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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불량품들의 사계 Nov 18. 2024

불량품들의 사계

나는 줄 밖에 서 있었다 151

나는 줄 밖에 서 있



1

식당 앞에 사람들이 줄지어 서 있다. 궁금했지만,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 입으로 들어갔는지 코로 들어갔는지 모르고 먹는 것보다는 낫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생각해 보면 계절마다 기다리는 줄은 끊이지 않았다. 봄에는 꽃구경, 여름에는 휴가, 가을에는 단풍놀이, 겨울에는 스키장 사계절 내내 사람들은 줄을 선다. 언젠가 나는 붐비는 고속도로 휴게실 화장실 앞에서 몸을 꼬며  서서 생각했다. 줄을 서는 이유도 다양했다.       


식당 앞에 서 있는 줄은 그래도 행복한 줄이다. 월세 내기 위해 대출을 받으려고 서 있는 자영업자들 줄은 갈수록 늘어만 가고 있다.

가로세로 얽히고설킨 줄들이 뒤덮어 버린 세상, 정작 나는 언제나 줄밖에 서 있었다. 그것은 ‘나의 가오이고 존심’이었다. 결국은 가게에서 쫓겨났지만 말이다.

고개를 들 때마다 시간은 초고속으로 날아간다. 불경기는 자영업자들을 알 수 없는 늪으로 몰고 간다.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자영업자들의 현장은 더 팍팍해졌다. 자영업자들은 문 닫을 시간이 되기도 전에 셔터를 내리고 대리운전을 나간다.  

   

나는 평상에 앉아 마당에 땅콩을 던졌다. 땅콩을 먹기 위해 나뭇가지에서 물까치가 내려와 앉았다. 먹이를 물고 날아오르려는 순간, 등을 둥글게 움츠리고 앉아 있던 고양이가 새를 겨냥하고 뛰어올랐다. 찰나, 고양이가 물까치의 목덜미를 낚아챘다. 나는 발을 굴리며 쫓아가 고양이 발톱에 잡힌 물까치를 잡아당겼다. 물까치는 눈을 감아버렸다.    

 

지난봄 파산선고를 하러 가는 길이었다. 길에 빈 깡통을 걷어차며 눈앞을 가득 메꾼 벚꽃무더기에 욕을 했었다. 길가에 뭉쳐져 있는 꽃이 그냥 미웠다. 욕을 한다고 떨어질 꽃이 아닌데 는 파산을 결정한 자신 대신 죄 없는 꽃에 욕을 퍼부었다.   

누구의 말처럼 봄은 잔인한 계절이다. 내가 파산을 하든 말든 봄은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피워내” 듯 천지사방 꽃을 불러내고 있었다. 나는 정신없이 꽃을 헤집고 다녔다. 내가 살아야 할 이유가 거기 있는 것처럼. 급기야 산 밑 이곳으로 이사를 왔다.

그렇게 구름은 흘러가고 사는 일의 중독도 이어졌다. 산을 오른 지 얼마나 지났을까. 닳은 운동화 뒷굽 탓인지 몸이 가벼워졌다. 하지만 무엇이 변했는지 확실치 않았다. 마당까지 내려와 호두를 쪼아대는 물까치 눈이 내 눈만큼이나 빨갛다는 것이 위로를 준다는 사실 정도다.   

  

2

북문 올라가는 길에 단골 토박이 백숙 식당이 있다. 이곳으로 이사 오기 전부터 식당 부부와 친해졌다. 주인은 지난여름 가게 문 입구 위에 파이프를 설치해 10cm 간격으로 구멍을 뚫어 물이 아래로 떨어지게 했다. 손님유치를 위한 수단이었다.

산에 오르다 식당 안과 바깥을 들러 봐도 손님 한 팀 없었다. 기온이 내려가서일까, 텅 빈 주차장에 야광 형광봉만 의자에서 반짝거렸다. 사장님은 알타리를 담고 있었다. 사장님은 나에게 “산은 무슨 산이여” 말했다. 나는 의자에 눌러앉았다. 몇몇 주민들을 불러 삽살을 구우며 사람들에게 소주를 따랐다. 사모님은 알타리와 부족한 반찬을 내왔다. 술잔을 비운 이웃집 아저씨가 사모님 앞치마 주머니에 지폐를 찔러줬다

우리는 폭탄주를 돌렸다.

“한겨울 빼고 지금처럼 손님이 없는 것은 처음 봐요.” 사장님이 말했다.


 이왕 말 한 김에 지나간 일이지만 한 가지 더 말을 하겠다.

광화문 광장에서 촛불 집회를 할 때다. 친구들은 나보고 집회에 안 나온다고 투덜거렸다. 가게가 그렇게 중요하냐고 난리들이었다.

“내 대신 문 열어주먼 나가께.”

“지금, 가게가 문제냐.”

나는 말했다.

‘하늘 무너진 것도 아닌디.’

나는 가게 문 닫고 광화문엔 못 간다고 말했다. 거기 갈 시간에 문을 열어 월세를 내야 했다. 월세가 밀리면 주인한테 볶여 견딜 수가 없었다. 주인한테 시달리다 엄마 부조금으로 월세를 낸 적도 있었다.     


 나도 광장에 나가고 싶은 마음이야 굴뚝같았다. 요즈음 같으면 어차피 쫓겨날 것, 차라리 광화문이나 갔으면 속이라도 시원하지 않았을까. 하지만 똑같은 상황이 다시 온다고 해도 나는 가게 문을 열 것이다. 그때 서 있던 자리가 내겐 광화문이었다. 직접 생존이 걸려 있는 그 순간이 내겐 먹고사는 현장이었다. 나는 그 현장을 벗어날 수 없었다.

 코로나 끝난 지도 한참 지났는데 자영업자들 폐업은 오히려 늘고 있다. 마스크를 사기 위해 줄을 섰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사람들은 대출을 받기 위해 또 줄을 서 있다. 아직 은행직원 얼굴도 못 본 사람들의 흐릿한 어깨 위로 서리가 내리고 있다. 하지만 꽃들은 다시 한번 그들 곁으로 돌아온다.

마당 가 해당화가 다시 피고 잎이 떨어졌던 자리에 호두나무잎이 새로 돋고 앞산은 붉게 물들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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