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이직을 준비 중에 있다. 본의 아니게 스타트업 (또는 소기업) 두 곳의 면접을 보았는데 이 글은 딱히 정보를 제공한다기 보다는 그냥 불쾌했던 경험담을 이곳에 남기고 훌훌 털어버리기 위한 목적이랄까? 나는 스타트업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있는 사람도 아니고 오히려 스타트업에 대한 정보가 거의 없는 사람이었다.
두 회사의 공통점
두 회사와 면접을 보게 된 것은 내 탓이 크다. 리쿠르터에게 - 두 명의 다른 - 연락을 받고 무작정 okay를 해버린 거다. 두 회사가 진행하는 비지니스가 모두 내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분야이기 때문이었다. 리쿠르터가 이력서를 고객 회사에게 전달하고 나서 면접을 보게 될지도 모르는 회사의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았는데 공통점은 두 회사의 홈페이지 모두 굉장히 멋있고 잘 꾸며져 있다는 것이었다. 홈페이지에 나와 있는 정보만 보면 두 회사 모두 번뜩이는 아이디어와 그것을 구현할 수 있는 기술, 그리고 충분한 펀딩이 이루어져 있는 것 같이 보였다. 또한, 현재 비지니스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고 회사 역시 점점 성장하는 중인 것 같았다. 물론 구글링을 해보면 회사의 규모가 규모니 만큼 엄청 많은 정보를 찾을 수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전에 근무했던 사람들의 리뷰도 나쁘지 않았고 또 어느 정도의 펀딩과 진행 중인 비지니스도 있는 것처럼 보였다. 다른 한 가지 공통점은 회사의 위치가 Austin, Texas와 Salt Lake City, Utah 같이 많은 사람들이 선호하고 또 테크 기업이 있는 곳이 었다는 것.
Y사 - 태양광 에너지 관련
바이든 정부가 들어서고 태양광 관련 회사들에 엄청 많은 지원과 투자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 같다. Y사가 정확히 언제 설립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3 - 4년 정도 전인 것 같다. 회사 홈페이지에도 정보가 없고 굳이 찾아 볼 필요성은 느끼지 못했다. 면접은 Y사의 CTO라는 사람과 이루어졌는데 이름만 대면 알만한 글로벌 대기업에서 근무했었던 자신의 경력을 소개해 주었다. 그러나 딱히 엔지니어링 백그라운드가 탄탄하다고 생각이 들진 않았고 면접 역시 기술 면접이라고 정해진 것은 아니었지만 가끔 Y사 제품에 대한 내 질문에 두루뭉술하게 대답하기도 했는데 면접 중 자신도 3개월 전에 Y사로 이직해 주었다고 알려 주어 그 부분은 이해가 되었다. 면접 분위기는 화기애애 했는데 그 이유는 기술 면접이 될 수도 있었던 면접이 CTO의 제품과 기술에 대한 이해도 수준에 의해 압박의 강도가 굉장히 낮아졌기 때문이었다. 면접 도중에 왜 Senior Engineer를 뽑는 면접에 3개월 전에 입사한 CTO 혼자 참석했을까 의아했는데 1차 면접이었기 때문이라 이 정도 대화를 할 거였다면 그냥 HR의 누군가와 면접을 진행해도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뭐 어쨋든 CTO라는 사람이 나빠 보이지는 않았고 사실 나에게는 굉장한 호감을 보였었다. 면접이 마무리될 무렵 즉흥적으로 다음 면접을 위해 텍사스로 방문하지 않겠냐고 일정을 물어 왔을 정도다. 텍사스가 무슨 옆동네도 아니고 Y사에서 지원을 한다고 해도 내 연차를 사용해야 하는 등 내쪽에서도 비용이 발생하므로 나는 정중히 일정을 확인해 보겠다고 하고 면접을 마무리 했다.
면접에서 CTO가 onsite 면접을 제안했으므로 내 입장에서는 당연히 여러가지 것들을 먼저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나로서는 통상적인 follow-up 이메일을 HR에 보내면서 salary 관련해서 문의를 했는데 놀랍게도 그 이후로 회신이 없다. 나는 아직도 내가 급여에 관한 질문을 한 것이 잘못이었는지 아니면 CTO의 립서비스에 내가 앞서 간 것인지... 무엇이 문제였는지 알 길이 없다.
Y사의 비지니스와 기술 관련해서 내 개인적으로는 그들의 배터리 관련 기술을 굉장히 독창적이고 구현이 어렵다고 생각해서 면접에서도 많은 질문을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CTO께서는 MIT에서 PhD를 받고 20년 이상의 경력을 가진 엔지니어가 있다고 했었다. 다만 내가 면접을 본 파트의 기술 수준은 사실 협력사에서 부품을 구매하여 조립하는 수준이어서 상당히 의아 했었다. 비지니스 관련해서는 보기에는 멋져 보이고 기술력이 있긴 하지만 그게 필요할까 의문이 드는 그런 느낌이라고나 할까?
W사 - 전기 자동차 관련
현재 미국에 얼마나 많은 전기 자동차 관련 스타트업이 있는지 당연히 나는 모르지만 내가 이직을 위해 서치를 한 개인적인 경험에 기반한 통계로는 "겁나게" 많은 것으로 보인다. 이번에 일론 머스크가 테슬라 직원들을 정리 해고 하는 것을 보면서 그 중 대부분이 몇년 이내에 망할 것이라는 내 예상은 이제 거의 확신에 가까워 졌다. W사는 전기 자동차의 무선 충전 관련 회사인데 자가용이 아닌 상업용 차량 - 버스나 트램 같은 - 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는 것 같았다. 사실 나는 태양광 쪽에는 경험이 있지만 전기 자동차 관련해서는 어떠한 경험도 경력도 없어서 처음 리쿠르터에게 연락을 받았을 때 그 부분에 우려를 표현했었다. 리쿠르터는 당연히 "그런건 상관없다"라고 하셨고 그렇게 hiring manager와 면접을 가지게 되었는데 면접의 첫 단계인 내 소개가 끝나자마자 그의 표정을 보고 더 이상은 시간 낭비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바로 서로 시간 낭비하지 말자고 (간접적으로) 이야기 하고 그냥 W사에 대해 궁금했던 점이나 전기 자동차 무선 충전 관련해서 궁금했던 점 몇 개에 대해 - 지극히 형식적으로 - 조금 더 이야기 나눈 후 면접을 마무리 했다. Hiring manager는 겸손했지만 회사와 본인의 기술력에 대한 굉장한 자부심이 있는 것 같았다. 물론 무선 충전이 쉬운 기술은 아니지만 처음 자동차를 무선 충전한다고 했을 때 "레알?" 했던 때가 벌써 수십년 전 이야기이다. 불행히도 나는 그들의 미래가 밝지 않을 것으로 보는데 결국은 단가 싸움에서 중국이나 한국과 같은 아시아 국가에게 이길 가능성이 희박할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미국 정부의 보호와 지원이 있다면 그리고 미국 내 다른 경쟁 업체와의 싸움에서도 이길 수 있다면 우리가 말하는 중소 기업으로 성장해서 최상의 시나리오로 큰 기업에 인수 합병 될 수도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Y사의 미래보다 덜 밝아 보인다. 그럼 나는 왜 W사에 입사하고 싶어 면접을 보았을까 싶을텐데 당연히 핵심 기술을 배우고 수년 후 전기 자동차 관련 대기업으로의 이직까지 염두해 두었던 것이다. 과연 나만 그랬을까? 왜 W사에서는 엔지니어를 채용하기 위해 그 많은 구인 공고를 올리고 리쿠르팅 회사에 돈까지 지불했을까? 단순히 사업 확장 때문에 그렇게 봄부터 울었던 뻐꾸기 마냥 아무런 관련 경험도 경력도 없는 나에게까지 뻐꾸기를 날렸을까?
Y사의 면접에서도 그랬지만 나는 hiring manager가 내 이력서를 제대로 읽어 보았다면 우리가 비록 화상이라도 얼굴을 마주할 일은 없었을 거라고 확신하다. 지원자인 나 역시 의아했던 면접 요청이었으니까. W사에는 HR이라는 기능이 없었던 것일까 아니면 담당자가 떠나버려 그걸 잇몸으로 땜빵하느라 hiring manager는 이력서를 검토할 여력조차 없었던 것일까... 영원히 그 속사정은 알 수 없겠지만.
후기
"스타트업"의 정의를 테크 기업이어야 한다고 narrow down한다면 Y사와 W사는 스타트업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기술력과 비지니스 아이디어로 투자를 유치 받았고 비지니스를 개발해 왔기 때문이다. 고작 두 회사와의 면접을 통해 '미국 스타트업은 이래'라고 할 생각은 없지만 제목은 '미국 스타트업 면접 후기'로 어그로를 좀 끌어 보고 싶었다. 일단 두 회사와의 면접 과정에서 느낀 것은 회사에 체계가 없고 필요한 function들이 없는 것 같다는 것이었다. 결국 제대로 된 filtering 과정 없이 마구잡이식으로 면접을 보고, 채용하고, 또 이런저런 이유로 채용자가 떠나고의 반복이 되는건 아닐까 싶었다. 지금까지 스타트업에서 일해 본적이 없고 꽤 체계가 잡힌 회사에서만 근무를 했었다. (현재 근무하는 회사는 100년도 훨씬 전에 창업했음) 또, 현재 이직을 준비하며 Y사와 W사를 제외하고는 모두 매출 1조원 이상의 회사 - 그게 현재 이직할 회사를 찾을 때의 조건 중 하나 - 와 면접을 진행 중이다. 이직 준비는 개인적인 것이기 때문에 현재 근무하는 회사에서 내 팀의 엔지니어 한 명을 내가 직접 채용 진행 중이기도 하다. 그래봤자 역시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이런 모든 경험에 비추어 볼때 두 회사는 왜 그런식으로 채용을 진행해야만 했는지 강한 의구심이 남는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는 말은 진리는 아닐 지라도 내 경험에 비추어 보았을 때 Y사와 W사에서 얼마나 많은 삽질을 하고 있을지 대략은 머리속에 그려진다.
물론 그들이 나를 채용했다면 회사가 대박나서 나도 큰 돈 좀 만져보자라든가 빨리 빼먹을거 빼먹고 좋은 자리로 떠나자라는 마음으로 열심과 충성을 다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이 글을 보는 경영자들에게는 열불나는 소리인지 모르겠지만 선수끼리 립서비스는 생략하는게 맞지 않나 싶다) 그러나 두 회사와의 면접 이후 스타트업에 대해 조금 더 알아보고 또 지인들과도 이야기를 해본 이후로 더 이상은 스타트업에 지원을 하지 않고 있고 또 지원할 계획이 없다. 그건 단 두 번의 경험으로 모든 스타트업이 개판 오분전일거라고 일반화해서도,대부분의 스타트업 - 내가 지원할 수 있는 분야의 - 이 수년 이내 망할 거라는 내 근거없는 비관적인 생각 때문이 아니다. 그저 내 상황상 이직하는데 있어 무엇보다도 job security가 첫번째인데 스타트업은 그 부분에 대해 누구도 확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아마 내가 다른 상황이었다면 적극적으로 도전해 보았을지도 모르겠다. 누구나 그리는 성공 스토리가 스타트업에 있지 않은가.
위에 쓴 대로 미국 스타트업에 대한 글이라기 보다는 그냥 개인적으로 여러 가지 생각을 들게 했고 그로 인해 생각의 넓이가 약간은 넓어지고 또 공부도 되었던 면접 경험에 대한 글을 남겨 보았다. 미국 취업을 준비 중인 사람들에게 정보를 제공하려는 목적같은 건 전혀 없고 누군가에게 그저 재미있게 읽혔으면 좋겠다.