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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불량품들의 사계 Sep 24. 2024

불량품들의 사계

누룽지와 차비 137

누룽지와 차비 


    


‘지장물 조사반대 개발대책위원회’ 플래카드가 공터에서 펄럭거린다.

‘아따, 비가 싸게도 오네. 갈디도 마땅찮고 누룽지 배달이나 해야 쓰겄다.’ 빗속에 누룽지 배달하러 가다가 지난봄 일이 생각났다.   

  

나는 집에서 가까운 누룽지 회사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누룽지 여사장을 예전부터 알고 있었다. 9시부터 오후 2시까지 하기로 했는데 이틀 하다 잘렸다. ‘막일을 안 해 본 사람 같아서’라는 이유였다. 허리가 빳빳한 60대 후반 아줌마가 사장에게 말했다. 아줌마는 누룽지 회사 설립할 때부터 일했다. 팀장이었다.

     

누룽지 공장 생산라인에서 누룽지가 네모진 상자 안으로 눈코 뜰 새 없이 떨어진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면 이상한 기분이 든다. 누룽지가 상품으로 변해 가는 과정이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데서 생기는 이질감 때문이다. 네모진 상자 안으로 떨어진 누룽지를 먼저 빠른 속도로 골고루 펴 식힌다. 식힌 누룽지를 창문 쪽으로 옮겨 찬바람에 한 번 더 식힌다. 식힌 누룽지를 네모진 플라스틱 상자에 깨지지 않게 조심히 담아둔다. 다시 누룽지를 투명비닐봉지에 집어넣는다. 회사 마크는 틈틈이 비닐에 붙인다. 투명비닐봉지에 담은 누룽지를 종이 상자에 열 개씩 넣는다. 종이 상자를 박스 테이프로 붙여 사무실 출입문 쪽으로 옮겨 쌓아 놓는다.

그야말로 5시간 일하는 동안 점심 먹을 때 13분을 빼고 나머지는 서서 뛰어다녔다.

쌀값에 따라 그날그날 봉지에 담는 그램도 달라진다. 팀장이 비닐봉지에 850g이나 860g을 담으라고 지시했다. 정량을 담은 누룽지는 만원이다. 나는 슬쩍 5g에서 10g을 더 담았다. 깨진 것은 양을 더 담는데도 8천 원이다.

팀장은 여사장이 점심을 먹으라 해도 먹을 시간이 없다며 라인에서 나오는 누룽지를 쉴 새 없이 식혔다. 여사장이 배달 갔다 온다고 나가자 팀장은 밥을 먹으러 왔다. 얄미웠다. 물론 일은 달인이었다. 내가 사장이라도 팀장이 나를 자르라면 잘랐을 것이다.   

  

퇴근하고 집에서 창고를 치우고 있었다. 여사장한테 전화가 왔다.

“아침 7시부터 저녁까지 할 사람 뽑기로 했어요. 바쁠 때 다시 연락할게요.”

“네 그렇게 하세요.”

대답은 쉽게 했지만, 전화를 끊고 나니 기분이 묘했다. 나는 오후 두 시까지 하기로 하고 회사에 갔었다. 잘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막걸리를 마시면서 목포 명희에게 전화했다.

“너 백% 잘린 것 맞네.” 명희는 명쾌하게 답을 했다.

“니 말이 더 열받네. 너 같으면 이틀 일하고 어쭈고 일 잘하는지 알 것냐?”

나는 첫날 출근했을 때 의욕이 넘쳐 날아다녔다. 팀장이 일을 가르쳐주면 남보다 세 배속으로 해치웠다. 팀장이 “손 빠르네요” 했었다. 나는 그 말이 ‘너 짜를 거야’인 줄도 모르고 ‘더 빨리’를 속으로 외치면서 뛰어다녔다.


이튿날 출근해 다른 직원들보다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게 평균치로 일했다. 전날 일을 무리해 개 피곤했다. 나중에 안일이지만 일을 내가 너무 열심히 해 다른 사람도 나처럼 해야 하기에 내가 위험인물이 됐고, 또 하나는 팀장이 나를 함부로 대하지 못하겠다는 맘이 들은 거 같았다. 그렇다고 이틀 일 시키고 댕강 자르는 것은 부당하다는 생각 들었다.

나도 직원 데리고 일할 때 그들 맘 다치지 게하고 내보낸 적 있었는지 더듬거려 보았다.     


여사장 하고 며칠 있다 마주칠 일이 있었다. 조심스럽게 나에게 말을 했다.

“있잖아요, 산이 이모는 이런 일 못 할 거 같고 누룽지를 갖다 팔아 봐요.”

“생각해 볼 라요.”

나는 자존심이 이미 상해있어 그 자리서 대답하기가 곤란했다.

해가 내리쬐는 평상에 앉아 나는 지인들한테 “내가 누룽지를 팔아 볼라고 하는디 느그들은 어쭈고 생각허냐?” 전화로 여론 조사를 했다.

여사장한테 전화했다.

누룽지 파는 조건은 1, 원가공개 말 것(시장질서 교란) 2, 배달하지 말 것 (기름값 들어가고 누룽지 사준 사람 밥 사주면 남는 게 없어 돌아올 때 괜히 열받음) 3, 깎아주지 말 것(나중에 누구는 깎아주고 누구는 다 받는다고 서로 말하다 보면 섭섭한 사람이 생기고 싸움 나니 차라리 한 개 서비스 줄 것)

     

누룽지 열 봉지를 싣고 하남 아랫배알미동으로 가는 그날도 플래카드가 찢어지게 비가 내렸다. 벚꽃이 비바람에 속수무책 떨어졌다. 배달 간 곳은 ‘미카엘라 카페’였다.

여기는 버스가 다니지 않아 차가 없으면 올 수 없는 곳이다. 나는 어지간한 비에는 우산을 쓰지 않는다. 오늘은 우산을 차에서 꺼내 폈다. 비바람이 워낙 세게 내리쳐 우산이 뒤집어졌다.

누룽지 배달이 끝나고 카페주인이 대금 이체를 하던 참이었다. 우비를 입었지만, 흠뻑 젖은 남자가 카페 문을 열고 들어왔다.

“여기 버스 정류장이 어디입니까?”

“여기는 버스가 안 다녀요.”

카페주인이 말했다.

“예? 큰일 났네. 비가 와 앞이 안 보여 잘못 내려왔구나.”     

나는 고개를 돌려 인상을 훑어보았다. 남자는 비를 맞아 초췌해 보였다. 나는 잠깐 고민했다.

“아저씨, 어디까지 가요?”

“하남시청까지 가서 갈아타면 돼요.”

“그럼 제 차로 갑시다. 어차피 나도 그쪽으로 간께. 쫌만 돌면 되겄지요.”

“아이고 고맙습니다. 커피 한 잔 드시지요.”

“아, 그럴까요? 차비조로? 아저씨 맘도 편허고.”

“네, 그럼 저도 팜 편히 타고 갈 수 있으니까요.”

“사장님, 지는 커피 마시면 잠을 못 잔께 구기자차로.”

마침 주인한테 차를 한잔 팔아줘야 하나 생각하던 참이었다. 배달 끝내고 강아지 산이랑 빗속을 달렸던 양평 길을 돌려고 했었는데 포기했다.

카페 앞으로 또 한 남자가 비를 철철 맞고 용감하게 걸어가고 있다.

“아따, 어쩌까! 저분도 버스정류장 찾아가는 모양인디 큰일 났네.”

나는 걱정을 하면서 일단 차를 타고 출발했다. 그 남자는 벌써 삼십 미터쯤 앞서 걷고 있었다. 나는 유리창을 열고 말했다.

“아저씨, 용감하시네. 어디 가세요?”

“하남시청요”

“여기 버스 안 다녀요. 일단 차에 타세요.”

비가 차 안으로 들어와 재촉했다. 다행히 시청 앞에서 두 분 다 내려주면 되었다.  

나는 눈을 부릅뜨고 운전대를 잡고 달리고 있었다. 나중에 탄 남자가 뒷자리에서 말을 꺼냈다.

“누룽지 파는가 봐요?”

“네, 알바허요.”

“저도 서부농협 앞 버스정유소에서 노점 해요.”

“아! 그러세요.”

“저 못 봤어요?”

“못 봤는디요.”

“거기 오시면 남편 바지 하나 주께요.”

“남편...아 예.”     

시청 앞에 도착했다. 나중에 탄 뒷좌석 남자가 만 원짜리 하나를 내 앞으로 던졌다.

“차비예요. 꼭 들리세요. 남편 바지 하나 줄게요.”

“아저씨, 그럼 누룽지 하나 갖고 내리세요.”

나는 뒤를 돌아보았다.

“아따, 물건 볼 줄 아시네.”

8천 원짜리 깨진 것 말고 만 원짜리 정품을 갖고 내렸다. 요즈음 경기가 안 좋아 바지 한 장도 힘들게 팔 텐데, 만원이면 재래시장 가면 통닭 한 마리 값인데. 나는 깨진 것이든 정품이든 남자가 누룽지를 들고 내려 다행이었다.    

 

집에 와서 키득키득 웃다가 갈현동에 사는 정례에게 오늘 일을 전화로 말했다. 정례는 20년 만에 나타난 시골 친구다.

“나중에 농협 앞에 가먼 그 남자 음료수 사다 줄라고.”

“그 사람이 너보다 나을 수 있어!”

“그래도 만 원 던져준 그 맘이 어디여.”

“그 사람은 세가 나가니? 세금이 나가니? 집에 가면 마누라도 자식도 있을 수 있고 아무것도 없는 너는 아직도 정신 못 차렸네. 너는 그래서 가난하게 산다고.”

정례는 경제를 갱제로 알아듣는 나에게 잔소리를 계속하였다.

그사이 비는 더 굵어졌다. 밧줄 같은 비는 비닐 연탄창고와 호두나무이파리를 세차게 때렸다. 그 소리는 프라이팬에 콩 볶는 소리요. 신문 뒤적이는 소리 같았다. 빗소리와 전화 속 친구 말이 뒤섞여 잘 들리지 않았다. 내가 대답이 없자 정례는 큰 소리로 말했다.

“듣고 있냐?”

“나 오줌 싸겄다야 끊어야 쓰겄어.”

나는 좋은 기분을 깨고 싶지 않았다. 비는 좀처럼 그칠 기미가 없었다.    

 

며칠 뒤 서부농협 앞에서 마을버스를 갈아타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다. 정류장에서 3m쯤 떨어진 곳에 옷을 실은 트럭이 서 있다. 행거에 옷이 걸려 있었다. 몇몇은 옷걸이 걸린 옷들이 트럭에서 걸린 채 햇빛을 받고 있었다. 트럭을 분 순간 ‘없는 남편’ 바지 준다는 아저씨가 생각이 났다.

트럭 옆으로 걸어가는데 그 아저씨가 접이식 의자에 앉아 있다. 그는 나를 알아보고 일어나 반갑게 웃었다. 서로 인사도 다 하기 전 마을버스가 왔다. 나는 많이 파시라고 하고 얼떨결에 버스를 탔다. 버스 안에서 음료수가 생각났다. 그도 나에게 바지를 주지 못했다.

    

그 후 또 얼마 지나 나는 저녁때 개천 앞을 지나게 되었다. 개천가 벚꽃 아래 트럭이 주차돼 있었다. 트럭 옆에는 항공정비사 옷 같은 점프슈트와 몸빼와 밀리터리룩이 걸려 있었다.

아저씨는 트럭 옆 접이식 의자에 앉아 졸고 있었다. 벚꽃이 트럭 위로 휘날리고 있었다.

내가 지나가면서 아저씨를 불렀으나 그는 생깠다. 그 후에도 몇 차례 아는 척을 했으나 아저씨는 먼 산만 쳐다보았다. 혹시 바지 준다고 했던 말이 빈말이었나. ‘내가 자기를 좋아한다고 생각하나’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그러든가 말든가 나는 트럭 옆을 지날 때마다 손을 흔들며 ‘아저씨! 많이 팔았어요?’ 하며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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