고 일정한 학점도 취득해야 졸업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젊은 날의 공부처럼 돈을 벌기 위한 것도, 자격증을 취득하기 위한 것도, 더 나은 직장에 들어가기 위한 것도 아니다. 누가 시켜서 하는 공부, 해야만 해서 하는 공부가 아니다. 모든 책임과 의무에서 놓여난 노년, 시간은 많고 할 일은 없는 노년에 스스로 선택한 것이다.
그러므로 방송대학교에서 하는 공부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보편적인 공부라기보다 조금은 특별한 형태의 공부라고 할 수 있다. 무료한 삶을 풍요롭게 해 주는 즐거운 취미 같은 공부 말이다. 나뿐만 아니라 방송대학교에서 만난 노년의 학우들도 하나같이 즐겁게 공부하고 있다. 시험에 대한 부담과 스트레스를 말하면서도 얼굴에 묘한 자부심과 희열의 빛이 떠돈다. 공부가 이렇게 즐거워도 되나 싶을 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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