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아파트 생활의 시작
나의 서울생활은 대학생이 되던 2000년에 시작되었다. 실제로 서울 땅을 밟아본 것도 대학 합격 후 신체검사를 받으러 온다고 온 게 처음이었으니, 흔히 말하는 '촌놈 중의 상촌놈'이었다. 그렇게 시작한 서울생활은 하숙, 기숙사, 자취 등으로 연결되었으며, 결혼하기 전까진 아파트에서 살아본 적도 없다.
아파트라고 하니 생각나는 일화가 하나 있다. 예전에 어디선가 들은 얘기인데, 남아공에 가면 흑백 인종차별이 워낙 심한데다 빈부격차까지 더해져 사회갈등이 매우 심하다고 한다. 근데 그걸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상징이 길 하나를 두고 한쪽은 부유층이 사는 깔끔한 주거지역이고 반대편에는 슬럼이 형성되어 있다는 것이라고 했다. 근데 이 이야기를 그냥 웃어넘길 수 없는 게 결혼하기 전에 거의 10년 가까이 자취한 곳 중 하나가 딱 그런 곳이었다. 내가 사는 곳은 재개발이 추진 되는 곳의 가장 꼭대기에 있는 빌라였고, 그 뒤로 도로가 있었는데 그 도로를 건너면 신축 아파트였던 흑석 푸르지오가 있었다. 그 아파트 상가에서 라면도 사고, 택배도 보내고, 이가 아플 땐 치과도 가곤 했다. 그런데 거의 회사 생활을 10년 가까이 했지만 그 아파트에 사는 것은 꿈도 못 꿨다. 그러다가 결혼할 때 즈음 깨끗한 빌라가 있는 상도동으로 이사해서 투룸 신축에서 신혼을 시작했다. 신축이라고는 하지만 결국 빌라였고, 결혼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내가 임신을 하게 되어 아내의 요청으로 아파트로 이사를 했는데, 그게 내 생애 첫 아파트 생활의 시작이었다.
내 첫 아파트를 어떻게 정했는지도 지금 생각해보면 참 웃기긴 하다. 당시 나는 3호선 충무로역에서 근무하고 있었고, 아내는 6호선 DMC역에서 근무를 하고 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아내가 서울역 앞에서 근무하다가 상암동으로 회사를 옮기게 되어 어쩔 수 없이 상도동 생활을 정리해야 했다. 원래는 상도동 근처에서 아파트를 알아보려고 하다가, 급하게 아내 회사 근처로 알아보게 된 것이다. 그런데 나는 늘 동작국에서만 살았고, 아내 역시 과천에서만 살았던터라 서울 지리에 대해 모르는 건 매한가지였다. 그래서 우리는 네이버 지하철지도를 보면서 3호선과 6호선이 만나는 곳이 어딘지를 봤는데, 불광역과 연신내역 등이 보였다. 그런데 검색을 하다 보니 독바위역에 있는 아파트가 보였고, 바로 부동산에 전화를 해서 매울을 보러 가겠다고 하고는 처음 본 그 매물을 바로 전세계약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그 때 역시 제대로 부동산에 대한 개념이 없었던지라 매매가가 4억인 25평 아파트를 3억 5천 전세로 들어갔다. 당시 워낙 매매-전세간 갭(gap)이 작고 금리도 높지 않았던 때라 그냥 사도 되는 때였는데 빚을 크게 지기 싫어서 전세를 택했다. 물론 이게 나중에 잘못된 선택임을 알게 되었지만. 그렇게 우리는 전세를 시작했다. 막상 이사를 오니 집이 사고 싶어서 한참을 해당 단지에서 매물을 찾았다. 근데 막상 괜찮은 물건은 4억 7천까지 달라고 해서 마음을 접었다. 나중에 생각하면 그것도 그냥 살 걸 그랬다 싶긴 했지만 말이다.
그렇게 그 아파트에서 살면서 채 6개월이 지나지 않아 아내가 아이를 임신하게 되었고, 무사히 출산까지 하게 됐다. 그런데 그 아파트가 북한산 아래 오르막에 지어진 아파트라 와이프가 유모차를 끄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 애가 있기 전에는 전혀 불편함을 느끼지 못했는데, 애가 생기고 나니 알게된 불편한 점이었다. 게다가 독바위역 앞에는 변변찮은 소아과 하나 없어서 늘 택시를 타고 불광역까지 가서 소아과 진료를 봐야 했다. 그래서 아내가 너무 힘드니 제발 평지로 이사를 갔으면 좋겠다고 계속해서 얘기를 했다. 사실 아직 2년도 안 됐는데 또 어디로 가야 하나 고민을 하던 와중에 아들의 100일 잔칫날이 되었다. 100일 잔치에 참석하려고 어머니께서 상경을 했고, 어머니를 모시러 서울역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불광역 앞에 있는 아파트 상가의 부동산에 잠시 정차했다. 그리고 들어가서 물어봤다.
"혹시 집 있어요?"
그랬더니, 마침 빈 집이 하나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는 세입자도 나가서 빈 집이라고 했다. 그래서 부동산에는 잠시 있다가 다시 오겠다고 하고 다시 차를 몰고 집으로 갔다. 그러곤 어머니께 잠시 현우를 봐다라고 하고는 아내를 태우고 다시 그 부동산으로 갔다. 부동산에서는 최근 들어 계속 거래가 없었는지 우리 부부를 반겼다. 그러고는 그 빈집 주인에게 전화해보더니 다시 내게 그 집은 안 된다고 했다. 그러더니 다른 집도 있는데 보겠냐고 해서 좋다고 하곤 아내와 같이 그 집을 보러 갔다. 그 집에 살고 있던 주인내외가 워낙 집을 깨끗하게 쓴데다 그림 그리는 아들이 있어서인지 집에 그림도 많이 걸려 있었는데 그 모습이 좋아서 만족하고 나왔다. 당시 매매가가 6억 3천이었는데, 부동산에 얘기해서 천만원만 깎아 달라고 주인분께 요청해달라고 했다. 그랬는데 천만원 까지는 안 되고, 800만원 깎아준다고 해서 바로 가계약금 300만원을 보내고 계약을 하게 되었는데 그게 바로 지금 살고 있는 이 집이다.
그런데 당시 독바위 아파트가 전세기간이 남아 있었기에 계약한 아파트에 바로 입주할 수는 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계약기간 안 채우고 나와도 되는데 굳이 그걸 바로 안 들어온 나도 참 바보같기는 하다. 게다가 부동산에서는 어짜피 갭(gap)이 1억인데, 한 채 더 사라고 권하는데도 사지 않았는데 그것도 지금 생각해보면 참 바보같다. 암튼 독바위 아파트 계약기간 만료를 앞두고 아내가 복직을 하게 되었는데 복직하게 되면 도저히 둘이서 애를 키우기는 어려울 것 같다고 아내가 처가 근처로 이사를 하길 원했다. 그래서 결국 인덕원에 있는 처가 근처로 다시 이사를 했다. 그리고 거기서 2년을 살고 나서 다시 미리 사둔 아파트로 다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