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아침 출근길 검은 고양이가 달려 지나갔다. 이 동네에서 고양이가 뛰어가는 걸 본 적은 별로 없다. 검은 고양이는 예로부터 불길한 상징이기도 하다. 그 뒤를 어느 자전거를 탄 사내가 쫓는다. 그냥 뒤따르는 걸지도 모르겠다. 우연히 길이 같을 뿐인데 나 혼자 지레짐작한 것이거나 고양이도 오해에서 기인한 두려움에 내달렸는지도 모른다. 왜, 그런 일 있지 않은가. 으슥한 골목길에서 그저 길이 같은 것뿐인데 발걸음이 빨라진다거나. 징크스도 같은 방식으로 작동한다. 그냥 그때 눈에 띈 어떤 사물이나 우연한 행동이 어떤 특정한 결과를 가져왔다고 믿는 것이다. 그 믿음을 강화하는 것은 뚜렷한 인과관계가 없는 것을 못 견디는 인간의 정신이다. 어쩌면 저 자전거를 탄 사내는 그저 출근 중이었을지 모른다. 야간 근무 후 퇴근길일지도, 혹은, 그럴 가능성은 적지만 그저 아침에 자전거를 타는 게 취미인 인간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의 불안이 해소되지 않는 이유는 만에 하나라는 가정이다. 만에 하나 정말 나를 쫓아오는 거라면? 만에 하나 정말 내게 불운, 혹은 파멸을 가져다준다면? 조심해서 나쁠 것 없지 않은가.
비가 내려 우산을 썼다. 오늘 출근하지 말까? 관념 속의 빗줄기는 수직으로 떨어지지만 실제로는 바람 때문에 사선으로 혹은 수평으로 날아오기도 한다. 오늘은 수평으로 휘날리는 그런 날이다. 고대 로마의 방패병처럼 우산을 들고 스치는 화살에 신경질을 내며 한발 한 발 내디딘다. 8시까지 작전지역에 위치하라는 계약서에 적힌 명령에 따라. 그러다 바람이 어느 임계치를 넘어선 강도로 우산의 반대편을 가격하면 우산은 뒤집혀 기능을 잃는다. 게다가 우스운 꼴이 된다. 아마 우산을 만든 사람은 바람이 이 정도 불 거라 예상하고 만들진 않았을 것이다. 항상 최악을 염두하고 만드는 것은 비효율적인 디자인이다. 재료가 많이 들어 무게가 늘어나 들고 다니기 힘들 것이고, 염두에 둔 최악의 상황은 아주 드물게 겪을 것이므로 낭비다. '만에 하나'는 제 아무리 강한 바람에도 뒤집히지 않는 우산과 같다. 무겁고 대체로 불필요하다.
결국 명령에 못 이겨 출근을 하고 말았다. 원래부터 담이 큰 사람은 아니었다. "어머, 김대리 우산 망가졌네? 내 거 하나 줄까? 비싼 거야." 나에게만 친절한 최 과장님. 들고 온 우산의 우산살이 가동범위를 한참 벗어나 꺾여 있었다. 꺾인 우산살이 깃발처럼 펄럭였다. "감사합니다." 베풀 때 받아서 나쁠 건 없지.
답답하다. 최소 10시간은 갇혀있을 생각을 하니 가슴이 죄여온다. 출근은 무슨 일이 있어도 제 때 하라면서 왜 퇴근은 제 때 하면 죄가 될까? 오늘은 칼퇴근하고 말겠다고 다짐해 본다. 좀처럼 이룰 수 없어 매일 하는 다짐. 오늘도 박 부장이 방해하면 그냥 걷어차버리고 퇴사를 해야겠다. 6시다. 가방을 챙기고 앉은 채로 의자를 살짝 뒤로 밀었다. "김 대리, 벌써 퇴근하려고?" 박 부장이다. "이거 내일 아침에 볼 자료인데 정리 좀 해와요." "네, 알겠습니다." 목줄을 잡아끌면 끌려가는 개처럼 반사적으로 대답했다. "그래요. 먼저 들어갈게요. 수고들 해요."
별것 아닌 자료들. 의미는 없지만 양만 많은. 요즘 준비 중인 대규모 할인행사 홍보를 위한 것들이다. 철 지난 유행, 그다지 쓸모없는 내용을 추려내다 보니 남는 게 없다. 결국 직접 자료를 조사해서 첨부하고 있다. 이건 정리가 아니라, 그냥 내가 조사부터 다 하는 거잖아. 내일 출근하면 따져야겠다. 부당한 초과근무라고. 워라밸을 보장하라고. 지는 칼퇴근 하면서. 개새끼. 어느새 새벽이다. 퇴근길 컵라면에 삼각김밥을 사다가 집에 들어간다. 아침에 본 고양이가 서 있다. "야옹" 야옹은 사람한테만 하는 거라던데. 나한테 말 거는 건가? 다시 발걸음을 옮긴다. 그나저나 그냥 이 동네 고양이구나. 역시 별거 아니었다.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누군가에게 불운의 상징인 양 퍼포먼스를 하지만 실제로는 그냥 흔한 고양이였던 것이다. 고양이가 뛰어다니는 일이 뭐 대단하다고. 아침부터 폭풍을 뚫고 가 새벽이 다 되어 돌아왔지만 별로 해낸 건 없는, 그런 처지인 것이다.
"김 대리, 수고했어. 잘 정리했네. 어제 준 자료들이 도움이 됐지?” "네." 이 거지 같은 대화를 빨리 끝내고 싶다. "어제 몇 시에 들어갔어? 자료 정리 하나 하는데 밤새고 그런 거 아니지?" "아닙니다. 금방 들어갔습니다." 솔직히 말한다고 바뀔 사람도 아니고. "역시 유능해 김 대리. 가서 볼일 봐." 유능은. 유능했으면 여기서 이러고 있겠냐. 고양이가 차라리 불행을 가져다줬다면. 차 사고라도 나서 출근을 못해버렸다면 좋았을 텐데. 저 개새끼를 어떻게 처리하지. 보내버릴 건수 없나. 돌연 김 대리는 병가 낼 핑계는 없는지 몸 이곳저곳을 살폈다. 갤럭시워치 심박수 체크도 해본다. 72 bpm. 정상. 이렇게나 스트레스를 받는데 몸뚱이는 어떻게 건강할까? 그래도 오늘은 다행히 제때 퇴근했다. 출퇴근만 반복하다 보니 별의별 잡생각이 든다.
어릴 적엔 나도 꿈이 있었다. 우주비행사. 장래 희망을 무조건 적어내라 하는 초등학교, 아니 유치원부터의 강박적 교육은 내게 어림도 없는 꿈을 꾸게 했다. 우주비행사. 우주에 산소가 없다는 것도, 온갖 해로운 방사선 천지란 것도, 빛도 없다는 것도, 마음껏 떠다니기보다는 떠돌면 미아가 된다는 것도 몰랐던 나에게 우주는 매력적인 공간이었다. 미지의 세계. 그곳을 비행하는 사람. 그 뒤로 매년 장래 희망에 우주비행사를 적어 냈다. 초등학교 5학년 장래 희망에 우주비행사를 적었을 때는 선생님께 '네가 애냐?'는 꾸지람을 들었다. 친구들이 적은 답들을 보면서 깨달았다. 아, 장래 희망란은 꿈을 적는 곳이 아니구나. 그 뒤로 그냥 부자라고 적었다. 지금 보니 그때도 배운 게 없었구나 싶다. 그렇다. 자본의 언어는 배웠지만 자본의 현실을 배우지 못한 것이다. 그 죄로 나는 노예 형벌을 받고 있다. 이딴 쓰레기 같은 세상. 망해버렸으면.
"정말?" 내 앞엔 그 고양이가 서 있다. "뭐야, 고양이가 말을 하네?" "정말 세상이 망하면 좋겠어?" 내가 미친 건가? 아니면 아침에 본 게 헛것이 아니었나? 그 자전거는 진짜 이 고양이를 쫓았던 건가? "맞아. 날 쫓던 거야. 내가 뭘 가져갔거든." 고양이가 속마음을 읽네? "나한테는 다 들려." 등줄기에 식은땀이 흘렀다. "너, 너는 누구야?" "누굴까?" 마녀나 악마 같은 건가? 세상이 망하면 좋겠냐고는 왜 물어본 걸까? "네가 한 말이잖아. 세상이 망하면 좋겠다고." 사실 세상이 망하길 바라는 건 아니다. 이 넓은 세상에 내 발 뻗을 자리는 없는 게 불만일 뿐이다. "그럼, 세상 말고 뭘 없애줄까? 박 부장?" 그래. 박 부장 좋다. 박 부장만 없어도. 퇴사 사유 대부분이 사람이라고 들었다. 대부분 상사. 나는 직장이 싫은 걸까? 객관적으로 꽤 좋은 직장이다. 복지는 평범하지만 연봉이 평균 이상이고 여기 남아있으면 커리어는 확실히 인정되니까. 평범한 회사원인 내가 싫은 걸까? 우주비행사나 부자가 아닌 김 대리인 나 자신이 싫은 걸까? 성인이다. 그런 건 성장통이라 할 수 있지. 그래. 박 부장만 없으면 꽤 살 만할 것 같다. 업무 미루기나 성과 가로채기만 안 당해도 훨씬 행복할 것이다. "박 부장." 고양이는, 아니 그 비범한 존재는 평범한 고양이인 척 "야옹" 하더니 골목의 어둠 속으로 유유히 사라졌다.
오늘따라 몸이 개운하다. 아침 공기도 상쾌하다. 출근 준비를 마쳤는데 시간이 30분이나 남았다. 오늘은 출근길에 좋아하는 카페에서 여유롭게 커피 한잔 마시고 가야겠다. 607번 버스를 타고 한 정거장 덜 가서 내리면 스페셜티 커피를 취급하는 작은 카페가 있다. 현지 작은 농장들과 거래한 생두를 북유럽식으로 밝게 로스팅하고, 시그니처라지만 모든 카페에 있는 그런 메뉴들 말고 기본적인 커피 메뉴만 제공하는, 오로지 커피에만 진심인 카페였다. 사장님이 예쁜 건 덤이다. 단발에 도도한 인상이지만 웃을 땐 해맑다.
커피에 식견이 있는 양, 하리오 v60으로 추출된 콜롬비아 게이샤 워시드를 주문했다. 원두 옆에는 자스민 꽃 향, 레몬, 오렌지의 가벼운 산미 따위의 말이 쓰여 있다. 향긋하고 상큼한 건 알겠는데, 솔직히 무슨 꽃인지 무슨 과일인지 내 평범한 혀에는 소귀에 경 읽기다. 사장님이 고운 손으로 내려준 핸드드립 커피를 마시며 바쁘게 출근하는 다른 사람들을 지켜본다. 설명을 읽고 나서 맛보면 자스민, 레몬, 오렌지가 진짜 찾아지는 것 같기도 하다. 뇌는 원래 그런 식으로 작동하니까. 오늘 아침은 느낌이 좋다. 정말 박 부장이 없어지진 않았겠지만, 그래도 좋은 일이 생길 것만 같다. 사무실로 향하는 발걸음 마저 가볍다. "김 대리님 혹시 박 부장님 못 보셨어요?" 닭살이 돋고 머리가 쭈뼛거렸다. "저 방금 왔는데요?" "연락 같은 건 받은 거 없으시고요?" "아뇨? 박 부장님이 저한테 왜요?" "어젯밤에 귀가 안 하셨다고 사모님이 회사 경비실에 전화하셨대요." "네? 어제 정시 퇴근하셨는데?" 입꼬리가 제멋대로 올라가려는 걸 억지로 참았다. 그랬다간 내가 범인인 걸 알아챌 테니. 범인은 아니지. 그래도 고양이가, 아니, 고양이 형태의 악마가 한 일이라고 증언할 수 없는 일이니 나랑 관련이 있다는 걸 티 낼 필요는 없다.
박 부장이 정말 없어지다니. 회색 시멘트 덩어리 속에 있지만 탁 트인 들판에 선 것처럼 산뜻했다. 퇴근하면 뭘 먹을까? 오랜만에 족발을 시켜 먹어야겠다. 요즘 넷플릭스에 뭐 재미있는 거 있나? 점심도 편한 사람들이랑 화기애애하게 먹었다. 최 과장님 표정이 입사 이래로 가장 밝다. 점심 식사마저 업무의 연장이던 시대는 끝났다. 꼰대 하나 없다고 세상이 이렇게 아름다워지다니. 한 명이 없어서 수십 명이 행복하면 그야말로 선善 아닐까? 약간 인정머리 없는 공리주의자 같지만.
식사 후 시간이 좀 남았다. 테이크아웃 커피를 들고 근처를 한 바퀴 돌았다. 회사 건물에 있는 카페는 그야말로 가성비로 간다. 맛은 없다. 자스민, 오렌지 따위는 글씨가 쓰여 있어도 비웃을 것이다. 내가 전문가는 아니어도 이 정도 차이는 블라인드 테이스팅하면 맞추리라는 자신감이 있다. 누군가 코카콜라와 펩시를 눈감고 구별할 수 있다고 하면 의심해 보겠지만 콜라와 간장은 구별할 테니. 카페인 때문에 마신다. 밥 먹고 나면 몸이 처지니까. 그때 자전거 탄 사내가 요 앞길을 지나간다. 나도 모르게 뒤를 돌았다. 멀어져 가는 그를 보면서 괜히 주머니를 뒤적거렸다. 무엇을 찾으려 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오늘 퇴근길, 아니 ‘칼’ 퇴근길에는 그 고양이가 없다. 어쩌면 소원을 들어줬으니 나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대가로 내 영혼을 가져가겠다고 나타날지도 모른다. 뭐든 좋다. 재밌는 상상이다. 실없이 코웃음 쳤다.
다음 날 아침에도 예쁜 사장님이 있는 카페에 갔다. 오늘은 뭔가 다른 걸 마셔보고 싶었다. 호기롭게 마셔본 적도 없는 에스프레소를 달라고 했다. "물도 한 잔 드릴까요?" "네? 네. 주세요. 고맙습니다." 카페에는 온갖 기계가 있고 각각 고유의 소리가 있다. 윙-, 딸깍딸깍, 웅-. 데시벨도 꽤 높을 텐데 거슬리지는 않는. 원두 안의 특정한 성분들을 끄집어내 물로 옮겨내기 위한 일종의 기합소리랄까. 황금색 끄레마가 조그마한 잔의 검은 액체를 덮고 있다. 컵받침에 놓인 티스푼에는 설탕 결정 같은 게 한 덩어리 올려져 있다. 한 잔의 물은 사장님의 호의인 줄 알았으나 알고 보니 필수였다. 에스프레소는 말 그대로 농축액이었다. 한 잔으로 풀어 마시던 맛이 한 모금에 넘어왔다. 혀가 오그라드는 느낌. 물을 마시자 혀의 긴장이 풀어졌다. 하지만 수년간의 사회생활에서 다져진 능숙함으로 표정을 관리해 냈다. “맛있네요.” 씁쓸한 맛이 가시지를 않는다. 넣어 먹으라 준 설탕을 사탕처럼 빨아먹으며 사무실로 향했다.
"김대리 이제 왔어? 어째 부장보다 늦게 출근하네?" 표정 관리가 안 됐다. 어떻게 된 거지? “뭐야. 못 볼 거라도 봤어? 내가 뭐 죽은 줄 알기라도 했나?” 그야말로 일장춘몽이구나. 그 고양이는 뭐야? 세상도 없애 줄 것처럼 굴더니. “오셨어요. 부장님. 어제 안 보이셔서 걱정했습니다.” “어, 정말 죽을 뻔했지.” 뻔? 그래도 시도는 한 건가. “똥 싸느라. 하하하. 장염 걸렸었거든. 똥구멍에 수도 튼 것처럼 똥이 콸콸 나와서 죽는 줄 알았어. 하하하!” “아. 하하. 고생 많으셨습니다.” “그래. 젊은 게 좋아. 건강하고. 허리도 튼튼하고.” 악마가 돌아왔다. 악마가 있다면 그 고양이가 아니라 이 인간이다. “일들 해. 김대리는 쫌 일찍 일찍 다니고. 10분 전에는 와서 업무준비해야지.” 고양이 새끼. 만나면 발로 차버려야지.
박 부장은 오후에 다시 배가 아프다고 집에 일찍 갔다. 덕분에 칼퇴근은 이어졌다. 소중한 저녁이 있는 삶. 집에 반기는 이는 없지만 내 시간은 있다. 그런데 막상 며칠째 내 시간이 생기니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렇게 바랐던 자유시간인데 누릴 줄을 모른다. 넷플릭스는 습관처럼 일단 켠다. 뭐 볼지 검색만 할 뿐 실제로 끝까지 보는 일은 드물다. 유영하듯 추천 목록을 누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2012년 8월 25일 보이저 1호는 태양계를 벗어나 인류가 만든 탐사선 최초로 태양계 바깥에 있는 성간 공간에 진입했습니다.” 넘기기를 멈추자 제멋대로 재생되기 시작한 다큐멘터리는 어느새 절반 정도의 지점을 지나고 있었다. 시간이 있을 때 나는 뭘 했더라? 나는 뭘 좋아했지? 김 대리로 산 지 5년이라 김민석이 뭘 좋아하는지 잊었다. 몸은 소파에 가라앉지만 의식은 붕 떠오른다. 나는 뭐가 되고 싶은 걸까? 머릿속에 떠오른 선택지들을 추천 목록 넘기듯 뒤적여 본다. 아, 우주비행사? 애도 아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