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불량품들의 사계

당일치기하는 마음 224

by 불량품들의 사계

당일치기하는 마음



“벌써 가려고?”

“바빠서요”

“자고 간다고 했잖아!”

“가야 할 것 같아요.”

어두워지자 집에 가고 싶었다. 반겨줄 얼굴이 있는 것도 아닌데.

음성에 사는 시인 언니네 집에 땅콩을 캐러 갔다. 일손이 부족해 96세 시어머니도 아침 7시부터 수백 평 되는 밭에 앉자 해가 질 때까지 땅콩을 캔다. 거룩해 보였다. 그래서 춥기 전에 캐야 한다. 집에 가겠다고 서두르는 게 미안했다.

바쁘다는 게 거짓말 같지만, 거짓말이 아니다. 물론 내 집하고 숙인 언니네 하고 비하면 잽도 안되지만, 당일치기해야 맘이 편할 것 같았다.

시골은 계절마다 할 일이 있다. 서리가 내리면 마당에 낙엽 쓸다 허리 휜다. 작물 수확이 끝나면 무와 김장배추에 햇빛 가릴까 봐 고춧대, 토마토, 가지 줄기도 뽑아야 한다. 아직도 멀쩡히 꽃피고 있어 뽑기가 그래서 그냥 두었다. 집에 있을 때 뽑으면 되는 데 멀리 나와 있으니 손톱 밑에 가시처럼 자꾸 생각난다.


서두르는 마음은 또 있다. 강아지 산 이가 살아있을 때는 출발할 때부터 일찍 집에 오자고 일행들한테 말했다. 항상 집에 간다는 말을 도착해서부터 했다. 산 이 가고 난 뒤로 마음 편하게 돌아다닐 것 같았는데 집에 치울 게 왜 그리 많은지. 창고 정리, 호두 말려야 하고, 열무. 상추 서리 맞을까 저녁에 덮었던 천 해 뜨면 걷어야 한다. 시시티브이를 들여다보면 처마 밑 사료를 까치와 까마귀들이 먹어버린다. 복만이는 종일 굶고 낙엽 위에 엎드려 나를 기다리고 있다. 닭 모이도 줘야 하고. 밭도 한 바퀴 둘러봐야 하고 소소하게 할 게 많다. 다 내가 할 것이다!. 내 휘하에 있어 내 손으로 해야 한다.

차 소리를 듣고 복만이가 어둠 속을 달려온다. 차에서 내리자 내 무릎까지 펄떡펄떡 뛰어올랐다. 꽃님이는 마당 입구에 앉아 있다. 밭에 천을 덮고 나니 딱히 할 게 없다. 복만, 꽃님이 밥 주고 마당에 돌아다닌 쓰레기 주워 버렸다.


밤이슬이 차다. 꽃님이는 이불 위에 앉아 털을 고르고 있다.

복만이는 집으로 들어오라고 문을 열어놔도 굳이 사양한다. 보일러실에 종이박스를 깔아줬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