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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불량품들의 사계 Jun 25. 2024

불량품들의 사계

목포 사나이 태연 112

목포 사나이 태연



3

어느 날 한 친구가 목포역에서 택시를 탔다.

“시너바 신발 가게 가주세요.”

“아, 시너바 가세요?”

“네, 알아요?”

“알다마다요, 목포 사람들 다 알죠.”

“그래요?”

“그럼요. 좋은 일 많이허죠 친척들한테도 많이 베풀고요.”

그날 밤 친구가 택시 안에서 기사님이랑 주고받은 이야기를 했다. 그 말을 듣고 태연씨가 말했다.

“그래, 내가 처형 차도 주고 가게도 차려줬는데 말이야. 그 처형이 기도를 이상하게 하더라니까.”  

“어쭈고 말 했는디요?”

나는 젓가락을 들다 말고 말했다. 옆에 있던 친구들도 태연씨를 바라보았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저에게 어려움을 이겨내게 해주시고, 차와 가게를 주셔서 이 은혜 잊지 않겠습니다. 대충 이런 내용이었지.”

태연씨는 심각하게 말했다.

“끝까지 제부 고마워요 말이 안 나오더라니까. 차도 가게도 다 내가 줬는데 말이여?”

“아따, 처형이 잘못했네!”

우리는 모두 웃었다. 태연씨는 그래도 처형에게 고맙다는 말을 듣고 싶었던 것 같다.


태연씨는 지금도 전화할 때마다 내게 목포에 내려오라고 한다.

“얼른 오소. 가는 시간 아깝네.”

“우리는 염치가 없어 앞으로 목포 못 가겄소.”

“아따, 자네들이 오면 최선을 다 할라네.”

“최선을 다 허먼 더 안 갈라요.”

“각시 친구들한테 최선을 다해야지 누구한테 한단가.”

“아따 그 최선이 구신보다 무섭단께요. 먹다 죽어요, 죽어.”  

4

전남 해남군 화원면 매월리에 가면 구 등대가 있다. 목포에서 구 등대 가는 길에 봄이면 노란 유채꽃이 핀다. 유채꽃 뒤로 펼쳐진 바다에 석양이 내려앉는 절경은 황홀하다. 붉은 노을 위로 촘촘히 떠 있는 크고 작은 배들이 간격을 좁히며 집으로 돌아간다. 물거품을 내며 배 뒤를 따라가다 사라지는 물살은 내 눈과 귀를 순하게 해준다.

멀리 흩어진 섬들이 희미해져 가는 것을 볼 때 나의 두 손은 저절로 포개어지고, 노을이 사라진 밤바다에서 구 등대 불빛이 춤을 춘다. 그곳은 언제든지 탕아를 맞아주는 등대가 있다.


구 등대 옆에는 펜션이 있다. 펜션에 앉아있으면 크루즈를 타고 항해하는 것 같다. 펜션에서 바라본 일몰은 형언할 수 없다.

태연씨는 수년 전 등대 옆 이곳에 펜션을 지었다. 펜션을 짓게 된 동기가 있다. 태연씨가 인부들이랑 집을 짓기 위해 터를 고르고 있었다. 우연히 지나가던 사람이 태연씨에게 말했다.

“이렇게 아름다운 풍경을 혼자 보기 아까울 것 같소”

일 만들기 좋아한 태연씨 머리에 스파크가 튀었다.

‘맞다. 펜션이다.’

머릿속이 불꽃으로 가득 찬 태연씨, 한 줌 재가 되어도 온몸을 불꽃으로 태우리라. 누가(명희) 뭐라 해도 내 갈 길 간다. 일사천리 뚝딱뚝딱, 수영장 딸린 대형펜션 4채를 곧바로 지어버렸다. 가보면 안다. 바다랑 붙은 언덕에 집을 올려 앉혔다. 놀라울 따름이다. 정주영 회장도 살아 돌아와 이것을 보면 까무러칠 것이다.    

엄청 추운 날 태연씨에게 전화가 왔다.

“얼른 해남으로 와보소, 방 한 칸 줄텐 게. 여기 와서 글 쓰면서 살소.”

“옴매 방을 준다고요?”

나는 총알처럼 내려갔다. 해남에 도착하니 밤이었다. 펜션 뒤는 산이요 앞은 바다였다. 개미 새끼도 없었다. 오직 등대 불빛만 나를 향해 돌다가 시커먼 바다를 비추었다. 불빛 아래서 파도는 좌우로 출렁거리고 멀리서 새어나오는 희미한 불빛마저 나의 들뜬 마음을 주저앉혔다.  불빛은 외롭고 쓸쓸했다. 외달도라는 섬이었다. 외로움을 달래길 없다는 섬인가. 외로움을 달래준다는 섬인가.

“아따 여기서 살다가는 그나저나 추운 몸 외로워 죽어 불겄소.”

처음 그때는 그랬고 지금은 아니다. 적막강산 같았던 펜션 근처에 세컨하우스, 글램핑장이 생겼다. 석양과 등대를 보러 간 사람들로 펜션은 입소문이 났다.  

아따 이렇게 아름다운 곳을 알려주면 안 되는데, 나만 알고 있어야 하는데, 지금 뭔 짓을 한지 모르겠다. 그렇다고 글을 쓰는데 안 쓸 수 없고, 하여튼 이곳은 바다 수심이 깊어 유조선, 화물선, 크루즈 할 것 없이 수 없는 배들이 지나가는 곳이다.

얼마 전 목포에서 등대까지 가는 터널이 뚫렸다. 목포서 등대까지 가는 해안도로를 타면 금방 간다. 그래도 나는 구도로로 가는 게 훨씬 좋다. 구도로의 풍경을 따라가다 보면 고향 가는 길처럼 아득해진다. 구 등대 가는 부두에는 낚시꾼도 몰려든다. 나도 낚시를 했었는데 우럭 새끼 한 마리 잡고 막 내렸다.   

태연씨는 최근에 바다와 붙은 벼랑 끝에 펜션 한 채를 뚝딱 더 지었다. 가족과 친구들을 위해서 지은 것이란다. 펜션 3층에서 바라다보는 바다 건너 기지개를 켜는 섬들과 끝없는 바다를보면, 먹고 사는 일이 대체 무어란 말인가. 아 한량처럼 살고 싶다.  

“명희야 니가 나 멕에 살려라. 앞으로 나는 태연씨 막내딸 헐라니까. 명희야 나 앞으로 너를 엄마라고 부를란다.” 말을 하고 보니 좀 거시기하다.

밤이면 새어 나오는 외달도 불빛이 쓸쓸해 보여서 나는 좋다. 태연씨는 그 마음을 눈치챘다.

“내가 요트를 사서 외달도를 한 바퀴 데려다 줄랑께 기다려보소.”

“우와 진짜요?(우리 아빠 최고!)”

“내가 비싼 밥 먹고 뭐 할라고 헛소리 한단가.”

이때 명희 눈에서 레이저가 뿜어져 나오는게 보였다. 그 빛이 내 몸을 뚫었다. 때연씨만 불꽃이 튀는 줄 알았는데, 나는 명희 레이저를 맞고 사그라들었다. 명희는 태연씨가 일 늘리는 것 을 딱 질색팔색해 한다.


이곳은 태연씨가 태어나고 자란 곳이기도 한다. 펜션 맞은편 산 중턱에 외따로 집 한 채 있었다. 태연씨 생가였다. 지금은 흔적도 없다. 태연씨는 집에서 국민학교까지 왕복 8Km를 걸어서 다녔다. 닳아 찢어진 고무신을 세네끼로 묶어 신고 다녔다. 그야말로 호랑이가 담배 피고 어슬렁거렸던 시간, 소년태연은 다짐했다. “커서 꼭 돈을 벌어 부자 돼서 나 같은 사람 도와줄 거여.” 펜션에서 잡초만 무성한 그의 생가를 올려다보면 가슴이 뭉클하고 태연씨도 명희도 대단해 보인다.


아직도 할 말이 많아  다음편으로 계속 달립니다. 헛둘 헛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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