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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량품들의 사계

장어의 국적 222

by 불량품들의 사계

장어 국적


날마다 그 말이 그 말, 잔소리처럼 들리는 뉴스. 즐거운 뉴스를 봐도 즐겁지 않은 날들인데 정말 저들은 국민만 보고 가는 거 맞을까. 회중에 제일 질기고 맛없는 국회.

열받으면 식욕이 증가한다는 속설 때문일까? 뉴스를 보는데 갑자기 풍천장어가 떠오른다.

봄에 민물을 찾아 올라올 때 잡히는 것을 오름 장어, 가을에 산란하기 위해 내려갈 때 잡는 것을 내림 장어라고 부른다고 한다, 고창 풍천장어는 살이 통통 오른 가을 장어인 셈이다.

흑산도에 유배당해 ‘자산어보’를 쓴 정약전은 ‘장어는 맛이 달콤하면 사람에게 이롭다. 설사하는 사람은 죽을 끓여 먹으면 이내 낫는다’고 소개했다고 한다. 그 근엄한 성리학자가 철학적 논구 대신 육지 너머 아득한 바닷가에서 물고기들을 살피고 그 생태를 찬찬히 기록했다니 참 파격적인 인물이다. 그에게 조선은 아니 성리학은 얼마나 무거운 바다였을까.


풍천장어로 유명한 고창에서는 민물장어를 잡을 때 어른 주먹만 한 돌부터 40kg 넘는 돌까지 200여 개를 쌓아 올려놓고 일종의 둑을 만들어 장어를 잡는다고 한다. 야행성인 장어가 낮에는 돌 틈에 몸을 숨기며 지내다가 밤에는 나와 먹이를 잡아먹는 습성을 이용해 잡는 것이라고 한다.

풍천장어는 복분자와 함께 정력에 좋다는 대표적인 음식이다. 선운사 밑 식당들이 풍천장어를 파는데 풍천은 선운사 앞을 흘러 서해의 동호로 빠져나가는 장수강의 일부를 말하는 이름이다.

풍천장어는 필리핀 인근 수심 300m의 바다에서 부화한 실뱀장어가 수개월간 해류를 타고 올라와 밀물 때 고창 장수천까지 들어오는 것이라고 한다. 결국 풍천장어의 국적을 고창이라 하는 것도 우습고 ‘우리의 고유한 것’이라고 우기는 것도 어줍지 않다.

하기야 자연의 어디에 인간의 경계가 있으며 군사분계선이 있을까.


얼마 전 흑산도 홍어도 대청도 근처에서 놀다가 가을이 되면 따뜻한 흑산도로 내려와 겨울을 난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면 홍어도 대청도 산이라고 해야 할지 흑산도 산이라고 해야 할지 참 헷갈린다.

땅은 그렇다 쳐도 하늘이나 물밑에서도 온전히 자유로울 수 있는 것들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몇 년 전 북방 한계선(NLL) 인근 소연평도 앞바다에서 실종됐던 해양수산부 공무원 A 씨가 황해남도 등산곶 인근 해상에서 북한 순시선에 발견됐다고 했다. 북한군은 A 씨를 배에 태우지도 않은 채 월북 경위를 취조하고 6시간 뒤 총을 쏴 살해했다. 북한은 시신에 기름을 붓고 불에 태웠다고 했다.


왜 그 끔찍한 뉴스가 생각나면 장어, 홍어가 오버 랩 되는 걸까. 바다를 헤엄쳐 고창까지 올라오는 필리핀의 장어와 대청도 인근에서 겨울을 나기 위해 흑산도까지 내려가는 홍어, 바닷속 어류만도 못한 남북의 인간들 우리는 무엇일까. 여의도 뉴스를 보다 너무 멀리 와버린 것 같다.

이제 비도 그만 왔으면, 김장배추 속이 좋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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