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 - 목적지를 모르고 달리는 마차
몰몰 피어오른 수증기가 나루에 닿자 꼼짝 않던 배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막상 문을 열고 들어가니 예상보다 활기찬 분위기였다.
'수술실 안에도 대기실이 있네.'
아이들은 엄마 품에 포근히 안겨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보호자도 없이 침대에 가만히 누워만 있는 사람은 나뿐이었다. 뭐랄까... 꼬마 어트렉션을 기다리는 대기줄 같았달까? 당황스러움에 눈물방울도 모두 말라버렸다. 쭈뼛대는 몸짓으로 주변을 구경하고 있는데 간호사 선생님이 친절히 다가와 말을 걸어주셨다.
"심심하죠? 여기서 좀 기다려야 해요. 그보다 이걸 먼저 해야 하는데."
건네받은 건 샤워할 때 흔히 보는 투명 헤어캡이었다. 이걸 쓰는 이유는 자세하게는 모르겠지만 위생에 관한 것 같았다. 긴 머리를 어떻게 수습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일단 들고 있었다.
'누워있는 몸을 일으켜야 하나.'
"잠깐, 내가 해줄게요. 그래도 괜찮죠?"
간호사 선생님의 눈엔 나도 주변 아이들처럼 챙김이 필요해 보였던 걸까. 굳은 자세로 들어왔는데 조그마한 아이들이 다 엄마 품에 안겨 있으니 덩달아 나도 엄마가 보고 싶어졌다. 거대한 숙명을 바라보는 기사 정신 따위 없어진 지 오래다. '왜 나만 차별해? 나도 같이 얘기하면서 있고 싶은데.' 묘하게 억울하고 외로웠다.
아이유의 <팔레트> 노래 가사 중에
애도 어른도 아닌 나이 때 /
그저 나일 때
라는 부분이 있는데 내 상황과 기가 막히게 들어맞았다. 어린이 병동에 있으니 어린 취급은 받을 수 있었지만, 정작 중요한 건 혼자 책임져야 했다.
아니 이게 뭐야. 이런 게 어딨어?
장시간 대기로 떨림은 다 사라지고 어느새 태평함만 남은 마지막 면접자처럼 내 마음도 자꾸만 늘어졌다. 눈 감고 잠이나 잘까 싶었지만 종종 우는 아기가 있어 그마저도 어려웠다. 지루함에 지쳐갈 때쯤 어떤 이가 다가와 내 침대 가드를 내리기 시작했다.
'이제 가는구나! 차례가 왔구나.'
조금은 신나고 조금은 긴장되는 게 꼭 새로운 세상에 초대받는 기분이었다.
그저 이끌리는 데로 몸을 맡겼다. 수술실은 어떻게 생겼을까 늘 궁금했었는데 생각보다 별 게 없었다. 코너를 돌면서 보니 이미 닫혀 있는 방이 많았고, 지나는 사람도 없었다. 다만 이상했던 건 눈부시게 밝은 복도였다. 실제로 주광색(사무실에서 많이 사용하는 새하얀 색의) 형광등이 여러 개 달려 있는 듯했다.
"왔습니다."
도착한 방은 엄청나게 넓었다. 가운데 자리한 수술대가 작아 보일 정도로. 측정해 볼 순 없지만 어림잡아 5평짜리 내 방이 열 개는 있어 보였다. 놀라운 건 컴퓨터도 여러 대라는 점이었다. 이렇게까지 친근하게 느껴지는 공간이라니. 인테리어만 살짝 바꾸면 피시방 느낌도 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곧바로 수술 침대로 이동했다. 6명 정도 되는 선생님들이 모여서 분주하게 수술 준비를 하고 계셨다. 엄중한 분위기 속에서 수술이 시작되던 드라마와는 다르게 의외로 왁자지껄했다. 비교적 어린 환자라서 그런지 몰라도 웃는 얼굴로 분위기가 가라앉지 않게 노력해 줬다. 오디오만 들으면 모 대학교의 동아리실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였다. 고딕체로 강조해서 쓴 '동아리 신입생 환영회' 현수막이 천장에 붙어 펄럭이는 것처럼 보였다.
가운을 입은 선생님이 다가와 내 양쪽 팔을 펼치고서는 움직이지 못하게 고정시켰다. 어째서 이 자세가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다 이유가 있겠거니 싶었다. 혹시 수술 중에 움직이기라도 하면 큰일이니까. 인체 중 한 부분이 속박된다는 건 공포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심지어 그 배경이 수술실이라면 실제로는 마른침이 꼴깍 넘어간다.
수술실에 있는 시간이 1분씩 추가될수록 참을 수 없는 한기가 몰려왔다. 냉동고에 갇힌 건 아닐까 싶을 만큼 몸이 떨렸다. 얇디얇은 환자복은 안 입은 거나 마찬가지고 이 정도 온도라면 롱패딩 정도는 들고 와야 있어줄 만할 것 같았다.
물론 수술실이 감염예방을 위해서 낮은 온도를 유지한다는 건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일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혼자서 벌벌 떨며 꾹 참고 있는데 이번엔 어떤 상냥한 남자 선생님이 다가와 말을 걸었다.
"많이 춥죠? 옷도 얇아서 더 춥겠어요."
대답을 하는데 어째 말소리보다 이빨 부딪히는 소리가 더 크게 나는 것 같았다.
"긴장한 건 아니죠? 괜찮을 테니까 걱정하지 말아요."
그때 미리 맞고 온 주삿바늘 사이로 투명한 관이 연결되었다. 동시에 닫혀 있던 문이 열리고, 집도의 선생님이 늘름한 자태로 들어오셨다. 순식간에 분위기가 차분해졌다. 공기도 왠지 더 무거워진 것 같았다. 주변을 압도하는 아우라가 있었다.
"자, 이제 봅시다. 환자분 오늘 무슨 수술하는지 알아요?"
갑자기 심박수가 높아졌다. 추위도 까맣게 잊을 만큼 몸이 긴장한 모양이었다.
"무릎 수술... 인대 수술 하는 걸로 알아요."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에 호구조사 하는 거구나. 응응. 당연한 절차지.
고개를 끄덕이던 선생님은 곧바로 두 번째 질문을 던졌다.
"환자 이름이 뭐죠?"
두 번째 질문은 첫 번째 질문보다 훨씬 대답하기 쉬웠다. 내 이름 세 글자만 얘기하면 된다.
"O O O이에요."
갑자기 사방이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
근데 마취는 언제 시작하는 거지?
카운트다운 꼭 해보고 싶은데.
"환자분! 정신 차리셔야 해요. 환자분!"
눈앞으로 검은 그림자가 휙휙 지나갔다. 머리가 울렸다. 죽어있던 감각이 서서히 되살아나는 기분이었다. 마지막이 뭐였더라? 분명 수술을 하기 전이었는데.
숫자를 세는 고전적인 형식 따위 없었다. 기대했던 상황과는 다르게 이름을 뱉자마자 기절하고 말았다.
"환자분! 잡아당기면 안 돼요. 환자분!"
부끄럽게도 착용한 소변줄을 쥐어뜯으면서 깨어났다. 무의식 중에 이물감이 들어 불편했던 모양이다. 침대를 밀어주던 선생님이 건드리면 안 된다며 내 손등을 찰싹 때리던 건 희미한 기억 속에서도, 가장 선명한 감각이었다. 이 기억이 흑역사가 되어버린 이유는 손등을 때린 선생님이 남자였기 때문이다.
이거 원, 술 진탕 먹고 추태 부리는 취객보다 나을 게 없잖아. 무의식 세계가 이렇게 무서운 거구나. 창피해서 웃음이 다 났다.
수술실에서 바로 향한 곳은 회복실이었다. 긴 복도 같은 곳에 간호사 분들을 위한 데스크가 하나 있고 막 수술이 끝나고 모인 환자 배드 여럿이 일렬로 쭉 서 있었다. 회복실에서 의식을 차려야 비로소 가족들이 있는 병실로 올라갈 수 있었다. 조금씩 조금씩 정신이 깨어났다. 상황 파악이 되기까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와,
욕 나온다.
알고 있는 말 중에서 가장 험한 말이 절로 나온다. 수술 직후의 통증은 감히 상상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교통사고가 난 직후처럼 미친 듯이 아파서 비명조차 나오지 않았다. 입술을 꽉 깨물었다. 반쯤 이성을 잃고 아랫입술만 잘근잘근 씹었다. 분명 의식은 있는데 아픔에 허덕이느라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겨우 눈을 떴을 땐 서 있는 간호사 분들이 보였고, 양 옆으로 환자 9명 정도가 쭈르륵 누워있었다. 양쪽에서 짐승 울부짖는 소리가 났다. 산통을 겪는 산모들이 모인 지옥 같이 느껴졌다.
무릎은 거대한 바위에 깔린 것처럼 묵직했고, 아픔밖에 느껴지지 않았다. 마비가 온 것처럼 움직일 수도 없었다. 아니 움직이고 싶다는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무슨 방법을 써서라도 단지 이 상황을 벗어나고 싶었다. 다리를 절단하고 싶다고 느낀 건 살면서 처음이었다. 너무나 고통스러웠다.
위를 보니 수액 두 개가 걸려 있었다. 느낌상으로 하나는 진통제, 하나는 물인 것 같았다. 순간, 속이 메스꺼웠다. 뱃멀미를 하는 것 같은 울렁거림에 결국 손을 들고 간호사 선생님을 불렀다.
"저 토할 것 같아요."
급하게 달려 나간 선생님은 주사를 올려놓을 때 쓰는 차가운 트레이를 가져와 입 옆에 놓아주셨다. 고개를 돌려 몇 번 헛구역질을 해 봤는데 토가 나오진 않았다. 뭐지? 공포심에 사로잡힌 탓인가? 무엇이 진짜 통증인지 구별되지 않았다.
회복하는 30분이 인생에서 가장 아픈 기억으로 남았다. 도저히 통증이 가라앉지 않아서 죽을 것 같다고 말하려던 순간 드라마에서만 보던 코드블루 신호가 울렸다. 세상을 호령한 사자가 숲을 향해 사자후를 터뜨리듯이 귀를 때리는 경보음이었다. 심정지가 된 환자는 내 침상 바로 옆에 있던 젊은 여자였다.
저 멀리 복도 끝에서부터 서 너 명의 선생님들이 전속력으로 달려왔다. 주저하지 않고 바로 배드로 올라가 심폐소생술을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니 죽을 듯이 아파도 찍 소리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차마 눈 뜨고 지켜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생명을 살리려 촌각을 다투는 극적인 상황이 코 앞에서 실시간으로 벌어지고 있었다.
여기가 지옥인가?
어찌할 바를 모르겠는 상황 속에서 시간을 죽이고만 있었다.
다행히도 옆자리 그분은 살아났다. 맥박이 정상으로 돌아온 모양이었다. 상황이 종료되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하나 둘 흩어지는 사람들이 보였다. 의사들에 대한 존경심이 또 한 번 되살아났다.
사실 모든 게 온전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어렴풋이 몇 장면 끊기지 않고 재생된다. 솔직한 마음으로는 다시 돌아간다면 수술은 절대 하지 않을 것 같다. 이런 고통을 겪어야 할 만큼 나의 무릎이 절망적이었던 적은 없었다. 성격 탓도 있겠지만 그냥 주어진 대로 살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다. 못 가질 걸 가지고 싶어 부러워하지 말고, 있는 걸 아껴주자는 개 나의 신념이었다. 내가 내 자신한테만 상처를 안 주면 되지, 남의 시선 따위 알 게 뭐야.
이제 병실로 올라갈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나를 데리러 온 중년의 남성분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어 덥석 옷자락을 잡고 말았다.
"조금만 더 있다 가면 안 될까요?"
아직 너무 아파서 차마 이 모습을 엄마 아빠에게 보여줄 수 없다고 생각했다. 깨어난 직후보다는 그래도 지금이 나으니 몇 분만 더 쉬면 괜찮은 척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의식 돌아왔죠? 이제 기야 해요."
대기실을 써야 하는 환자가 밀려 있는 모양이었다. 이렇게 단번에 거절당할 줄 몰랐다. 병실로 가는 길이 부디 꽉 막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믿을 구석은 그뿐이었다.
하지만 진짜로 걱정됐던 건, 아무것도 못하고 기다렸을 엄마였다. 엄마는 겁이 많았다. 물이 무서워 계곡에서는 발조차 담글 줄 모르고, 놀이기구 같은 건 회전목마나 겨우 탈 수 있고, 어두운 골목길도 빙빙 돌아 겨우 지나다닐 정도였다.
이번엔 얼마나 걱정했을까. 얼마나 무서웠을까. 빨리 가서 달래주고 싶다는 마음이, 조금 더 있다가 가고 싶다는 마음을 이겼다.
"가겠습니다."
이 길 끝엔 본격적인 병원 생활이 기다리고 있을 터였다. 앞으로 어떤 일들이 기다리고 있을까? 모든 것들이 처음이라 불안했다. 무엇보다 이렇게 묵직한 다리가 나을 수 있다는 게 의문이었다.
부디 불안한 예감이 틀리기를 바라면서 왔던 길을 고스란히 되돌아갔다. 평생 잊지 못할 단 하루의 역사를 열심히 겪어내는 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